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큰 그림’ 그리며… 블랙리스트 의혹, 朴·崔·趙 셋 다 잡는다

검찰, ‘문체부 조직개편안 미스터리’ 풀며 朴 블랙리스트 개입 밝힌다

최순실·김종에 유리한 조직개편 지시했던 朴, “직권남용 혐의 입증은 시간문제”

檢, ‘청와대 지원사격’으로 朴-趙까지 잡나

한민철 기자

‘국정농단 사태의 정점’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의 재판이 중반부에 이르렀다. 이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주요 심리사항은 전 정부에서 특정 문화·예술 단체에 대한 지원 배제를 지시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넘어갔다. 이미 김기춘(78·구속기소)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블랙리스트 연루자 일곱 명의 1심 판결이 끝난 상태로, 법원이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이 사건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하며 관련 혐의에 대한 그의 유죄 가능성을 높인 상태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부는 판결문에 박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적시하지 않으며,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현재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개입 여부를 밝히기 위해, 보다 큰 틀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8일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추가 문건을 발견해 언론에 공개하면서 검찰 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리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구속기소)씨에 대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공판에서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를 둘러싼 검찰과 박 전 대통령 간의 법정공방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김상률(57·구속기소) 전 청와대 교문수석 그리고 김종덕(60·구속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과 공모해 소위 ‘반(反)정부’ 성향의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정부 지원배제를 하도록 지시한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블랙리스트 ‘실행책’ 대부분이 유죄 판결을 받은 만큼, 보고 라인의 정점에 있는 박 전 대통령 역시 관련 혐의에 있어 유죄를 피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특검 조사 및 관련 증인들의 법정증언 내용에 따르면,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박근혜가 꾸미고 김기춘이 실행’한 결과라는 의혹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에 관여했다는 점에 있어 판단을 유보하고 있고, 박 전 대통령 측은 이런 법원의 판단을 이용해 관련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현재까지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심리의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보수 가치를 중요시 여긴 청와대 정책기조에 따라 “법적으로 뭐가 문제냐”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 측은 블랙리스트에 대한 관련 문건을 보고 받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면서, 이를 뒷받침해 줄 내용으로 김기춘 전 실장 측이 자신의 1심 재판에서 블랙리스트가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한 점을 들었다.

물론 현재 박 전 대통령의 재판부가 이런 주장에 신빙성을 가지고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목소리지만,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공범임을 부정하며 혼자 안고 가려고 하는 김기춘 전 실장 측 입장이 검찰 측의 혐의 입증에 일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검찰 측은 당시 블랙리스트에 누가 올랐고 그들이 언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지원 배제 대상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간단히 짚고 넘어가며, 보다 큰 틀에서 박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개입과 최순실씨와의 연관성까지 밝혀내는데 주력할 전망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검찰은 바로 그동안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화체육관광부 조직개편안 개입 미스터리’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국정농단 세력 위한 朴의 조직개편 지시, “블랙리스트와도 관련 있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생산과 실행의 중심에 서있던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직안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편성하려 한 정황이 밝혀졌다.

문체부는 지난 2014년 10월경 1차관에 과도하게 몰려 있던 업무를 2차관과 균형 있게 재편한다는 목표로 ‘조직개편 시행령(안)’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1차관실의 문화콘텐츠산업실과 문화정책국, 문화기반국, 예술국을 통합한 ‘문화예술정책실’로 통합했고, 2차관 아래에 있던 미디어정책국으로 1차관으로 이관해 역시 문화예술정책실에 포함시켰다.

당시까지만 해도 해당 조직개편안이 김종덕 전 장관이 추진한 계획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이 계획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김종덕 전 장관은 자신의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에서 당시 장관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문체부 내부 회의를 거쳐 작성한 문체부 조직개편안을 청와대 부속비서관실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청와대로부터 받은 최종 개편안이 자신이 최초에 올린 계획에서 틀어져서 왔다고 밝혔다. 기존 1차관 산하에 있던 관광국이 2차관으로 옮겨 관광국과 체육국이 합쳐진 체육관광정책실을 신설해 2차관 산하에 두는 것으로 최종안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종덕 전 장관은 이것이 대통령의 의향인지 확인하기 위해 부속비서관실로 전화해 확인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 장관은 법정에서 “제가 올린 것이 변해서 와서 이것이 정말 대통령의 뜻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고, 중간에 설마 제대로 보고가 안 된 것인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조직안을 개편한다는 것이 난센스였기 때문”이라며 “그랬더니 대통령이 저에게 직접 전화를 주셔서 지시대로 이행하라고 말씀하셨다”라고 증언했다.

놀랍게도 당시 김종덕 전 장관이 조직개편안을 계획하던 단계에서 체육관광정책실을 신설해 2차관 산하로 편입시키는 안건은 김 전 장관이 아닌, 최순실씨의 문체부 내 최측근으로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서 있는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으로부터 최초로 제기됐다.

사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틀어서 최종 결정한 개편안은 김종덕 전 장관의 표현대로 ‘난센스’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김종 전 차관은 체육 분야에 전문성이 있었고, 관광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관광국을 2차관 산하로 옮길 명분이 전혀 없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여기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시 지시에 대해 명쾌히 소명하지 못할 경우 직권남용 혐의 입증에 가까워질 정황이 포착된다.

당시 2차관 산하에 체육관광정책실을 두게 되면서 각각 1조원에 이르는 체육진흥기금과 관광진흥기금의 80% 이상 부분에 대한 운용권한이 2차관 산하로 돌아가게 됐기 때문이다.

기존까지 1차관에 관광국을 두고, 2차관에 체육국을 둬 서로를 분리시켜 놨던 것도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측근인 김종 전 차관의 계획과 같은 개편안을 지시하며, 1차관은 기금운용권한이 대폭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개편안으로 인해 1차관 산하에 통합·신설된 ‘문화예술정책실’은 향후 블랙리스트 작성의 주무 부서로 전락하고 만다.

소위 ‘더러운 일을 도맡는 곳’, ‘기금운용권한이 축소된 마당에 청와대의 지시를 쉽게 따를 수밖에 없는 곳’ 그리고 ‘청와대의 말을 듣지 않으면 곧바로 잘리는 곳’으로 만든 꼴이었다.

실제로 김기춘 전 실장은 김종덕 전 장관에 블랙리스트 실행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문체부 1급 실장들에 대한 사직서를 받아내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김 전 장관은 김희범 당시 문체부 1차관에게 이들의 사직건에 대해 상의를 했지만, 조직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김희범 전 차관의 건의를 듣고 김 전 실장에 이를 그대로 보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덕 전 장관은 당시 김기춘 전 실장으로부터 “그 사람(김희범 전 차관)도 문체부 소속 공무원이라서 자기 식구 감싸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하면서 언짢아 했다고 법정 증언했다.

또 김기춘 전 실장은 김희범 전 차관에게 블랙리스트 실행에 소극적이었던 1급 실장들의 사직을 반대했다며 크게 질책했고, 결국 전원 사표를 제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김 전 장관이 이들의 사표를 수리한 것으로 알려진 날 인사수석실을 통해 김 전 장관에 전화를 걸어 ‘확인사살’까지 했다.

이후 2015년 1월 20일 김종덕 전 장관은 김기춘 전 실장으로부터 김희범 전 차관의 사표를 지시를 받았고, 결국 김 전 차관 역시 경질됐다.

김기춘 전 실장은 특검 조사에서 당시 김 전 차관에 대한 사직에 대해 “대통령의 지시로, 악역을 맡은 것 뿐”이라고 진술하며 그때 결정에 박 전 대통령이 개입돼 있다는 점을 밝혔다.

이후 문체부 1차관에 오른 박민권 전 차관도 블랙리스트 추진 그리고 최순실씨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미르재단의 설립·등기에 소극적이었고, 영문도 모른 채 1차관직 사직 통보를 받았다.

반면, 김종 전 차관 아래에 체육관광정책실이 들어가면서 향후 최순실씨가 추진했던 스포츠 관련 재단사업들이 관련 부서를 통해 적극적으로 추진된 바 있다.

블랙리스트 주요 사항 보고받았던 박근혜-김기춘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 부정할지라도, 블랙리스트 관련 사항이 박 전 대통령에게까지 전부 보고됐다는 사실은 관련자들의 여러 증언을 통해 밝혀진 상태다.

우선 김종덕 전 장관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으로부터 “문화예술계 영화분야에 정치 편향된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라면서 관련 작품에 대한 꾸준한 모니터링을 주문했고, “결국 사람이 문제다”라면서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신경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관련 내용은 김종덕 전 장관이 특검에 제출한 업무수첩에도 명시돼 있었다. 당시 김기춘 전 실장은 김 전 장관에 전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보고로 내려진 지시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비슷한 시기 박 전 대통령은 영화 ‘국제시장’ 등을 건전한 애국영화로 규정하며, 김상률 전 교문수석을 통해 보수의 의미를 확산하기 위한 목적의 국제시장과 같은 애국영화를 많이 만들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청와대 측은 문체부에 ‘건전문화 생태계 진흥 및 지원’이라는 목표로 건전콘텐츠 즉,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와 걸맞은 콘텐츠 관리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문체부는 건전콘텐츠 활성화 티에프(TF)팀을 꾸렸고, 김종덕 전 장관은 2014년 말 김기춘 전 실장의 공관에 직접 찾아가 이를 보고하자 김 전 실장이 매우 흡족해 하며 그대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김종덕 전 장관은 2015년 1월 9일경 김종 전 차관과 함께 청와대에 방문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영화 제작을 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인데, 잘못된 영화로 인해 젊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라며 “보조금 집행이 잘 돼야 한다. 지금 정치편향적인 것에 지원되는데 그러면 안 된다”라며 건전콘텐츠 관리를 제대로 하라는 취지의 질책을 들었다고 법정 증언했다.

결국 영화에서 비롯된 박근혜 정부의 건전콘텐츠는 이후 세종도서(우수도서) 선정사업에서의 정부에 대한 우호적인 인사나 작품을 우선으로 하도록 심사기준을 강화하거나 대구시 동성아트홀 등 예술 전용관에 대한 지원 중단 그리고 ‘반(反)정부 영화’로 낙인 찍힌 ‘다이빙벨’을 상영했던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정부 지원금 삭감 등으로 이어졌다.

문체부 측은 블랙리스트 관련 주요 사항을 실행해 나갈 때마다 청와대 문건 양식으로 작성한 보고서를 김기춘 전 실장에게 보고했고, 이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까지도 전달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청와대 내에서도 문체부로부터 전달받은 1차 보고서를 통해 2차 보고서를 만들어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은 “건전영화 제작 지원과 관련된 보고서를 제작해 대통령께 보고 드렸던 기억이 있다”라고 법정 증언했다.

청와대 지원사격·보수인사 리스트 입증으로, 박근혜-조윤선 다 잡나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개입에 대한 혐의 입증을 확신하면서도, 1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조윤선 전 장관에 혐의 입증에도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이재용(49·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에서도 그랬듯이 적절한 시기에 청와대가 검찰 측을 향해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달 28일 박근혜 정부 시절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이었던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근무한 제2부속실에서 다량의 문건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문건 대부분은 박근혜 대통령과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자료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내용이 다수 담겨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해당 문건의 작성 시기가 2013년경부터 2015년 1월까지로, 조윤선 전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던 기간에 속했다. 때문에 해당 회의 문건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조 전 수석 측과 논의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만큼 검찰 측은 ‘조윤선을 못 잡았으니 박근혜도 못 잡을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박근혜를 잡고, 조윤선을 다시 잡는다’라는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조윤선 전 장관이 정무수석 시절 블랙리스트 관리에 대한 개입 정황이 본지에 의해 포착된 상태이지만, 관련 재판과 언론보도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2014년 12월 조 전 장관이 문체부 측에 ‘시민사회보수인사 리스트’를 활용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다는 점이다.

조 전 장관은 당시에 문화예술계 보수 인사로 불리는 이들의 리스트를 정리해 이를 활용해 달라는 요청내용을 담아 문체부 측에 보냈고, 문체부 측은 이를 수용해 문체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을 통해 관련 요청을 실행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측은 당시 조 전 장관의 요청은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통해 나온 것인 만큼, 당연히 박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가 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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