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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여성이야기]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美 국민의 영원한 퍼스트 레이디
국민의 사랑 한 몸에 받던 서른 둘의 백악관 안주인
오나시스와 재혼, 워킹우먼 능력 떨치며 강한 여인상 남겨




최근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 당사자에 대해 가장 뜨거운 관심을 가졌지만, 때로는 후보를 둘러싼 개인적 환경, 즉 가족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는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재선이 확정되었을 때 아내 로라 부시와 함께 축하를 받았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대통령 부시와 함께 로라에게도 비춰졌다. 미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남편의 정치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대통령 가정을 꾸려나갈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당연하다.

미 국민은 그들이 뽑은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를 언제나 함께 기억해 왔다. 그 중에 미 국민은 재기발랄하고 패션감각이 뛰어나며 아름답고 강인했던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를 가장 사랑한 것으로 전해진다.

- 퍼스트 레이디의 대명사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 오나시스(1929-1994)는 프랑스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상류층이었던 가정에서 자라난 그녀는 조지 타운대학을 졸업하고 신문 기자로 활동하였다. 이 무렵 재클린은 우연한 기회로 젊은 나이에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던 상원의원 존 F. 케네디를 만난다. 두 사람은 2년여에 달하는 뜨거운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린다.

그로부터 8년 후 재클린은 남편의 손을 잡고 퍼스트레이디로 백악관에 입성한다. 이때 재클린의 나이 불과 32세였다. 어디를 내놔도 손색없는 선남선녀인 대통령 커플은 어디서나 환영받았다. 특히 퍼스트레이디 재클린의 세련된 매너와 패션감각은 언제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미 국민은 재클린과 케네디 대통령을 그 어떤 대통령 부부보다 사랑했다.

그러나 이 시기 재클린은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잘 알려진 대로 마릴린 몬로와의 염문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언제나 재클린을 괴롭혔다, 그러나 그녀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로서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부부처럼 보여졌고 미국은 너무나 보기 좋은 젊은 대통령 부부를 가질 수 있었다.

- 달라스에서 울린 총성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의 주도 달라스에서 재클린은 남편 케네디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카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이때 울린 한발의 총성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갑자기 케네디 대통령이 머리를 재클린 쪽으로 젖히며 고꾸라졌다. 순간 재클린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그 유명한 ‘오 마이 갓’. 미국 제35 대 대통령 케네디는 그렇게 암살자의 손에 의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재클린도 그날의 총성과 함께 10여년 간의 결혼생활과 3년간의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끝내야 했다.

남편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장에 3살의 어린 아들 존 F. 케네디 2세의 손을 잡고 참석한 후 공식석장에서 사라진 재클린은 일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나는 듯 했다. 그리고 5년간 재클린은 미망인이 된 전 퍼스트레이디로 기억될 뿐이었다.

-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재혼

그로부터 5년후 미 국민은 경악할 만한 소식을 접한다. 그저 조신하게 들어앉아 아이들이나 키우며 눈물젖은 세월을 보낼 것으로 믿었던 재클린 케네디의 재혼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그저 전 퍼스트레이디가 재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쾌감을 보였을 미 국민은 재혼의 상대가 불한당같은 그리스의 세계적인 부자 오나시스라는 데서 더욱 더 경악했다.

갖가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으며, 케네디와 비교해 한참이나 못생겼으며, 게다가 최근까지 세계적 오페라가수 마리아 칼라스와 염문을 뿌리던 60대 고령의 남자 오나시스와 재클린이 재혼한다는 사실에 미 국민은 말도 못할 상실감과 분노를 느꼈다. 온갖 악의에 찬 기사들이 언론을 도배했다.

그러나 재클린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그녀는 케네디와의 사이에 낳은 두 아이를 데리고 당당히 오나시스와 결혼했다. 오나시스 가문은 지금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부자이지만 당사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가 생존시엔 세계 최고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었다. 이 결혼으로 재클린은 부를 얻었고 오나시스는 미국 최고의 미남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의 아내를 탈취한 남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 워킹우먼으로의 변신

그러나 이 결혼도 그렇게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나시스는 재클린을 전시용으로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능력을 뽐내고 싶어했다고 한다. 말도 못한 모욕감속에서도 재클린은 8년간의 결혼생활을 보냈다.

오나시스의 갑작스런 죽음이후 그녀는 장황하게 긴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 오나시스란 이름과 막대한 금액의 상속금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이제 재클린이 부유한 생활을 즐기며 조용히 칩거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재클린은 보통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성이 아니었다.

재클린은 기자로 활동했던 처녀시절의 경력을 되살려 출판과 언론 일에 뛰어들어 잡지를 발간하고 책을 출판하였으며, 특유의 매력과 지성으로 많은 사업 동반자를 끌어들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뛰어난 워킹우먼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케네디와 오나시스라는 이름 속에 깃든 전 남편들의 영향력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재클린은 94년 암으로 임종하기 직전까지 미국 상류층 사교계의 대모로, 또 출판업계의 큰손으로 삶을 영위했다.

백악관의 안주인, 세계 최고 부호의 아내, 그리고 뛰어난 사업가로 살았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 중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행복했을 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다. 다만,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충격과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을 지킬 줄 아는 강인하고 굳센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김정미 방송ㆍ시나리오 작가 limpid7@msn.com


입력시간 : 2004-11-1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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