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일 때는 공익적 목적, 사실일 때는 비방의 목적이라니…

혐의마다 같은 근거를 달리 바라봤던 재판부

위계와 고의성 없었지만, 비방의 목적 인정한 재판부

평소 불법 댓글알바 근절 위해 공익적 활동 해왔던 삽자루… 대법원에서 비방 혐의 벗나

삽자루 우형철 강사.
한민철 기자

유명 수학강사 ‘삽자루’ 우형철씨가 폭로한 불법 댓글알바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두고 여전히 논란이 상당한 가운데, 그 논란의 중심에 섰던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향후 대법원의 판단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8월 10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항소2부 심리로 열린 ‘삽자루’ 우형철씨의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에 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명예훼손 부분에 대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우형철씨는 이 사건 원심 재판에서 혐의 전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우씨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적용, 그가 적시한 사실이 공익적 목적보다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14년 8월 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형철씨는 자신이 속해 있던 인터넷교육 업체와 경쟁사인 A사의 불법 댓글홍보 행위를 고발하는 내용의 영상을 제작, 이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우씨는 해당 영상에서 A사가 고용한 댓글알바들을 통해 소속 강사들을 위한 여론조작 행위가 존재했고, 그 배후에 사측의 지휘·감독이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정황을 설명했다.

당시 우씨가 영상 속에서 폭로한 구체적 내용에 따르면, A사 측이 고용한 댓글알바들은 수십개의 아이디를 생성했다.

댓글알바들은 이 아이디로 다수의 수험생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사이트 ‘오르비’와 ‘수만휘’ 등에 접속, 마치 학생인 것처럼 가장해 A사 소속 강사들의 강좌를 홍보하는 글들을 수개월 동안 1000여건이 넘게 게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댓글알바들은 경재업체 소속 강사들을 낮게 평가하는 글들도 다수 올리며 단순한 홍보와 여론 조작을 뛰어 넘어, 타사에 대한 업무방해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우씨는 댓글알바로 의심되는 아이디가 A사 측 담당자의 이메일 아이디와 같았다는 점 그리고 댓글알바 게시물의 아이피와 A사 측 아이피가 일치했다는 점 등 여러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자신의 폭로에 대한 신빙성을 높였다.

이후 우씨는 A사를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 명예를 훼손했다며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 사건 원심 재판부는 우씨에 대한 혐의 전부에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우씨가 영상을 통해 A사 측의 댓글알바 행위에 대해 구체적 정황과 증거를 들어 설명했고, 그가 자신의 주장을 허위로 인식하며 단지 비방할 목적만으로 영상을 제작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무엇보다 A사 측은 소속 직원들이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댓글알바를 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재판부는 해당 직원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특별한 징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그리고 댓글알바의 용역을 맡은 홍보대행사 측 관계자들이 관련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받은 점 등을 들어 우씨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원심 판결 이후 검찰 측은 항소하면서 기존 주의적 공소사실인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에 더해 ‘사실을 드러내 A사의 명예를 훼손’을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우선 우형철씨에게 주어진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검찰 측 기각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가 우형철씨에 대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유죄로 판결하면서,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사진=연합)
영상 속 우씨의 발언이 허위사실이라고 증명되지 않았고, 이것이 업무방해죄에서 말하는 위계에 해당한다거나 우씨의 고의성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사실 적시에 인한 명예훼손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로 바라봤다. 우씨의 영상 제작·게재가 A사의 인터넷 여론조작을 알려 수험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공공의 이익은 부수적 목적일 뿐, 주된 목적은 A사 측을 비방하기 위함이라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는 설명이었다.

혐의에 따라 달리 판단되는 근거(?)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우형철씨가 영상을 통해 비록 사실을 말했고 공익적 목적이 있었지만 이는 ‘부수적’일 뿐, A사를 비방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그 근거로 우씨의 영상 속 발언 일부를 들었다.

영상에서 우씨는 A사의 댓글알바 행위를 ‘몰염치, 파렴치한 짓’이라고 표현했고, 이 행위에 대해 ‘그래서 재벌이 됐나’라는 말로 비판하기도 했다. 또 댓글알바를 한 인원들을 ‘바퀴벌레’로 묘사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런 우씨의 표현 일부가 A사 측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어투였고,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또 우씨가 해당 영상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한 뒤, 이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 URL(인터넷 주소)이 링크된 문자메시지를 다수에게 발송한 점을 들어 A사 측에 대한 명예 침해의 정도를 키웠다고 설명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우씨가 해당 고발영상을 올린 경위에 대해 기존에 그가 A사 측과 비슷한 사건으로 소송을 진행 중인 점을 지적, 우씨가 해당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영상을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이에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인 항소심 재판부는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은 무죄, 항소심에서 추가된 예비적 공소사실인 사실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은 유죄로 인정했다.

사실 이 사건 항소심 판결 이후, 우형철씨는 나흘 만에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고 그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법조계와 사교육업계 일각 그리고 일부 수험생 사이에서 판결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나왔다.

우씨가 영상에서 고발한 내용이 허위라는 점에 있어서는 비방할 목적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 고발 내용이 사실이었다면 비방할 목적을 인정할 수 있다는 매우 애매한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혐의에 따라 근거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달라지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로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결하면서 ‘동영상의 URL 링크 문자메시지 발송’을 위계나 고의라고 볼 수 없다고 바라봤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동영상의 URL 링크 문자메시지 발송’ 부분은 항소심 재판부가 사실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에 대한 유죄 판결의 근거로 들었던 내용 중 하나였다.

우씨의 해당 행위가 남을 속이기 위한 위계나 고의는 아니라고 판시하면서도, 허위사실과 고의성의 유무를 판결의 주요 잣대로 삼는 명예훼손 혐의에 있어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며 유죄를 내린 점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씨의 영상 속 발언들로 각종 커뮤니티에 ‘A사 불매 운동’ 등 A사 측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됐다는 사실을 항소심 재판부는 인지했다.

그만큼 우씨의 발언 중 일부는 시청자들에게 A사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는데 영향을 끼쳤고, 앞서 언급했듯이 재판부 스스로도 우씨가 A사의 댓글알바 행위에 대해 ‘몰염치, 파렴치한 짓’, ‘바퀴벌레’ 등으로 묘사한 것에 대해서는 비방의 목적이 컸다고 판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우씨의 A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발언들이 업무방해 혐의에서는 역시 위계나 고의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바라봤다. 반면, 앞서 언급한 대로 명예훼손 혐의에서는 이런 우씨의 발언들이 비방의 목적, 즉 고의가 있었다고 바라볼 수 있다는 애매한 입장을 내놨다.

우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이 논란이 됐던 또 다른 이유는 해당 판결이 현재 사실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죄에 대한 정치권과 여론 그리고 사법부의 태도와 다소 어긋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법조계 내에서는 사실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죄 폐지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제출돼 정치권 내에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에 대한 동의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사실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할 소지가 있고, 행위자의 언행의 의도가 공익을 위한 비판인지 사익을 위한 비방인지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기에 그것이 허위가 아니며 공익적 부분이 어느 정도 인정됐을 경우 전자로 바라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힘입어 허위도 아닌 오로지 사실만을 가지고 공익적 목적을 더했을 경우, 그 행위자의 일부 언행이 상대방의 이익에 피해 끼치는 데 큰 영향을 줬거나 사생활 침해의 요소가 없었다면, 비교적 관대하게 바라보는 법 감정과 여론도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연히 우씨의 사례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이나 행정부처에서 해야 할 불법행위의 적발·폭로를 개인이 나서서 한 점에 대해 법원에서 공익적 목적보다 비방의 목적에 중점을 둬 명예훼손으로 결론을 낸 것이 납득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강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인터넷교육 업계 내에서 암암리에 벌어져 왔던 불법 댓글행위는 수험생들과 학부형들을 기만하며, 타 업체 및 강사에 대한 업무방해, 불법 아이디 구매·대포폰 사용 등 심각한 불법요소가 더해져 사회적 문제로까지 커져 왔다.

삽자루 우형철씨가 설립한 '클린인강' 홈페이지. (사진=홈페이지 캡처)
특히 우씨가 평소 인터넷교육 업계에서 불법 댓글행위 근절 캠페인 및 불법행위를 적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클린인강’을 설립했다는 사실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씨가 올린 영상에 대해 허위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수험생 및 학부형들에게 불법 댓글알바 행위를 알리는 공익적 목적보다, 우씨가 A사와 소송 중이기 때문에 해당 영상이 ‘소송대응용’이라고 판단한 점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다.

무엇보다 재판부가 우씨의 일부 언행을 두고 비방의 목적이 강했다고 판결한다면 현재 여론 및 법조계·정치권의 방향과 어긋날뿐더러, 공익적 표현의 자유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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