사법단체 강력 반발 “공소 취소해야”

수원지검, 하나의 범죄혐의에 한 검사는 기소유예, 다른 검사는 실형 구형

헌법 상 동일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받을 수 없어… 헌법 위배 소지는?

사법단체 “‘검찰개혁’ 칼 빼든 文정부, 진정한 개혁 위해 작은 사건에 관심 가져야”

한민철 기자

검찰이 한 가지 범죄 혐의로 기소유예를 내린 이에게 똑같은 혐의로 실형을 구형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통장양도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한 청년이 검사 측으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이후 같은 사건을 동시에 조사하고 있던 다른 검사로부터 8개월형의 실형을 구형받은 사례다. 사법단체들은 우리 헌법에 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례가 헌법 위배의 소지가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관련 검사들의 징계와 청년에 대한 공소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현재 문재인 정부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검찰개혁’에 있어 큼직한 사건만이 아닌 이번 사례에서처럼 일반 서민들이 겪을 수 있는 작은 사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이하 사법감시배심원단)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2일 당시 28세의 청년 A씨는 은행 통장 한 개를 개설해 타인에게 이를 양도한 뒤, 그 대가로 30만원을 받았다.

이 통장은 범죄에 악용됐고, A씨는 관련 사건의 수사에 착수한 수원남부경찰서로부터 한차례 조사를 받았다.

이후 A씨는 수원검찰청으로 송치됐고, 지난 3월 24일 K검사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란 검찰에서 범죄 혐의자의 범죄 사실은 인정되나 그 정도가 경미해 기소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상의 형사재판을 진행시키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A씨는 자유로운 몸이 될 줄로만 알았지만, 기소유예가 내려진 지 일주일만인 3월 31일 갑작스러운 기소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같은 수원검찰청의 다른 검사실에서 A씨의 사건에 대한 기소를 내려 재판을 받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 다른 검사실에서 직접 조사를 받은 적이 없었고, 단지 전화로 사실 확인을 해준 것밖에 없었다.

그의 기소유예 이유서에는 ‘피의자에 대해 이미 본건과 동일한 내용의 별건이 입건돼 우리 청 ○○○ 검사실에서 수사 진행 중인 점 등을 감안해 기소유예한다’라고 명시돼 있었지만, 청년은 기소된 재판에서 8개월의 검사구형을 받았다. 결국 A씨는 통장양도라는 한 가지 범죄 혐의로 두 번의 처벌을 받게 된 셈이었다.

사법감시배심원단 및 법률전문가들은 이 부분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소유예에 대해 ‘선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이는 엄연히 법적 처벌의 하나다. 흔히 ‘빨간줄이 그여진다’라는 말처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을지라도 개인의 범죄 기록에 남게 된다. 때문에 향후 공무원 시험과 일반 기업 채용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받게 될 소지가 있다.

그런데 우리 헌법 13조 1항에서는 ‘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을 받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A씨는 통장양도라는 한 번의 범죄사실로 기소유예와 8개월 구형을 받은 만큼 이번 사례는 헌법 위배의 소지가 있었다.

앞의 검사가 기소유예를 결정했다면 뒤의 검사는 기소를 하지 않아야 법적으로 정당했다. 특히 앞의 검사는 다른 검사실에서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것을 알았다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사실로 이송하거나, 사건을 병합해 진행하는 것이 마땅했다.

이에 사법감시배심원단 및 법률전문가들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검사를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기소를 한 검사 역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기록상 해당 검사실에서 조사조차 받지 않았고, 전화로 사실 확인을 했을 뿐이었다. A씨는 벌금형의 전과도 없었음에도 8개월이 넘는 구형을 했다는 것을 종합했을 때 처벌이 가혹하다는 입장이다.

사법감시배심원단 관계자는 “하나의 범죄 사실에 대해 두 검사가 기소유예와 기소를 내린 이번 사건에서 기소유예를 내린 검사를 징계를 해야 하고, 기소한 검사는 공소를 취소해야 마땅하다”라고 주장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선언이 정치적 사건이나 거물급 인사의 비리 등 큰 사건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번 A씨의 사례처럼 일반 서민들도 겪을 수 있는 단순 사건에 대한 검찰 측의 잘못된 판단을 일벌백계 해야지만 검찰의 기강이 바로 잡히고 진정한 검찰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지난 201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저작권 위반 사건이다.

SAT 저작권 위반 사건은 <주간한국>이 지난해부터 여섯 차례 특집으로 보도해온 이슈다. 지난 2015년부터 국회 법사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SAT 저작권 위반 사건에 대해 ‘내사 중 진행된 검찰의 말도 안 되는 압수수색’과 공소기각 사유가 명백함에도 헌법 제27조 3항에 명시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 등 다양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당시 사건의 피의자들은 어린 수험생들로 장기간 출국금지 및 취업제한 등의 불이익을 받으며 검찰과 법원이 사법단체 등으로부터 인권침해 등에 대한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사법감시배심원단 관계자는 “검찰이 권위만을 내세울 것이 아닌, 자신들이 실수로 처리한 사건에 대해서는 스스럼없이 인정해야만 오히려 사법기관의 권위가 살고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라며 “일반인들이 사법기관으로부터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부터 문재인 정부에서 강조하는 검찰개혁을 제대로 실현시킬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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