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LPGA 데뷔 10년 만의 위업… 메이저 5승 포함 통산 23승

‘세리공주’ 박세리(30ㆍCJ)가 진정한 ‘골프여왕’에 등극했다.

박세리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명예의 전당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한국 골프역사를 새로 썼다. 역대 LPGA투어 선수 가운데 23번째, 아시아인으로 처음이다.

투포환 선수를 하다 아버지의 권유로 대전 유성초등학교 6학년이던 1989년 처음 골프채를 잡은 이후 18년 만이자 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데뷔한 지 10년 만에 세운 금자탑이다.

박세리는 8일(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하브드그레이스 불록골프코스(파72)에서 열린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쳐 명예의 전당 입성 자격을 모두 채웠다.

박세리는 2004년 5월 미켈롭울트라 오픈에서 우승, 명예의 전당에 가입하는데 필요한 27점을 모두 확보했지만 현역 선수의 경우 10시즌을 채워야 한다는 마지막 조건에 걸려 유보됐다가 이마저 채우면서 LPGA 명예의 전당 문을 활짝 열었다.

LPGA는 열 번째 출전한 1라운드를 마치면 한 시즌을 치른 것으로 인정해준다. 또 박세리는 LPGA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되면서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에도 자동 가입했다.

대회 1라운드를 마치면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된 박세리는 “10년간 가장 긴장된 상태에서 티샷을 날렸다”면서 “벳시 킹, 낸시 로페스, 베스 대니얼 등 위대한 선수들과 함께하게 돼 영광이다.

나의 큰 꿈이 드디어 이뤄진 가장 기쁜 날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캐롤린 비벤스 LPGA 커미셔너는 “박세리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이뤘지만 아직 만 30세도 되지 않았다. 많은 팬들이 오늘을 기뻐하겠지만 그녀의 조국인 한국 팬들이 가장 기뻐할 것”이라고 축하했다.

박세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97년 미국에 진출, 퀄리파잉스쿨에서 당당히 1위로 이듬해 LPGA투어에 발을 내디뎠다. ‘될성부른 떡잎’의 진가는 곧바로 나타났다.

21세의 박세리는 데뷔 세 번째 대회이자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LPGA투어 첫승을 신고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한국이 수출한 최고의 상품”이라며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이어진 US여자오픈 우승은 ‘박세리 신화창조’를 알리는 결정판이었다. 박세리는 태국의 추아시리폰과 연장까지 가는 대접전을 펼쳤고 아직도 국민들의 기억에 선한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가 샷을 날리는 투혼으로 극적인 우승 일궜다.

당시 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샷이자 골프강국 한국의 기폭제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루키 시절인 그해 2개의 메이저 대회를 휩쓸며 혜성같이 나타난 박세리는 2006년 맥도널드챔피언십 우승까지 메이저대회 5승 등 모두 23승을 올린 데 이어 명예의 전당에 올라 ‘살아있는 전설’로 남게 됐다.

■ 좌절과 고통을 딛고

승승장구하던 박세리에게 시련의 나날도 있었다. 알 수 없는 암울한 슬럼프가 찾아온 것. 그 슬럼프는 묘하게도 2004년 자신의 골프인생의 목표였던 명예의 전당 입회에 필요한 포인트를 채운 시점부터 시작됐다.

이때부터 시작된 박세리의 추락은 끝이 없어 보였다. 쳤다 하면 70대 후반 타수에 80대 타수를 치는 일도 잦아 골프팬들과 언론으로부터 ‘주말 골퍼’라는 비아냥까지 감수해야 했다. 상금랭킹이 100위권대로 곤두박질쳤는가 하면 2005년에는 하위권을 전전하다 ‘시즌 중도 포기’라는 극약처방까지 선택해야 했다.

‘목표의식이 사라졌다’, ‘박세리 시대는 갔다’, 골프밖에 모르는 선수의 예견된 빠른 종말’ 등 극한 표현 앞에 남몰래 눈물을 삼켜야했다. 사람들이 싫어졌고, 골프도 싫어졌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어린시절 아버지에 의해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된 박세리였기에 더욱 그랬다.

어린 시절 골프 시작과 함께 고층계단 오르기를 통한 체력훈련, 투견장과 야간 공동묘지에서의 담력과 승부욕 훈련, 한겨울 저수지 바닥에서의 지옥훈련 등을 소화해낸 박세리였기에 가능했다.

박세리는 지난해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을 제패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US여자오픈에서 3위, 올해 커리어그랜드슬램 도전에 나섰던 나비스코챔피언십에서는 선두를 달리다 후반 막판 흔들리면서 아쉽게 우승을 놓치는 등 기량을 되찾고 있다.

명예의 전당 입회를 확정한 뒤 박세리는 “팬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 2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팬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며 팬들에게 공을 돌리는 성숙함을 보였다.

■ 서른 잔치가 시작됐다

박세리는 명예의 전당 입회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제 남은 목표는 그랜드슬램과 올해의 선수상을 받는 것”이라며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4개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박세리는 나비스코 챔피언십을 남기고 있다. 박세리는 또 “내가 한창 잘 나갈 때는 아니카 소렌스탐도 최고의 전성기여서 그때는 한 해에 5승씩을 하고도 소렌스탐에 밀려 올해의 선수상을 번번이 놓쳤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세리는 “명예의 전당에서는 막내가 됐기 때문에 초심으로 돌아가 더 열심히 해 남은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LPGA투어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온 박세리는 앞으로 후배들을 챙기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을 계획이다. 박세리는 “이제 LPGA에 40명이 넘는 한국 선수들이 있다. 앞으로 이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또 도움이 되고 싶다”며 리더다운 모습을 보였다.

골프를 떠나 박세리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혼. 명예의 전당 입회와 함께 사실상 박세리의 결혼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셈이다. 박세리 아버지 박준철 씨는 딸의 결혼은 명예의 전당 입회 이후라는 입장을 예전부터 고수해왔다.

박세리도 결혼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뒤 하겠지만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은 그 전에도 괜찮지 않냐며 아버지와 남자친구 문제를 놓고 줄곧 의견차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제는 고민거리가 사라진 것. 그토록 바라던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현재 사귀는 남자친구도 있다.

최근 박세리는 남자친구를 두고 “잘 생겼다”며 “명예의 전당 입회를 확정짓는 맥도널드챔피언십 때 남자친구가 골프장을 찾아와 응원할 계획이다”고 밝힌 바 있다. 박세리는 후배선수의 소개로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남자친구를 올해 초부터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세리가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귀한 손님’을 의미있는 무대에서 공개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 명예의 전당이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명예의 전당은 1950년 만들어진 ‘여자골프 명예의 전당’에 기초해 1967년 설립됐다. 1951년 패티 버그, 베티 제임슨, 루이스 서그스, 베이브 자하리아스가 첫 멤버로 이름을 올렸고, 이후 1960년 벳시 롤스 등이 뒤를 이었다.

LPGA투어 명예의 전당은 1998년부터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가입돼 있어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면 자동으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된다.

박세리를 포함해 선수 출신 23명과 공로자 1명 등 모두 24명이 LPGA투어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LPGA투어 명예의 전당 가입 조건은 현역 선수의 경우 10년간 현역 선수로 뛰어야 하고 메이저 대회 우승을 하거나 시즌 최저타를 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베어 트로피 또는 올해의 선수상을 받아야 한다.

위 조건을 채운 선수 가운데 27포인트를 따낸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가입한다. LPGA투어 대회 우승은 1점, 메이저 대회 우승에 2점, 베어트로피 또는 올해의 선수상에 각 1점이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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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기자 bal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