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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제 발등 찍는 ‘미스샷’을 중계방송하지 마라

  • 자료이미지. 픽사베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국민적 사랑을 받는 시다.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의미의 뉘앙스가 약간씩 다르겠지만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여주고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대상이 생명을 얻어 존재가 빛난다는 뜻이리라.

무심코 지나치는 길가의 화초도 내가 어떤 이미지를 갖고 명명(命名)하는가에 따라 꽃이 되거나 잡초가 될 수도 있다.

대상의 객관적 모습을 떠나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고 그렇게 말하면 아름다운 것이 되고 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면 추한 것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물을 묘사하고 이름 붙이는 것은 대상에 대한 화자(話者)의 주관을 대상에 투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골프장에서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입이 가벼운 사람과 무거운 사람. 용하게도 이 두 부류의 골프 역시 판이하게 갈린다.

가벼운 입은 부정적인 것을 담기 마련이다. 식당에서부터 “어젯밤 술자리 때문에 늦게 일어나 급히 달려오는데 앞차가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드는 바람에 사고 날 뻔했다니까.” “요즘 통 연습을 못해 공을 맞히기나 할까 모르겠어.” “몸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다니까.” “골프 재미가 예전 같지 않아.” 등 좋은 것과는 거리 먼 것만 털어놓는다.

라운드를 시작하고 나서도 “난 이 골프장에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어.” “날씨가 으스스한 게 잘 맞을 것 같지 않네”라며 좀처럼 친밀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심한 경우 샷을 하기 전후 부정적 코멘트를 덧붙이는 사람도 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드라이버를 뽑아 들고 “요즘 드라이브샷 제대로 날린 기억이 없어.” “잡아채지 말아야 할 텐데.” “뽕샷은 나오지 말아야지.” “헤드업은 평생 고질이란 말이야.” “훅을 고치고 나니까 요즘엔 슬라이스가 괴롭힌다니까.” “이제 시니어 티에 갈 때가 되었나 봐.” 등 나쁜 기억만 털어놓는다. 드라이브샷 미스를 하고도 재확인하는 발언을 한다.

어프로치 샷을 남겨놓고도 “거리 조정이 정말 어려워.” “공을 세우지를 못하겠어.” “어프로치 실수로 타수를 다 까먹는다니까”라고 불안해하는가 하면 그린 위에서도 “도대체 라인 읽기가 너무 어려워.” “오르막 내리막 구분하기도 쉽지 않아.” “스리 퍼팅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등 부정적 내용 일색이다.

자신의 미스 샷을 중계방송하듯 입에 올리면 자신을 부정적인 틀 속에 가두고 만다. 지난 홀의 미스샷이나 참혹한 장면을 계속 되새기며 후회하는 언행은 자신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뜨리고 제 발등을 찍을 뿐이다.

골프 코스에서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 실력자일 가능성이 높다. 함부로 지레짐작하지 않고 겸허하게 동반자들의 수준을 살피며 자신의 경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말을 해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기를 불어넣을 것들만 입에 올리는 것이 습관이 돼 있다.

“오늘 날씨를 보니 좋은 라운드가 될 것 같습니다.” “모두 표정들이 밝으신 걸 보니 좋은 스코어를 낼 것 같군요.” “이 코스는 나와 궁합이 맞는 것 같아.”

만족한 라운드를 하려면 대화든 독백이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것을 입에 올려야 한다.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것은 입에 담지 않음은 물론 머릿속에조차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

법구경(法句經)은 입과 말의 재앙을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우리는 도끼를 입에 물고 태어나 살아가며 제 몸을 찍게 되나니 이것은 오직 스스로 내뱉은 말 때문이니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듯’ 어떤 날의 라운드 품질도 내 머릿속이나 입을 거쳐 나온 발언의 내용으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벼운 입이 골프를 망치고 무거운 입이 골프를 살린다.

●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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