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인메디병원 등 병원, 환자에 일방 퇴원 통보... 정부는 병원 재량 맡기고 뒷짐

지난 23일 자인메디병원에서 환자들이 휠체어에 탄 채 여가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자인메디병원 입원환자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사립병원들이 잇따라 감염병 전담 병원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거점지정병원으로 전환하면서 기존 입원 환자들이 강제 퇴원 당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및 중증 환자가 급증하자 정부가 병상 확보에 본격 나선 가운데 전문 의료인의 간병이 절실한 환자들이 생존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병원은 정부의 공문을 들이밀며 환자들을 나가라고 등떠미는 반면 정부는 병원과 환자가 합의하에 계획서를 보낸 것이므로 관리 대상이 아니라며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다. 환자들이 단체로 반발해 스스로 병상을 지킨 사례도 있지만 강화된 방역 조치의 사각지대에서 일반 환자들의 생존권이 위기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 지원금 노려 거점전담병원으로 전환한 요양병원
경기도 고양시의 회복기재활의료기관인 자인메디병원은 최근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으로 변경하면서 입원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전원 퇴원 통보를 내려 집단 항의를 받고 있다.
자인메디병원은 자인의료재단이 운영하는 곳으로, 17명의 의료진과 8개 센터 (관절, 척추, 내과, 신장, 검진, 한방, 재활의학, 뇌신경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1일 보건복지부가 이곳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하면서 당장 내년 1월부터 재활의료 대신 코로나19 환자용 200여개 병상을 운영할 계획이다.
문제는 현재 입원 중인 환자들이다. 24일 기준 자인메디병원 입원 환자수는 47명이며 이중 6명은 중환자였다. 병원 측은 당장 이달까지 모든 환자들이 퇴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환자 업무로 전환을 희망하지 않는 물리치료사 등 직원들도 권고사직 등 실직 위기에 처했다.
환자들은 당장 1주일 안에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하지만 다수 환자들이 뇌졸중 등 뇌혈관질환이나 치매 등 전문의료인의 간병이 필요한 질환을 앓고 있어 일반 병원에서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23일 찾은 자인메디병원 현장은 환자 대부분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거나 병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해 식사나 대화조차도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였다.
중풍에 걸린 후 자인메디병원에서 2년 동안 입원한 김동언씨(61)는 “23일 재활실에서 우리 병원이 코로나 병동으로 지정됐다는 소문을 우연히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병세가 차도를 보여 내년 봄에 퇴원할 계획이었다.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걷는 수준이다. 지금 퇴원하면 내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빌라다보니 엘리베이터도 없어 3층의 내 집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한 처지다. 보호자는 아내뿐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데, 병원에선 향후 대책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여기 있는 환자들 다 어안이 벙벙하다”라고 했다.
김동언씨의 경우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김태형씨(50)는 병상에 누운 채로 기자에게 “기초수급생활자라 생계를 영위하기가 불가능한데다 일주일 전에 수술하고 아직 실밥도 못 뜯은 상태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김태형씨는 “원래 뇌졸중으로 이 병원에서 2년 5개월 정도 입원했었다가 올해 초 상태가 호전돼 '혼자 살아보겠다'고 마음 먹고 퇴원했다. 그러나 최근 집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넘어져 골반 뼈에 금이 가고 오른쪽 고관절을 크게 다쳤다. 119 신고로 간신히 서울의 1급 병원에 옮겨졌지만 치료비가 없어 퇴원하고 지난 18일 이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내가 '돈이 없다'는데도 여기 의사가 '일단 입원하라'고 불러줬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다행히 수술은 잘 마쳤지만, 한쪽 손과 다리가 다시 마비됐고 말도 어눌하다. 끼니도 간병인이 밥을 떠먹여줘야 겨우 챙길 정도로 아프다. 아직 수술한 지 일주일도 안 지나 상처를 꼬맨 실밥도 안 뽑은 데다 부러진 뼈가 다시 붙는데만 1달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당장 내년부터 나가라니 막막하다. 그나마 여기 의사가 나를 원래 알던 사람이라 치료받을 수 있었던 거지 다른 병원은 날 받아주지도 않는다. 여기서 나가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병원측은 일대 다른 병원과 조율해 환자들을 전원 이송 조치할 계획이지만 이들이 적절한 병원에 자리 잡을지는 미지수다. 병원측은 ‘전원조치는 정부 지침에 따른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인메디병원 관계자는 “환자들은 이달까지 퇴원해야 하며 전원조치 방식은 내부 절차에 따라서 진행할 계획이다"며 "다만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지 며칠 안 된 탓에 구체적인 방안은 우리도 이제야 마련 중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자들은 “코로나19 환자는 치료를 받고 나면 정상인인데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하는 뇌졸중 환자들이 쫓겨나는 게 바람직하냐”며 반발하고 있다. 의료진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는 마찬가지다. 환자들이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재활 치료를 위한 전문인력이 확보된 재활병원에 제때 배정되지 못할 경우 재활치료의 중요 시기를 놓치면 관절 가동 범위가 축소되는 등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아갈 위험 때문이다.
자인메디병원 의료 직무 관계자는 “회복기재활병원 특성상 재활치료의 중요한 시기에 계신 분들이 많다”며 “병원측이 ‘다른 병원을 알아봐주겠다’고 보호자와 환자에게 통보는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환자분들의 건강 및 정신건강이 심히 염려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환자들 “생존 위기” 호소에 정부는 “환자와 병원이 해결할 일” 외면
환자들은 생존의 위기를 호소하고 있지만 병상 확충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는 이 같은 현장 분위기를 감안하지 않고 있다. 자인메디병원처럼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할 경우 병원측이 환자와 자율적으로 조율하라는 입장일 뿐 직접 전원 조치 과정을 들여다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사실은 정부 입장에선 병원이 애초 환자들의 동의를 얻은 상태에서 계획서를 보내는 거라고 보고 있다"며 “병원 입장에선 사실 원래 있던 환자들은 일종의 '단골'일 텐데 단골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내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말 퇴원을 거부하는 환자들이 있었다면 그 병상은 빼고 코로나 병상을 만드는 식으로 계획서를 제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2차병원 의료 현장에서 전원조치가 협의에 의해 이뤄지기 보다는 일방적인 쫓아내기식조치에 가깝다는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요양병원 중환자실의 환자를 강제 전원 시키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화면 캡처)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센트럴요양병원(코로나 전담 병상 165개 예정)은 지난달 14일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에 지정돼 현재 방역 시설 확충 등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기존 센트럴요양병원 환자들은 전부 퇴원하고 이달 중 바뀐 업종으로 개업할 예정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이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의 보호자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요양병원 중환자실의 환자를 강제 전원 시키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강제퇴원의 피해를 호소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청원인은 저혈당쇼크로 뇌기능이 손상된 83세의 어머니를 이 병원에 맡겼던 남성으로, 지난달 22일 병원측이 일방적으로 '3~4일 안에 퇴원'할 것을 요구해 쫓겨났다고 호소했다.
청원인은 “정부는 3일 내 강제 전원만을 통보하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결국 급히 옮길 병원을 찾고, 환자를 이송하고, 전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심리적 악영향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은 환자와 가족들, 병원이었다”며 “위드코로나를 성급히 시행한 탓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날이 폭증하는 이 상황을 초래해놓고 애꿎은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의 처사에 분통하다”고 지적했다.
전담병원 전환 시 ‘환자 대책’은 애초부터 고려 안 해
정부는 전환을 희망하는 일선 병원의 신청을 받아 감염병 전담병원과 거점전담병원을 지정하고 있다. 감염병 전담병원은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수취해 중앙사고수습본부 등으로 넘기고 거점전담병원은 정부가 직접 접수 받는 식이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환자 전원조치에 대해서는 병원 각자 내부지침에 따르도록 하고 있으며 병원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메뉴얼도 없는 상태다.
전환을 희망하는 병원이 정부나 지자체에 제출하는 계획서에는 ▲의료기관 허가 병상 수 ▲인력 상황 ▲확보 가능한 병상 수 ▲공기 공조 설비 유무 ▲공사 소요 기간 및 운영 예정일 등 전환 후 운영 능력에 관한 내용만 다루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계획서에 올라가는 내용은 이것만 확인해 중수본에 올린다. 환자 전원 조치 이런 부분은 공문도 없고 병원이 구두로 계획을 밝히면 듣는 정도다"라며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환자와 보호자들이 반발하기는 하지만 지금 코로나19 병상 확보가 국가적 문제로 대두돼 대통령께서도 특별 발표도 하는 마당인데 일단 신청이 들어온 병원을 민원 때문에 지연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환자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지만 전원조치 후 환자 배정 현황도 파악되지 않아 일선 보건소에서는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센트럴요양병원 사례와 관련해 시흥시 보건소 관계자는 “경기도에서 일괄 지정하다 보니 시흥시는 지정 과정을 알지는 못한다”며 “병원이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으로 지정 받기 전에 기존 입원환자들의 전원 조치를 마쳤다면 깔끔했겠지만 결국 현장에서 환자들과 마찰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강남 구립 행복요양병원은 환자들 반발로 인권위 조사 중
지난 2월 6일 오후 서울 강남구립 행복요양병원 앞에서 열린 '코로나 전담 요양병원 강제지정 및 강제퇴원 반대 보호자 발대식'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처럼 분쟁이 계속된 가운데 정부는 감염병 전담병원과 거점전담병원 병상을 늘릴 계획이다. 지난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내년 1월까지 코로나19 중증·준중증·중등증 병상 7000여개(중증 1578개, 중등증 5366개)를 추가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중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 병상은 650개, 감염병 전담 정신병원은 100개, 거점 전담병원은 중증·준중증 각 300개, 중등증 2400개 등이다.
병원에 따라 앞선 사례처럼 일방적인 퇴원을 통보하는 경우 환자와 보호자들과의 분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병원들이 돈만 보고 업종을 변환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감염병 전담 병원 또는 거점전담병원에 지정될 경우 병원에 제공되는 정부 지원금은 병상 1개당 1000만~3000만원 수준의 리모델링 비용 및 병상단가(입원료)에 배정된 병상 개수를 곱한 금액이다. 병상이 남는 병원 입장에선 전환을 통해 병상단가를 높이는 방안을 고려할 만큼 매력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외면되는 부작용은 계속되고 있다. 감염병상을 늘려야 하는 것은 불가항력적이지만 일선에서는 환자들의 안전이 초토화되고 있다. 목소리를 낼 기력이 없는 다수 환자들은 병원에 따라 운명을 내 맡겨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지난 1월 감염병 전담요양병원으로 지정됐다가 환자 보호자의 반대로 철회한 강남 구립 행복요양병원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 중이다. 당시 환자 보호자들은 "협의가 아닌 강제 퇴원은 의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병원측의 전원·퇴원 통보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225명의 서명이 포함된 의견서를 병원 측에 전달하고 집회·시위 등을 통해 반대목소리를 낸 결과 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다수 요양병원 등 2급 병원의 환자들은 노령층인데다 질환 때문에 행복요양병원의 사례처럼 스스로 권리를 찾아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 거점지정병원 전환이 올 초부터 같은 논란을 빚었음에도 병상 확보에만 급급해 기존 환자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또 만약 환자가 병원의 일방적인 전원조치로 건강의 심대한 손상이 발생할 경우에는 민사소송을 통한 문제제기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이원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원)는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 거점지정병원으로 전환할 때 전원조치는 병상을 확보하기 위해 환자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게 원칙인데, '며칠 사이에 나가라'는 식으로 일방 통보하면 제가 보호자라도 분노할 것 같다"고 동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다만 의료법상의 '진료 거절'은 병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해야 성립하는데 정부가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한 이상 '사유'는 생긴 셈이다. 따라서 만약 퇴원 환자의 병세가 심각하게 악화되더라도 ‘의료법 처벌’은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이어 "오히려 민사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 위중한 환자일 경우 병원은 상급병원에 의뢰서를 보내 병상 유무까지는 확인해줄 의무가 있다“며 ”이러한 조치를 하지 않고 앞서 사례처럼 며칠 만에 내보냈고, 그로 인해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면 민사적인 책임 소지가 있다. 경우에 따라 병원 측의 잘못에 대해 국가가 공동 책임을 져야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