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서 金을 일군 '은반의 여왕'변변한 외부 지원 없이 피눈물 훈련으로 신화 이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스포츠를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스포츠를 해서는 안된다. 스포츠를 자신의 것으로 여겨야 한다.”

지난 1968년 프랑스 그레노블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페기 플레밍의 유명한 말이다. 스포츠 선수라면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역설적으로 피겨스케이팅만큼 보는 이에게 ‘기쁨’과 ‘황홀함’을 선사하는 스포츠는 없다는 이야기로도 해석된다.

카타리나 비트(84년 사라예보ㆍ88년 캘거리 올림픽), 크리스티 야마구치(92년 알베르빌 올림픽), 옥사나 바울(94년 릴리함메르 올림픽), 타라 리핀스키(98년 나가노 올림픽), 사라 휴즈(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아라카와 시즈카(2006년 토리노 올림픽).

80년대 이후 역대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챔피언들을 보며 한국 팬들은 ‘부러움’을 느꼈다.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지만 세계선수권 5회 우승에 빛나는 미셸 콴도 우리에겐 익숙한 스타다. 최근엔 일본계 선수들의 약진이 돋보였지만 감히 ‘올림픽 요정’의 자리에 한국 선수들을 올려놓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불가능할 것 같았던 꿈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김연아(16ㆍ군포 수리고)가 주인공이다. 지난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2006~07 국제빙상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4차대회에서 한국에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안긴 소녀.

그러나 일찌감치 ‘피겨 신동’으로 주목받았던 김연아의 아름다운 연기는 열여섯 살 소녀에겐 가혹할 정도의 피눈물 나는 고통 속에서 탄생됐다.

요정? 혹독한 훈련벌레!

김연아는 소문난 훈련벌레다. 오전 8시30분부터 러닝과 복근운동,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오전 10시부터 태릉실내빙상장에서 2시간 동안 훈련한다. 밤 10시부터는 과천 실내링크에서 2시간 동안의 올빼미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실내링크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는 낮시간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변함없이 반복되는 김연아의 일과다.

오죽하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장시간 비행 끝에 귀국한 지난 21일 “오늘만큼은 쉬겠다”고 말했을까. 김연아는 항상 “잠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피겨 맘' 박미희 씨

김연아를 이야기할 때 어머니 박미희(48) 씨를 빼놓을 수 없다. 처녀 시절 피겨스케이팅을 취미로 즐겼던 박 씨는 일곱 살이던 김연아를 데리고 과천실내링크를 찾았다. 놀라운 재능을 보인 김연아에게 당시 코치는 “딸의 재능이 뛰어나니 선수로 키워보라”고 권유했고, 바로 그때 김연아의 인생과 한국 피겨스케이팅 역사가 바뀌었다.

박 씨는 김연아에겐 체력훈련 코치이자 매니저다.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박 씨는 김연아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게 벌써 8년째다. 워낙 수많은 국제대회를 함께 다녀서인지 피겨스케이팅을 분석하는 박 씨의 시각은 웬만한 전문가를 뺨친다.

위기도 많고 갈등도 많았다. 김연아가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 여러 차례. 초등학교 6학년 때 트리플 점프를 익히던 김연아는 너무 힘들어 중도포기의 뜻을 밝혔다. 박 씨는 “동계체전까지만 하자”고 설득해 김연아의 오늘을 있게 했다.

불과 2개월 전에도 위기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스케이팅 부츠가 맞지 않아 고생하던 김연아의 고통스런 모습에 박 씨조차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당시 울먹이며 “운동을 그만두게 하겠다”던 박 씨의 전화를 받은 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김연아의 군포 집으로 달려가 간곡히 설득한 끝에 은퇴를 막았다.

대박? 빚이나 지지 않았으면

대부분의 운동 선수들이 프로무대에서 터뜨릴 ‘대박’을 꿈꾸며 혹독한 훈련을 하지만 김연아에겐 남의 이야기다. 1년 동안 김연아에게 들어가는 돈은 7,000만~8,000만원 가량.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해마다 떠난 해외 전지훈련에는 약 1,500만원이 들어갔다. 김연아가 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것은 지난해부터다. 올해 3,50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재정이 넉넉지 못한 빙상경기연맹도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코치 레슨비와 링크 대관비, 해외 전지훈련비, 의상과 스케이트 등 장비 구입비까지 거의 모두가 가족의 몫이었다.

그나마 시니어 그랑프리 우승 이후 각계의 지원과 CF 촬영 제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김연아가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스폰서를 만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니폼과 모자 등에 기업의 로고를 넣을 수 있는 골프 등의 스포츠와는 달리 피겨스케이팅은 기업의 홍보마케팅 전략상 그리 매력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금빛 영광은 국민에게 돌리고, 자신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훈련하는 김연아의 고군분투를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할까.

김연아의 金묘기 배경음악은 '종달새의 비상'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열기로 가득 찼던 지난 3월. 일본에선 TV만 켜면 낮이고 밤이고,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선율이 흘렀다. 아시아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일본의 아라카와 시즈카가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배경음악으로 썼던 곡이기 때문이었다.

주니어에서 성인 무대로 옮긴 김연아는 영국의 작곡가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을 배경음악으로 바꿨다. ‘종달새의 비상’은 영국의 시인 조지 메레디스의 시를 읽고 감명받은 윌리엄스가 만든 로망스풍의 작품. 주니어 시절 영화음악 ‘파파 캔 유 히어 미’를 배경음악으로 썼던 김연아에겐 ‘종달새의 비상’의 애잔한 선율은 성숙한 연기를 선보이는 데 적격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카타리나 비트는 비제의 ‘카르멘’에 맞춰 완벽한 테크닉을 선보여 세계를 홀렸다. 이후 비트는 프로로 전향한 이후 마이클 잭슨의 팝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삼아 화제를 뿌렸지만 18년전의 ‘카르멘’ 연기는 여전히 피겨스케이팅에서 전설로 여겨지고 있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