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신문 종결로 승마지원 전말 밝혀졌지만, 말끔히 해소 못한 의혹도

삼성 전직 임원들 최순실 존재 알게 된 2015년 8월 3일 대책회의, 이재용 보고 못 받았나

코어스포츠가 최순실 설립회사인지 몰랐다는 삼성 임원들, ‘왜 하필’ 코어스포츠와 계약했나

장충기-박상진, 비타나V 건강상태 인식 두고 엇갈린 증언 포착

한민철 기자

지난 3일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이재용(50·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증인신문 과정이 피고인들에 대한 신문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지난달 31일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를 시작으로 4일에 걸쳐 펼쳐진 재판에서 특검의 창과 삼성의 방패가 더욱 거세게 맞섰고, 결국 끝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의 최순실(61·구속기소)씨 모녀에 대한 승마지원 전말이 밝혀졌고, 삼성 측은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해 철저히 반박해 나갔다. 때문에 재판 후 일각에서는 승마지원 의혹이 말끔히 해소돼 재판 결과에서 삼성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만 아직 풀리지 못한 의혹은 남아 있었다.

소송 당사자들이 직접 증언에 나서며, 특검 측 공소사실이 ‘지나치게 나아갔다’라는 지적과 함께 승마지원 의혹은 삼성 측 주장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승마지원 관련 아직 짚고 넘어갈 문제들은 몇 가지 남게 됐다. 우선 2015년 7월 25일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과의 독해 이후,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들의 주도로 2015년 8월 3일 마련한 대책회의 후 과연 이재용 부회장에게 해당 회의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문제다.

장충기(63) 전 사장은 지난 3일 열린 이 사건 재판에서 “저는 (2015년 8월 3일 대책회의 내용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알리거나 보고할 것은 최지성 실장이 판단할 문제”라고 증언했다.

그런데 이날 대책회의의 발단은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올림픽 승마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질책을 받은 뒤, 그 질책의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때문에 회의 후 이재용 부회장이 관련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법정에서 “제가 아버님께 야단맞은 것 빼고는 야단맞은 기억이 없는데 여자분한테 그렇게 싫은 소리 들은 게 처음이었다”라고 증언할 정도로 2차 독대 당시 자신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은게 충격적이었고 실제로 박상진 전 사장과 장충기 전 사장 등에 이 질책에 따른 사후조치를 지시했음에도, 그 조치 결과를 보고받지 못했다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만약 이 부회장이 해당 대책회의 내용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면, 그가 지난해 12월 6일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최순실씨의 존재를 인식한 시점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라며, 지난해 2월경 정도 알게 됐다고 한 증언 역시 위증이 된다.

이날 대책회의에서 앞서 박상진(65) 전 삼성전자 부사장이 독일에 가서 최순실씨의 승마계 측근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를 만났고, 그가 박 전 전무로부터 최씨의 존재와 그의 대통령과의 관계 그리고 영향력에 대해 접했다.

이후 박상진 전 사장이 대책회의에서 최씨와 대통령이 굉장히 가까운 사이라고 밝혔고, 삼성 측은 이날 회의에서 그가 박 전 대통령에 삼성의 승마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험담을 해서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들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만약 이재용 부회장이 이날 대책회의 주요 내용을 보고 받았다면, 최씨의 존재에 대해 몰랐다는 말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았다.

또 이 부회장의 최씨 모녀에 대한 인지시점이 이 사건에 있어 큰 쟁점이 되고 있는 만큼 재판부의 판결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다.

삼성의 승마지원 관련 풀리지 않는 의혹은 또 있다.

삼성 측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통적으로 2015년 7월 25일 단독 면담에서 정유라씨의 단독 지원 그리고 최씨의 회사와 승마 컨설팅 용역계약을 체결하라는 등의 말은 오고 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큰 의문점이 두 가지 생기게 된다. 삼성 측 전직 임원들이 승마지원에 발 빠르게 움직인 이유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질책하며 요구한 ‘올림픽 승마지원’이었다면, 사실 이 요구는 하나도 실현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본래 박 전 대통령이 요구한 올림픽 승마지원이라고 하면, 여섯 명의 승마 우수선수를 선발해 독일에 전지훈련을 보내고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해 이들의 훈련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성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재차 질책이 두렵지 않았나 본지, 독대 후 1년여가 지나도록 여섯 명의 선수를 선발하지 않은 채 최씨의 딸 정유라(21)씨에게만 지원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특검 측도 박 전 대통령이 독대 때 이재용 부회장에게 ‘올림픽 승마지원’이 아닌 ‘정유라에 대한 단독 지원’을 요구했고, 이런 정황을 최씨 측에 대한 뇌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어 큰 의문점 중 또 다른 한 가지는 왜 삼성 측이 독일 승마훈련 지원을 위해 계약을 체결한 회사가 다른 독일 현지 내 다수의 회사 중 하필 최씨가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코어스포츠였냐는 점이었다.

장충기 전 사장은 이 사건 재판에서 “피고인(장충기)은 이 용역계약 당시에 코어스포츠가 최서원(최순실)이 운영하는 회사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없다”라고 증언했다.

이는 박상진 전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계약 당시 최씨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가 코어스포츠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도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말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굳이 독일 내 다른 승마 컨설팅 용역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회사가 많이 있을 텐데 계약 전날 설립등기가 완료됐고 실체가 불분명했던 회사와 무려 213억원 규모의 용역계약을 맺었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만약 이들이 코어스포츠가 최씨가 실제로 설립한 회사라는 사실을 알고 그의 영향력으로 인해 후환이 두려워 계약을 했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코어스포츠와 최씨와의 관계도 모른 채 굳이 이 회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했다는 말은 의문아 남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들 전직 임원들의 증언 중에는 서로 말이 안 맞는 부분도 발견됐다.

박상진 전 사장은 지난 3일 이 사건 재판에서 지난해 10월까지도 삼성 소유의 마필 비타나V의 건강상태에 대해 “전혀 몰랐다”라며, 이에 관해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정유라씨의 이 사건 법정증언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독일 하겐에서 개최된 승마대회에 비타나V를 타고 출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정씨는 비타나V가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워킹테스트에서 탈락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이런 이유로 삼성 측에서 비타나V를 매각하려는 의사를 보였고, 이후 말 교환계약에서 비타나V가 교환 목록에 포함됐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반면 박상진 전 사장은 당시 비타나V의 건강상태에 대해 “전혀 몰랐다”라고 하면서 정씨 측 주장과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장충기 전 사장은 법정에서 박상진 전 사장과는 또 다른 입장의 증언을 했다. 장 전 사장은 마필 세 마리의 매각 문제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에 대해 답변하는 중, 변호인이 “금액을 감액하는 변경 매매계약을 체결한 이유가 비타나V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가”라고 질문하자 “아마 말 자체 상태가 안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독일 현지 승마지원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었어야 할 박상진 전 사장조차 말 매각 당시 비타나V의 건강상태에 대해 모르고 있던 반면, 관련 보고만 받고 있던 것으로 알려진 장 전 사장이 같은 시기 비타나V의 상태가 안 좋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은 역시 증언의 신빙성에 있어서 문제시될 수 있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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