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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여성이야기] 잔다르크
세상을 바꾼 여걸의 대명사
프랑스 백년전쟁 승리의 영웅…1920년에 가서야 시성돼






때로 홀홀 단신 일어나 세상과 맞서며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는 여성에게 잔다르크라는 별명을 많이 붙힌다. 어떤 여성에게 잔다르크라는 별명이 붙었다면 그것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모두 이야기하는 것이다.

잔다르크는 실존 인물로 중세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간에 걸친 전쟁기에 나타나 프랑스를 승리로 이끈 소녀이다. 잔다르크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잔다르크는 어린 나이에. 아무런 주변의 도움 없이, 홀홀 단신 일어나, 프랑스 병사를 지휘하여 백년전쟁의 승리를 이끌어 낸 신비에 싸인 소녀로 알려져 있다. 잔다르크의 눈부신 활약은 후세에 잔다르크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힘없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한 많은 강인한 여성을 대표하는 의미가 되었다.

잔다르크(1412-1431)는 프랑스 동레미의 한 평범한 농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다른 소녀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신에 대한 믿음이 누구보다 강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17세 소녀 잔다르크는 기도 중에 천사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스스로 몸을 일으켜 왕을 도와 프랑스를 구하라는 계시였다.


- 평범한 농민의 딸에서 전사로



당시 프랑스는 100년째 영국과 지리한 왕위 계승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전역은 전장으로 변했고 백성들은 잦은 전쟁에 피폐해져 있었다. 게다가 잔다르크가 신의 계시를 받을 즈음 프랑스는 궁지에 몰려 영국에게 영토전체를 내어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동레미의 평범하고 작은 소녀, 잔다르크는 어느날 마을을 떠나 프랑스의 황태자 샤를이 머물고 있는 시농성을 찾아갔다. 그리고 신의 계시를 받아 황태자를 도우러 왔노라고 엄숙히 말하였다.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00년이 넘는 기간동안 계속되었다. 이 전쟁은 엄밀히 말하면 영국의 랭카스터가와 프랑스의 발로아가와의 왕위 계승 전쟁이었다. 두 집안은 이전부터 지속된 복잡한 정략결혼의 결과로 친인척 관계가 얽히고 설켜 정당한 왕위 계승자가 사라졌을 때 누구라도 왕위계승 권리를 들고나올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프랑스의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두 가문간의 백년전쟁은 시작되었다.

샤를 4세의 사촌인 발로아가 필리페 6세가 왕위를 이었지만 영국의 랭카스터 가문 또한 만만히 물러나지 않았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그의 모계 쪽 권리를 내세워 프랑스의 왕위를 넘보았다. 전쟁은 100여 년 간 전장터가 된 프랑스 영토는 곳곳이 초토화되었다. 많은 백성들이 왕가의 다툼에 병사로 동원되어 의미없이 죽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의 귀족세력은 분열하고 있었다. 부로고뉴가 등 귀족 일부는 가문의 이해득실을 따져 프랑스보다는 영국의 왕가를 지지하고 있었다.


- 지친 병사들 북돋우고 자신은 선봉에

프랑스의 황태자 샤를은 계속 영국의 공격에 밀려 남하 하고 있었다. 파리를 내준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선왕이 죽은 이후, 왕으로 즉위하지도 못한 채 황태자로 머물면서 어려운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소녀 잔다르크는 샤를 황태자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프랑스를 구원하겠노라고 맹세하였다. 그리고 잔다르크는 샤를 황태자의 마지막 보루이던 오를레앙으로 병사를 몰고 달려갔다. 프랑스병사들은 신의 계시를 듣고 왔다는 어린 소녀의 눈물겨운 노력에 감동하였다. 그녀가 흰 갑옷을 입고 병사들의 앞에 서 있으면 사기가 求쳄?찔렀다. 마침내 오를레앙 전투에서 프랑스는 승리하였다.

잔다르크는 프랑스 병사들에게 승리의 여신, 행운의 여신, 전투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잔다르크가 이끄는 프랑스 병사들은 치솟은 사기로 영국군을 무찌르기 시작했다. 전쟁의 승리와 함께 잔다르크는 샤를의 대관식을 적극 추진하였다. 샤를의 프랑스 왕 즉위식은 영국의 헨리 6세보다 앞섰다. 이로써 샤를은 샤를 7세로 프랑스 왕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신의 계시를 받고 온 한 명의 소녀가 이루어낸 일이었다.

샤를 7세는 즉위 후 안이해 졌다. 파리탈환을 통해 영국군의 완전 축출을 주장하는 잔다르크의 말을 무시한 채 1년을 보내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영국군의 재 공격을 받게된다. 잔다르크는 다시 한번 왕과 프랑스를 위해 갑옷을 입었다. 잔다르크는 퐁피에뉴 전투에서 샤를 7세에 반대하는 부르고뉴군대에 사로잡히게 된다. 부르고뉴는 잔다르크를 영국군대에 몸값을 받고 팔아 넘긴다. 영국은 샤룰 7세에게 잔다르크를 풀어주는데 대해 엄청난 몸값을 부른다. 그러나 샤를 7세는 영국의 제안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음으로써 잔다르크가 적진에서 죽어가도록 내버려둔다. 이미 왕위에 오른 샤를 7세에게 잔다르크는 신의 계시만을 부르짖는 성가신 존재였던 것이다.


- 샤를7세의 배신, 안타까운 최후

잔다르크는 7번의 재판 끝에 마녀, 이교도, 우상숭배의 죄목을 뒤집어 쓴다. 중세 기독교는 신성한 신의 중계자인 사제를 거치지 않고는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녀를 이단으로 몰았다. 잔다르크는 끝내 자신에게 내린 신의 계시를 부정하지 않고 루앙의 광장에서 화형으로 19세의 꽃다운 인생을 마쳤다.

백년 전쟁은 1453년에야 프랑스 왕가와 부르고뉴 가의 극적인 화해로 영국군을 프랑스에서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끝났다. 샤를 7세는 1456년에 가서야 잔다르크의 마녀 혐의를 풀어주고 그녀를 명예회복 시킨다. 살아 있을 때 그녀를 버리고 죽어서야 복권시킨 것이다. 잔다르크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교회는 1920년에 가서야 그녀를 성녀로 시성하였다.

귀족도 아니었고, 남자도 아니었던 핍박받는 민중의 딸, 잔다르크는 비장미와 함께 오늘날까지 열세한 입장에서 일어나 세상을 바꾼 많은 강인한 여성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다.



김정미 방송ㆍ시나리오 작가 limpid7@msn.com


입력시간 : 2004-07-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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