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녕기 장애 ① 안면 홍조

갱년기는 남자나 여자 누구나 다 나이가 들면 맞는다. 갱년기(climacteric)를 뜻하는 영어는 그리스어의 사다리라는 단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젊음의 정점을 지나 인생의 내림길로 내딛는 것을 뜻한다.

갱년기란 난소가 임신능력을 상실하여 월경이 끝나는, 여자에 있어 노년기로 진입하는 기간인 셈이다. 여성은 40대 중반에 접어 들면 월경이 없어지며 젊음을 유지해 주는 여성호르몬의 기능이 저하된다. 생체 리듬도 흐트러져 눈에 띄게 몸과 마음이 고단해지고 의욕이 떨어진다.

갱년기를 맞는 여성 4명 중 1명꼴로 이런 증상을 겪는다. 한의학에서는 월경과 임신을 주관하는 충임맥의 기능 쇠퇴와 여성 기능이 속해 있는 장부인 신장의 기능이 허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신장, 즉 비뇨생식기 계통의 기능이 쇠퇴해지면서 연기나듯 몸의 병적인 불의 기운이 왕성해져서 몸속의 진액을 마르게 하여 제반 증상을 야기한다는 것.

한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에 따르면, ‘여자는 49세가 되면 임맥이 허약해지고 태충맥과 혈이 쇠약해져 월경이 단절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갱년기 여성의 생리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다.

갱년기에는 손발이 얼음같이 차가워지는 냉증, 머리로 피가 올라가는 것 같은 증세, 가슴 두근거림, 얼굴 상기 등을 비롯하여 요통, 배통, 어깨결림 같은 운동 장애가 나타난다.

저림이나 개미가 기어가는 것처럼 간질간질한 지각 이상 증상과 불안감, 초조함, 흥분, 우울, 불면 등의 정신적 증상 그리고 전신 권태, 피로, 하품, 현기증, 귀울림 같은 원인 불명의 불쾌감을 호소하는 증상도 있다. 이와 같이 갱년기 장애로 인한 여러 증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안면 홍조이다.

급성 증상의 하나인 안면 홍조는 주로 난소기능의 저하로 에스트로겐이 결핍되면서 나타난다. 가족관계의 공허함, 본인의 성격 등 정신적 원인도 상당하다.

보통 얼굴이나 목 그리고 가슴의 피부가 갑자기 붉게 변하면서 수 분 내지 수 초간 화끈거리며, 몸 안에 강한 열감을 동반한다. 숨이 가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두통을 동반하기도 한다.

목과 가슴, 얼굴 부위에 먼저 오고 전신으로 퍼지며 홍조 후에는 혈관이 수축돼 오한이 나다가 사라진다. 수면을 방해할 만큼 홍조가 심하기도 하며 피로와 졸음, 건망증, 초조함 등을 일으키거나 구토감, 현기증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때때로 흥분이나 신경질적인 행동을 취하는 여성도 있다.

증상은 대개 3분 이내에 없어지며 하루에 5~10회, 심한 경우 30회 이상 반복되기도 한다. 밤과 낮, 시간을 가리지 않으며 예민하거나 피로, 긴장한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특히 밤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잦고 양측난소 절제술을 받은 사람의 경우에는 더 심하다. 3~5년에 걸쳐 서서히 사라진다.

치료법으로는 충분한 안정과 함께 적당한 운동을 통하여 긴장된 심신을 풀어주면서, 혈을 보하고 정신을 안정시켜주는 한약을 복용하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한약 처방과 함께 충임맥의 기능 회복에 보탬이 되는 약침과 뜸, 기혈 순환을 도와주는 물리 치료를 병행한다.

예방하려면 술이나 커피, 설탕, 짜고 매운 자극성 음식을 피하고 체중에 신경 써야 한다. 콩, 우유, 어패류, 채소류의 섭취를 늘리는 게 좋다.

녹차와 대추차는 피를 맑게 하고 심장기능을 보하여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 칼슘분이 풍부한 균형 있는 식사와 전신 관절의 고른 운동, 외부 환경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중요하다.


이경섭 강남경희한방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