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이 맺어준 '적과의 우정'스타벅스 커피를 매개로 한 운명적 만남, 현대인의 정체성 상징 음료

[문화 속 음식기행] 영화 <유브 갓 메일> 커피
익명이 맺어준 '적과의 우정'
스타벅스 커피를 매개로 한 운명적 만남, 현대인의 정체성 상징 음료


'익명성'은 인터넷 매체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지만 요즘의 추세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본인의 사진이나 글을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올려 공개하기를 좋아하며 사이버 공간 속의 분신인 '아바타'를 가꾸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할애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들은 어쩌면 거대 사회 안에서 점점 작아지는 '개인'의 존재를 찾기 위한 움직임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고르면서 지불하는 2.95달러에는 단순히 한 잔의 커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받는 것도 들어 있다.”노라 애프론의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은 세계 최대 도시 뉴욕에 사는 두 남녀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매일 아침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들고 출근하고, 같은 곳에서 장을 보며, 같은 장소를 지나가면서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조(톰 행크스)와 캐슬린(멕 라이언). 그러나 이들은 각각 'NY152'와 'Shop-girl'이라는 이름으로 메일을 주고받는 친구 사이이다.


- 사이버 공간을 통한 남녀의 만남

마음을 터놓으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지기 직전,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세계에서 '적'으로 만난다. 초대형 체인서점 업체 '폭스 북스'의 사장인 조가 하필이면 캐슬린이 경영하는 아동전문 서점 근처에 새 지점을 내게 된 것. 이들은 곧 서로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며 신경전을 벌인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캐슬린은 'NY152'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고,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조는 고민에 빠지는데….

사이버 공간을 통한 남녀의 만남이라는 설정이 언뜻 우리 영화 <접속>을 연상시키지만 이 영화의 원작은 제임스 스튜어트와 마가렛 설리번이 주연한 1940년 영화 <모퉁이 서점>이다. 두 사람을 이어 주는 매체가 원작의 엽서에서 이메일로 바뀐 것 이외에 <유브 갓 메일>은 한 가지 요소를 더 집어넣었다. 고독과 정체성의 문제가 그것이다. 스타벅스 커피와 대형 서점은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를 넓혀주는 듯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해진 틀 속에서의 선택일 뿐이다. 이메일 아이디와 스타벅스 커피로 자신을 규정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결핍되어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타벅스는 세계 최대의 커피 전문점으로 1971년 제럴드 볼드윈과 고든보우커, 지브 시글이 시애틀의 파이크 플레이스 시장에서 개점한 것이 시초이다. 미국 내에만 1600개에 달하는 지점이 있고, 한해 매출이 13억 달러에 이르는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은 지난 1999년. 5년 만에 100개의 지점이 생겼고 서울 명동의 스타벅스 자리는 평당 1억 3851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이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컵을 들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직장인들을 보는 것도 이제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구한말 처음 소개된 커피는 상류층들에게 세련된 서구 문화의 상징이었다. 1895년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고종 황제가 커피를 즐겨 마신 것을 시작으로 독일인 손탁 여사가 정동구락부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하며 민간에도 알려지게 된다. 1920년대에는 명동·충무로·종로 등지에 다방들이 늘어나면서 기생과 커피 한잔을 즐기는 부잣집 도령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커피가 이보다 대중화된 것은 6.25 전쟁 이후로 미군부대에서 원두커피와 인스턴트 커피들이 공급되면서부터이다.


- 커피의 기원, 에디오피아·북예맨 설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 지역의 한 양치기가 낯선 열매를 먹고 흥분한 양들을 발견한 것이 커피의 기원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다른 설도 있다. 아라비아국의 모카(지금의 북예멘)의 수도사 새크오마가 유배지에서 허기져 있던 도중, 처음 보는 커피 열매를 따서 스프를 만들어 마셨더니 원기가 솟았다고 한다. 그는 모카로 돌아가 커피와 커피 마시는 법을 전파했고 이로 인해 그는 성자로 숭상 받게 된다.

에티오피아 원산인 커피는 9세기 무렵 아라비아반도로 전해져 처음 재배되었다. 초기에는 커피 열매를 그대로 끓여 그 물을 마시거나 즙을 발효시켜 알코올 음료로 만들었다. 커피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십자군 전쟁 이후인 12세기로 처음에는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꺼려졌으나 밀무역으로 이탈리아에 들어온 뒤 교황으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커피가 전 세계에 퍼지게 된 것은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이 서남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에서 커피를 대량 재배하면서부터이다.

커피는 추출 방법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는데 가장 진한 맛을 지닌 것이 에스프레소이다. 고압에서 빠르게 뽑아내는 에스프레소는 맛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대로 뽑아내면 쓴 맛이 거의 없다. 여기에 우유를 1:4의 비율로 섞으면 아침에 주로 마시는 카페 라떼, 우유 거품을 얹으면 카푸치노가 된다. 그 외에도 마키아토, 카페 모카, 모카치노, 아메리카노 등이 커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입력시간 : 2004-10-0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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