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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추락 없는 골프를 꿈꾸는가?

  • 유토이미지
스페인의 대표적인 프로골퍼 세베 바예스테로스(1957~2011)는 14세 때 69타를 쳐 신동 골퍼로 소문나기 시작, 17세 때는 천재 골퍼로 인정받았다.

1974년 스페인오픈 전야제 축하연에서 있었던 일화 한 토막.

한 선배 프로가 파3 홀에서 11타를 친 적도 있다고 말하자 이 신동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프로가 한 홀에서 10타 이상을 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고참 선배는 “자네는 잘 해보게. 우리는 한 홀에서 두 자릿수를 자주 치니 자네만은 한 자릿수를 간직하기 바라네”하고 말했다.

다음날 세베는 파5 홀에서 드라이브 샷이 훅이 나 볼은 OB지역으로 날아갔다. 다시 친 볼은 슬라이스로 다시 OB. 5타째는 페어웨이에 떨어졌으나 6타는 워터해저드, 그 다음엔 벙커에 빠졌다. 결국 9온에 2퍼트로 11타를 쳤다.

경기 후 세베는 어제 저녁에 만난 선배 프로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한 홀을 11타 이내로 끝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더군요.”

1997년 라이더스 컵 유럽팀 단장을 맡기도 했던 세베는 영국의 ‘스윙머신’ 닉 팔도와 함께 1970~1990년대 세계 골프를 선도하는 골퍼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드날렸다.

스페인 북부해안의 한 어촌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세베는 형이 쓰다 준 녹슨 3번 아이언으로 8살 때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 1974년 17살에 프로로 데뷔했다. 19세 되던 1976년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에서 미국의 대선수 조니 밀러에 이어 2위에 오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79년 22세 나이로 로열 리덤 앤 세인트앤스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 해일 어윈을 제치고 생애 첫 메이저 우승과 함께 스페인 선수 최초 메이저 챔피언에 오르고 1980년 평생 꿈꿔 왔던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브리티시 오픈 3승, 마스터스 2승 등을 포함해 PGA투어에서 9승, 유러피언투어에서 50승 등 생애 통산 91승을 올려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1940~196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가수 빙 크로스비는 골프광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주재하는 유명인사 초청 경기에서 그의 볼이 마침 레이디 티에 떨어져 거기서 치려고 하자 한 갤러리가 “크로스비씨, 여기는 티샷하면 안 돼요. 뒤의 레귤러 티에서 쳐야지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크로스비는 얼굴도 돌리지 않고 “쓸데없는 참견 말아요. 나는 지금 3타째를 치려는 거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1997년 브리티시 오픈에서 영국의 스티브 보틈리가 125야드의 파3 홀에서 7오버파 10타를 기록했다. 아마추어도 평생 내기 어려운 기록이다.

8번 아이언으로 친 티샷을 그린 옆의 뚝 너머로 보낸 보틈리는 두 번째 샷을 그린 앞 벙커에 쳐넣었다. 3번째 샷은 볼을 건드리기만 했고 4번째 샷은 다시 둑을 넘어 드롭이 불가능한 러프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 러프에서 보틈리는 5번째, 6번째 샷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볼은 점점 러프 속으로 깊어 들어갔다. 혼신의 힘으로 친 7번째 샷은 로켓처럼 솟아올라 그린 오른쪽의 벙커로 들어갔다. 8타 만에 그린에 올린 그는 2퍼트로 길고 긴 파3 홀을 마쳤다. 126야드가 그에게는 1,260야드보다 더 길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기대한 스코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실망할 일이 아니다. 파 행진을 하다가도 어딘가에서 무너져 쓴맛을 보게 되는 게 골프다. 프로선수들도 상상하기 힘든 추락을 경험하는데 주말골퍼들이 기대에 벗어난 스코어를 냈다고 절망에 빠지는 것은 지나친 자기학대다.

남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쾌감이 있고 다음에 다시 쓴맛을 보지 않겠다는 각오가 골프채를 던지지 않게 해주지 않는가. 추락은 나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골퍼에게 예외 없이 찾아온다.

오죽했으면 골프 배우는 것을 자동차운전을 배우는 것에 비교했으랴. ‘자동차운전을 배우는 것과 골프를 배우는 것의 차이는 차는 이것저것 마구 부딪치는 데 반해 골프채는 좀처럼 볼에 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는 골프 유머가 전해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사상 처음 11월에 열린 ‘명인 열전’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5)도 한 홀에서 셉튜플 보기(Septuple bogey·7오버파)를 범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극적인 우승으로 황제의 귀환을 알렸던 우즈는 1라운드에서 4언더파 68타를 기록하며 타이틀 방어 가능성을 보였으나 최종 라운드에서 셉튜플 보기를 범하며 골프에서 추락은 병가지상사임을 증명했다.

난코스로 꼽히는 이른바 ‘아멘코너(11~13번 홀)’ 두 번째 홀인 12번 홀(파3)에서 벌어진 일이다. 홀 전장은 155야드로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린 폭이 좁고 주변 내리막이 심해 그린 앞에 공이 떨어지면 물에 빠지기 쉽다.

우즈는 티샷을 그린 앞에 떨구는 바람에 공이 굴러 물에 빠졌고, 3번째 샷은 그린에 올라갔지만 백 스핀이 걸려 다시 물에 빠졌다. 다섯 번째로 친 샷은 그린 뒤 벙커로 향했다. 벙커 경사면에서 친 여섯 번째 샷은 그린을 넘어 다시 물에 빠졌다. 여덟 번째 샷은 프린지에 멈춰 2 퍼트로 겨우 홀아웃했다.

천하의 타이거 우즈도 이렇게 추락하는데 주말골퍼들은 추락이란 말 자체를 입에 올릴 계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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