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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창] 한미 외교·국방 장관 협상에도 ‘답답’

美는 ‘인권’, 北은 ‘으름장’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 연합)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성 장관의 한일 연쇄 방문이 마무리됐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외교·안보 '투톱'의 첫 한일 방문은 한미 관계는 물론 한일, 미·중, 북미, 쿼드(Quad) 등 다양한 양자관계와 다자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척도였다. 이번 방문에 대해 미 측은 만족했다는 입장이지만 조기에 북미 관계 개선을 희망해온 우리 정부에게는 쉽지 않은 숙제만 남았다.

블링컨 장관과 오스틴 장관의 방한 과정에서 불거진 가장 큰 관심 사안은 북한의 대응이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CNN방송도 미 당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하는 등 긴장감이 고조됐다.

북한은 무력 도발 대신 펜을 들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연이어 담화를 내며 한국 정부와 미국을 압박했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한미연합훈련을 주된 공격 대상으로 삼아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이 중심이었지만 핵심 배경은 미국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 부부장은 "대양 건너에서 우리 땅에 화약내를 풍기고 싶어 몸살을 앓고 있다"며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미국 정부에 대한 북한의 첫 공식 대응이었다. 북한 최고위급에서 미국 새 정부에 직접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점이다. 미국 내 언론들은 김 부부장의 위상을 높게 평가한다. 당국자 수준이 아닌 최고 지도자의 가족이 직접 나섰다는 점은 침묵보다는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은 지난 1월 김 위원장이 바이든 대통령 취임 전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새로운 조미(미북)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언급한 이후 미국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아 왔다.

김 부부장의 발언 수위는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는 게 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안킷 판다 미 과학자연맹(FAS) 선임연구원은 “악역을 맡아왔던 김 부부장의 발언치고는 수위가 낮다”면서 “조심스럽게 경고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앤서니 루지에로 선임 연구원은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북한이 현상 유지를 위해 경고를 보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김 부부장에 이어 실무급인 최선희 제1부상도 나섰다. 최 제1부상은 미국의 접촉 시도 사실을 확인하면서 대북 적대 정책이 철회돼야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또 "조미 접촉을 시간 벌이용, 여론몰이용으로 써먹는 얄팍한 눅거리(보잘것 없는) 수는 스스로 접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싱가포르나 하노이에서와 같은 기회를 다시는 주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 제1부상 역시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을 다시 강조했다.

북미 ‘기싸움’에 한국 끼어들 자리 없어

미국은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북한의 이번 연쇄 담화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담화 발표 당시 일본과 한국에 머물렀던 블링컨 장관은 물론 백악관, 국무부 관계자 모두 담화에 대한 평가를 애써 외면했다.

대신 미국은 북한의 인권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역공을 취했다. 인권을 보편적인 잣대로 삼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에도 중국과 북한에 인권 문제를 가장 앞세웠다. 블링컨 장관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모두 발언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해 한미 간의 시각차를 보인 것 아니냐는 인식도 제기됐다.

미국 측은 북한의 비난에 대응하기보다는 동맹과 함께 한다는 입장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 한국 일본과 공조하겠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북미 간의 대화는 미국 측의 대북 정책 재검토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돼야 방향이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측이 이번 한국 일본 방문 기간 구체적인 대북 정책 방향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정책 마련 전 북한과의 충돌을 피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시점은 이미 예고됐다. 블링컨 장관은 방한 기간 중 언론 인터뷰를 통해 “수주 내에 대북 정책 재검토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북한과 협상에 나설 대북 특별대표도 곧 임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링컨 장관은 ‘북한에 대해 제재와 압박이 여전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열린 마음으로 정책 검토에 임하고 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북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먼저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탈퇴한 이란 핵 합의 복귀를 예고했지만, 이란이 요구하는 선 제재 해제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이란의 대미 압박 확대 속에 빠르게 이뤄질 것 같던 미국의 이란 핵 합의 복귀도 시계 제로 상황에 접어든 이유다.

북한이 요구하는 '선대선' 원칙도 미국이 먼저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제재를 풀라는 것인데 원칙과 동맹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악화는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 가능성도 희석시키고 있다. 지난18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은 정면으로 충돌하는 공방전을 펼쳤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에 대한 비핵화를 설득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여러 정황상 북미 간의 접촉이 쉽지 않을 것임이 예상되지만 우리 정부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의(2+2 회의) 후 공동기자회견 중 "최선희 부상이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에 이어 연이은 담화를 발표한 데 주목하고 있다"면서 "북한 방식으로 우리와 미국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평가한다"고 언급했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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