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은 “면허 박탈법 조속히 통과돼야”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죄를 지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일정기간 취소하는 법안이 추진되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또 다시 ‘파업’ 으름장을 놓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파고 속에서 의협의 이런 행보는 국민을 볼모로 한 조직 이기주의로 비쳐져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하지만 회장 선거를 진행 중인 의협은 관련 법 제정을 강력하게 저지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의협의 이 같은 행보에 강력한 대응과 조치를 경고하고 나섰다.
면허 강탈? 헌법까지 들먹이는 의협
“의료인 범죄, 실효성 없는 징계 이어져”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법 전문가인 변호사의 위법행위가 의료 전문가인 의사의 의료와 무관한 위법행위가 같다고 볼 수 없다.”(의협 논평 ‘면허강탈법 무엇이 문제인가?’ 중에서 인용)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도 의사 면허는 항시 유지돼야 한다는 의협의 주장이자 근거다. 이들은 논평에서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수행의 자유 침해 및 적정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며 “의료인은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자로서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어, 타 전문직과 구별되는 자율성과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9일 이른바 ‘의사 면허 박탈법’(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와 과실치상 등을 제외한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시, 면허를 박탈하고 형 집행 후에도 최대 5년간 면허 재교부를 금지하는 내용이 뼈대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해당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개정안의 취지는 명확하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강병원 민주당 의원은 “의료인은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지위의 특성상 사회적 책임에 부합하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직업적 윤리가 요구된다”며 “그러나 최근 의료인이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 등 실효성 없는 징계가 이어지며 환자들의 불안감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집권여당의 강한 의지와 무관하게 세간에는 일부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의협이 코로나19가 지속 중인 와중에 파업 카드를 불사하겠다고 강력한 저항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의협은 개정안이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다음날 16개 시도의사회 회장 명의로 성명을 내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하면 전국 의사 총파업 등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외 불문, 여론 등진 의료인 파업은 ‘필패’
시민 10명 중 7명, 의료법 개정안에 ‘찬성’
대한의사협회가 또 다시 파업을 거론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그렇지만 상황이 의협의 뜻대로 전개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한 의료인의 집단행동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공감대가 결여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오히려 의료공백 및 집단 이기주의만 부각시켜 명분과 실익을 모두 잃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2년 영국의사회는 정부가 의사들의 은퇴연령을 높이고 연금기여금을 인상하려고 하자 파업을 벌였으나 빈손으로 병원에 복귀했다. 영국 국민들 중 62%가 반대한 파업이었다. 영국 의사들의 파업으로 환자들만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파업으로 인해 하루 약 3만여 건의 수술이 취소됐고, 약 20만 명의 진료 일정이 재조정됐다.
의료인의 ‘최장 기간 파업’을 기록한 이스라엘 사례도 같은 결과를 낳았다. 이스라엘의사협회는 2011년 4월부터 11월까지 장장 7개월에 걸친 파업을 벌이면서 끈질긴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이들의 요구는 의사인력 확대와 급여 2배 인상, 또 의사 수가 부족한 진료과 의사들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 등이었다. 이스라엘 의사들 역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반면 의료 공백이 일부 발생해도, 여론의 호응을 등에 업은 의료인 집회는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2012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스페인 정부는 국가적 경제위기를 타개하고자 공공병원의 민영화를 시도했다. 흰색 가운을 상징하는 ‘하얀 물결’로 불린 의사들의 15개월에 걸친 투쟁은 마드리드 시민의 약 30%가 민영화 저지 서명에 참여하는 등 성원을 받았다. 그 결과 스페인 지역병원의 민영화 추진이 중단됐다. 시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의협이 만지작거리는 파업 카드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지난 2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의료법 개정안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500명 중 68.5%가 의료법에 찬성한 반면 반대는 26.0%에 그쳤다. 일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파업 카드로 전락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의약분업 사태 이후 ‘승률 0%’
정부이번에는 다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의협이 코로나로 고통 받으시는 국민 앞에서 백신 접종 협력 거부를 말하는 것은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만약 (의협이)불법적인 집단행동을 한다면 정부는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정부의 강경 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가 의협의 집단행동에 번번이 양보한 ‘흑역사’가 문제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된 의약분업 사태 이후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 요구를 지속 수용해왔다. 승률이 0%인 셈이다. 의사 국가시험을 안 치르겠다던 의대생들이 돌연 입장을 바꾸자, 정부는 ‘절대불가’ 입장을 철회해 이들에게 추가시험 기회를 부여했다. 불과 약 60일 전의 일이다.
이전 정권도 비슷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을 추진했으나 의사들의 집단휴진 등 반발에 부딪혀 한 발짝도 나아가질 못했다. 그렇게 정부와 의협의 분쟁과 갈등이 이어지다가 결국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관련법안도 자동 폐기됐다. 이어 20대 국회에서 재발의가 이뤄졌으나 역시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에 앞서 2007년 참여정부 시절에는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도한 의료법개정안이 최대 화두였다. 당시로서는 34년 만에 추진된 의료법 개정이었다. 의사의 고유 권한인 '투약'을 의료행위 규정에서 제외하고, 간호사의 업무에 '간호 진단'이라는 용어를 삽입하는 내용 등이 골자였다. 의협은 ‘의사 고유의 권한 침해’라고 맞섰다.
그해 의협 등은 ‘의료법 개악 궐기대회’ 대회를 열고,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집단 휴진과 집회를 반복했다. 약 4만 명의 의사들이 과천 정부청사를 에워싸기도 했다. 결국 개정안은 국회 테이블만 맴돌다가 2007년 17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흐지부지 끝났다.
현재 의협의 처신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반발을 사고 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교수는 지난 23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의협의 성명서는 사실은 해서는 안 되는 일로서, 국민들 대다수에게 실망을 하게 하는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의사 명예를 실추하고 있는 것을 의협이 잘 생각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일선의 젊은 의사들 생각도 유사하다. 수도권의 한 신경외과 의사는 “의협이 정부를 상대로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의협의 움직임을 평가 절하했다. 그는 “바로 이전에 공공의대 신설 관련 사안은 내부에서 일부 지지가 있긴 했으나, 이번에는 다르다”며 “체감상의 여론 자체가 어느 때보다 안 좋은데,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시민사회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여성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의 경우 “작년 경찰청이 제출한 ‘최근 5년간 전문직 4대 범죄 현황’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의사가 성범죄를 저질러 입건된 수는 613명으로 전문직 중 1위를 기록했다”며 “법사위와 본회의에서도 법안이 후퇴 없이 조속하게 개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