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마음에 귀 기울여봐요

부부생활이 원만치 않은 경우, 한의원에 와서까지 곧잘 다투곤 한다. 주로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는 것으로 시작해, 말펀치를 날리다 종국엔 서로 얼굴을 붉힐 정도로 손가락이 오고가며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꼬여버린다.

“그래, 그래. 관둬, 너 없으면 못 살 줄 알지? 천만에”

“알았어! 알았다니까….”

“에잇! 다시는 같이 다니나 봐라”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야말로 성경에 나오는 말씀처럼 ‘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를 보는 듯하다.

곁에서 이런 말다툼의 끝을 보노라면 어느 한 쪽이 완승해 쾌재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둘 다 패자의 씁쓸함을 맛본다. 왜 그럴까.

그것은 대화 중에 나 자신을 논리와 지식으로 두껍게 둘러싸 상대방이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못 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언어가 나일 수 없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본래의 나일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이런 것들은 서로가 소통할 때 벽이 되고 때로는 불신과 반감을 부른다. 인간에게는 이보다 훨씬 소통이 빠른 속 껍질이 있다.

바로 감성의 껍질이다. 가령 “쓸쓸해요” “외로워요” “행복해요” 등을 말하면 상대방이 머리를 써가며 이 말을 이해하지 않아도 안다. 그저 느낌으로 통한다.

그런데도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고, 가장의 의무가 저렇고, 당신의 잘못이 무엇이고, 다른 사람의 삶은 어떠하고 등으로 거창하게, 현학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 상대방이 이해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살가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일차적 감정이나 솔직한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나 자신 또한 상대방의 말에서 가식없는 속마음을 느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음이 소통될 때 겉으로 쌓인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러기 위해선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최소한 3초 정도의 시간을 갖고 그의 마음을 헤아려본 후 대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결혼 10년차의 여성이 찾아왔다. 맞벌이 아내로 남편과 몸과 마음 모두에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우선 마음의 소통을 위하여 감성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원장님 말은 이해하겠지만, 그 이한테 통할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반신반의했다.

1주일 후 그녀는 다시 내원하였고 얼굴이 밝았다.

“원장님, 우리 부부가 희망을 찾았어요.”

하루는 제가 다른 이야기는 다 빼고 “여보, 오늘 나 많이 힘들어. 한 번 꼭 안아줘”라고 말했더니 의외로 남편이 나를 꼭 껴안더니 “여보 힘내, 내가 있잖아. 내가 항상 힘이 되어줄게”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녀는 너무나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며 “여보 나 지금 너무 행복해”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이혼하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나를 표현하는 방식의 작은 차이가 이렇게 큰 변화의 물꼬를 틀 줄은 몰랐어요” 자존심의 허울을 벗고 솔직한 속마음을 열어 보여준 것이 남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마음의 문이 연 다음, 몸의 소통에 대한 치료와 교육을 받은 이들 부부는 성관계에서도 예전과는 다른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처럼 작은 말씨의 변화가 서로의 마음씨를 일깨웠고 그 씨앗은 육체관계 속에서 싹을 틔워 행복의 꽃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이재형 미트라한의원 원장 www.mitr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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