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을 땄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가 한국 야구의 최고 정점이었던 것일까. 13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 야구는 역행의 산물인 듯싶다. 최근 한 달 사이, 수년간 힘들게 쌓아 올렸던 한국 야구의 ‘성’이 급격하게 무너졌다. ‘술자리 파문’이라 불리는 몇몇 프로야구 선수들의 방역 수칙 위반 사례부터 ‘노메달 수모’와 음주운전·대마초 사태 등이 원인이었다. 팬들의 분위기는 싸늘히다. 과거 논란 속에서도 팔이 안으로 굽던 팬들마저 등을 돌렸다. 야구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찍었단 소리며 2008년 이후 야구 붐이 일었을 때와는 그 분위기가 정반대란 말이다.

지난 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 6-10으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연합뉴스

위기의 한국야구… 하지만 이럴 때도 있었다

한국 야구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진출을 시발점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 2009년 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 대회를 시작으로 아시안게임 3연패를 달성하며 황금기를 맞았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쾌거는 야구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회자되고 있다.

당시 한국은 결승에서 아마야구 최강 쿠바를 꺾으며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한국 야구는 가히 뜨거웠다. 경기장으로 관중들을 불러모으며 국내 최고의 프로스포츠로 단숨에 자리매김했다. 프로야구는 2016년에는 총 관중 833만9577명으로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8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로 무관중 경기가 많아지면서 관중들로 북적북적하던 야구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바이러스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 위안을 삼으며 긍정적인 미래를 그렸다.

‘술자리 파문’이 가져온 나비효과

‘술자리’ 파문으로 한국 야구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중순께 NC다이노스의 박민우, 박석민, 이명기, 권희동은 잠실 원정 숙소에서 외부인 2명과 술판을 벌여 당시 방역 수칙이던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을 어겼다.

접촉한 외부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 결국 KBO리그 속에 바이러스가 스며드는 계기가 됐다. 밀접 접촉자가 쏟아져 나왔고 결국 KBO이사회는 7월12일 전반기를 일주일 일찍 종료시켰다.

같은 호텔에서 키움 히어로즈 한현희, 안우진과 한화 이글스 주현상, 윤대경도 방역 수칙을 어긴 것으로 드러나 논란은 더욱 커졌다. 몇몇 선수들의 안일했던 태도로 인해 프로야구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 사태로 박민우와 한현희가 대표팀에서 자진 이탈하면서 2020도쿄올림픽 야구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가 바뀌는 코미디까지 연출됐다. 한바탕 어수선한 일을 겪은 야구대표팀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리 만무했다.

13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했지만, ‘노메달’ 수모를 겪으며 씁쓸하게 대회를 마쳤다. 변형된 패자부활전 방식으로 한국은 두 번의 준결승전을 치렀지만, 일본과 미국에 연패했다. 3·4위 전에서도 도미니카공화국에 무릎을 꿇으며 참가국 6개팀 중 4위의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도쿄올림픽 야구 동메달 결정전에 출전한 강백호가 껌을 씹으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이 모습이 TV화면에 잡히면서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KBS 방송화면 캡처

음주운전에 대마초까지… 충격 덮는 충격 놀랍게도 팬들을 실망은 여기까지가 아니었다. 이제는 방출된 키움 외야수 송우현의 음주운전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8일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가 경찰에 적발된 것.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일부 선수들의 경각심 없는 태도와 도쿄올림픽 부진으로 인해 한국 야구가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송우현의 음주운전은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소속 구단 키움도 가차 없이 전격 방출 결정을 내렸다.

충격적인 소식은 또 있었다. KIA 타이거즈의 1선발 외국인 투수 애런 브룩스는 인터넷으로 주문해 미국에서 들여온 전자담배에서 대마초 성분이 검출돼 세관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브룩스는 “한국에서는 대마초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문제가 된 전자담배는 대마초 성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주문했다”며 “나의 과실로 팬과 구단, 팀원의 명예를 실추시키게 돼 너무 죄송하다”는 입장이지만, KIA는 이번 사안에 대해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10일 KBO 사무국에 브룩스의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했다 . 지난시즌 KIA 유니폼을 입은 브룩스는 11승을 거두며 재계약에 성공했다. 올해도 3승 5패 평균자책점 3.35의 성적을 거두며 KIA의 에이스 역할을 해왔다.

KIA는 마약류 문제는 사안이 중대하다는 점에서 경찰이나 검찰 수사가 아닌 세관 조사만 받은 단계에서 발 빠르게 대처했다. 금지약물 사용 논란도 터졌다. 10일 두산의 한 선수가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해당 선수는 억울함을 호소했고, 지난해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관련 내용을 소명했다.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팬들의 도덕적 눈높이는 시대에 맞게 높아진다. 그러나 정작 선수들은 제자리걸음, 더 심하게는 역행하고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었던 팬들마저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초라한 올림픽 성적으로 성난 팬심을 달래지도 못한 한국 야구다. 2008년 베이징대회로 ‘야구 붐’을 일으켰던 한국 야구는 13년 만에 대회 2연패는커녕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노진주 스포츠한국 기자 jinju217@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