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의중 모르는 삼성… 1단계 밀당 실패에 의구심만 증폭

삼성 “라우싱 국내 반입” 주장 & 임원진 증언거부로, 특검 측 ‘말 세탁’ 입증 난관

삼성 전 임원진 연이은 증언 거부, ‘최순실 먼저 증언하라’는 전략이었나

‘최순실 먼저 증언’도 불발, 삼성 측 의구심 더욱 증폭

한민철 기자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 전직 임원진들이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재판에서 증언을 거부하며, 그 이유를 두고 오락가락한 입장을 가진 최씨의 의중을 먼저 파악하기 위한 삼성 측의 의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로 최근 최씨와 그의 딸 정유라(21)씨가 독일 승마지원에 대해 삼성 측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려는 듯한 입장을 보이며, 삼성 측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이들 전직 임원들의 증언 거부가 최순실씨 측이 먼저 삼성 측에 대한 증언을 통해 입장을 제대로 밝히라는 ‘밀당(밀고 당기기)’이었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에 대한 뇌물수수 사건의 24차 공판에는 최지성(66)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등 삼성 전직 임원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재판에서 이들 삼성 임원들은 앞서 19일 같은 재판의 증인으로 나온 박상진(65) 전 삼성전자 사장과 같이 모두 증언을 거부했다.

재판의 첫번째 증인으로 나온 황성수(55) 전 삼성전자 전무는 증인 선서를 한 뒤 진행된 자신의 검찰조서에 대한 진정성립 절차 및 모든 신문 내용에 대해 침묵하거나 “증언을 거부하겠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에 최순실씨의 변호를 맡은 이경재(69·사법연수원 4기) 변호사는 “현재 증인(황성수 전 전무)이 나와서 진술하는 취지가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증언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라며 “검찰이 진술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질문하는 것은 인권침해적 조사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재판부는 황 전 전무가 똑같이 질문을 하더라도 증언을 거부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하면서 “증인이 증언 거부의사를 명백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생략하고 의견서 제출로 정리하는 것이 어떤가”라며 황 전 전무에 대한 신문을 마쳤다.

이어 재판정에 나온 최지성 전 실장과 장충기(63)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도 똑같이 증언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재판부는 더 이상의 증인 신문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1시간 만에 이날 재판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특검 측은 이들 삼성 임원들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더라도 끝까지 답변을 받아내고자 이어갔던 질문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독일에서 승마연습을 위해 탔던 마필로 알려진 ‘라우싱1233(이하 라우싱)’의 국내 반입에 대한 부분이었다.

라우싱은 정씨가 독일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에 소속돼 승마훈련을 하고 있던 시기 삼성 측 지원을 통해 탔던 마장마술용 말로, 정씨는 라우싱과 함께 역시 삼성이 지원한 마필 비타나V와 살시도를 타며 승마훈련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8월 삼성의 최씨에 대한 승마지원 의혹이 국내 언론에서 불거지자 삼성 측은 같은 달 22일 해당 마필을 독일 말 중개상인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드에 매각했고, 이후 최씨 측이 비덱스포츠 명의로 이 마필에 차액을 얹어 헬그스트란드와 명마(名馬) 블라디미르, 스타샤를 받는 교환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특검 측은 삼성이 최씨와 공모해 최씨 측에 제공한 마필이 뇌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정씨에 대한 승마지원을 숨기기 위해 ‘말 세탁’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때문에 특검 측은 이날 재판부가 증인들의 증언 거부권 행사가 명백해 더 이상의 신문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황 전 전무에게 지난달 17일 라우싱이 국내에 들어온 것이 사실인지의 유무와 만약 사실이라면 그 경위에 대해 증언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런데 라우싱의 국내 반입에 대한 이야기는 앞서 같은 달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50·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 30차 공판에서 거론된 바 있다.

이날 삼성 측 변호인들은 최순실씨가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 승마 컨설팅 회사 코어스포츠와 삼성이 용역계약을 맺으면서 최씨 측에 마필과 차량의 소유권을 넘겼다는 특검 측 주장에 대한 변호인 의견서 제출했다. 동시에 해당 마필과 차량의 소유가 삼성전자에 귀속됐다는 점이 명백하다는 증거를 제시하면서, 전날인 19일 라우싱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삼성 측 변호인은 “삼성전자는 헬그스트란드로부터 계약금 9만 유로를 받은 후에 매매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그 처리방안을 고민을 하던 중, 5월 14일 헬그스트란드와의 매매계약을 해지를 하고 말들의 소유권을 되돌려 받았다”라며 “그중 라우싱은 검역절차를 거쳐 어제(6월 19일)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비타나V는 국내 반입절차를 밟던 중 독일 수출 검역에서 불합격해 조만간 삼성을 위해 관리를 해줄 현지 마장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매계약 해지는 이미 지난달 이뤄졌으나 말의 국내 반입을 위한 검역 절차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이제야 라우싱을 들여오게 된 것”이라며 “삼성이 매매계약을 해지해서 말의 소유권을 되돌려 받은 사실은 특검의 계속된 주장과 다르며, 만약 삼성이 특검 측 주장처럼 말 소유권을 최서원(최순실) 측에 넘겼고, 말 계약도 허위라면 매매계약을 해지하더라도 비타나V와 라우싱을 돌려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삼성 측은 재판부에 이런 내용을 증명할 매매계약 해지 합의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사실 당시 삼성 측 변호인단의 라우싱의 국내 반입에 대한 주장으로 특검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재판이 끝난 뒤 삼성 측 관계자와 취재진들 사이에서도 삼성이 최씨 측에 마필과 차량 소유를 넘겼다는 특검 측 주장을 철저히 반박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특검 측은 비록 침묵을 지키고 있던 삼성 임원진들로부터 라우싱에 대해서 만큼이라도 신문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당시 검찰 측이 정유라씨의 3차 구속영장 청구 카드를 앞둔 상태에서 정씨의 혐의 내용에 대해 ‘말 세탁’이 중점적으로 보강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고, 삼성 측이 라우싱을 국내에 반입했다는 주장으로 말 세탁 부분이 미궁에 빠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검은 지난달 19일 삼성 측이 반입한 말이 라우싱이 정말 맞는지 의구심을 품고 있는 듯한 입장이었다.

특검 측은 황성수 전 전무에게 “증인은 라우싱을 국내에 반입한 사실이 증인의 형사재판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관련 진술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라며 “라우싱을 정말로 반입한 것이 사실인가”라고 신문했다.

그러나 황 전 전무는 “증언을 거부하겠습니다”라며 답변 거부로 일관하며, 특검 측은 이날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에 지난달 27일 정유라씨에 대한 검찰의 네 번째 소환조사에서도 말세탁 부분에 관해 결정적 진술과 증거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임원들의 침묵, 결국 ‘최순실 먼저 증언하라’는 전략적 밀당이었나

삼성 측 임원들의 연이은 증언 거부로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결국 ‘이재용 지키기’를 위해 말을 아꼈다는 설명이 있는가 하면, 이들이 검찰 및 특검 조사에서 최씨 측에 대한 독일 승마지원을 두고 진술이 엇갈렸기 때문에 재판에서 서로의 증언이 일관되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주간한국>은 최근 삼성 측 임원들이의 증언 거부의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법조계 관계자부터 매우 신빙성 있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이는 삼성 재판의 피고인들과 최순실씨 측 간 ‘밀당(밀고 당기기)’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삼성 측이 현재 최순실씨가 삼성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하며 그가 자신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도저히 파악이 되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씨 측은 삼성 측과의 승마 용역계약이 뇌물이 아니었고, 차량과 마필도 삼성 측의 소유였다는 점을 분명히 한 상태다. 만약 이것이 삼성 측의 뇌물이었고 차량과 마필의 소유권을 자신들에게 넘겨줬다고 말한다면, 최씨 자신에게는 자폭성 발언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최씨가 법정에서 “저는 삼성 지원을 원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마치 삼성 측이 자신에게 승마지원에 대해 먼저 제안을 했고 자신은 오히려 뇌물을 강요받은 듯한 당사자로 표현하며 삼성 측이 현재 최씨의 의중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삼성 임원진 3명이 증언을 거부한 다음 날인 27일 재판에서 최씨는 “원래 개인적으로 삼성의 지원이 싫었다“라며 ”삼성에게 (말의) 소유권을 안 갖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씨와 같은 변호인을 통해 조력을 받고 있고, 최씨에 불리한 발언을 할 가능성이 낮은 정씨마저도 검찰 조사에서 삼성 간의 말 세탁이 있었고, 이를 삼성 측이 먼저 제안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 측의 최씨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삼성 측은 ‘최순실이 먼저 증언하라’라는 의도로 증언을 거부한 뒤, 지난달 28일 삼성 재판에서 최씨의 증인 출석이 예정되면서 그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할 계획이었다.

재판에 앞서 최씨 측은 변호인을 통해 “증인으로 나가 상세히 진술할 예정”이라며 출석 의사를 내비췄지만, 공교롭게도 재판 하루 전 날 최씨가 건강상 문제와 정씨의 네 번째 검찰 소환으로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내용을 담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예정된 재판이 무산됐다.

물론 최씨 측은 향후 일정이 조정되면 반드시 증인 출석하겠다고 밝혔지만, 하루 빨리 최씨 측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삼성 측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오는 10일 진행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의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인 이재용 부회장 역시 불출석하거나 증언을 거부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날 재판부가 이 부회장과 함께 박상진 전 사장 등 침묵으로 일관한 4명의 전직 임원들도 같이 증인으로 부를 예정인 만큼 ‘최씨가 먼저 입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증인 출석이 이뤄지거나, 나오더라도 제대로 증언을 해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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