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의를 앞두고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한 미국의 불만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 조야는 전반적으로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시선이 점점 싸늘해지는 모양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 검토를 마무리한 상황에서 북미 대화를 견인해야 하는 문 대통령이 이 문제를 미 측에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따라서 대북전단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이 향후 한미 관계의 갈등 요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미국 내 조야에서는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가 대북전단금지법이 접경 지역 주민 안전을 보장하려는 조치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조야의 시선은 표현의 자유 논란과 북한 인권 문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

미국은 인권에 이어 종교의 자유 차원에서도 대북전단금지법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최근 국무부가 발표한 ‘2020 국제 종교자유 보고서’와 대북전단금지법을 연계한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미국이 종교 문제에 대해 우리와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보고서는 대북 선교단체 '순교자의 소리'가 쌀과 성경을 담은 대북 전단을 살포하려다 경찰의 제지로 무산된 사실을 적시했다. 아울러 미국의소리방송(VOA)을 인용,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고 한국 정부가 전단 살포를 막지 않으면 남측과의 협력을 철회하겠다고 위협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북한의 압박으로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든 것이라는 의심이 깔려 있던 셈이다.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선언한 것도 미국 조야의 불만을 자극했다. 문 대통령의 입장이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의 근간을 흔들어 한미 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국제인권 감시단체 휴먼라이츠워치 존 시프턴 아시아국장은 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미 의회도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 개최를 주도했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은 문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며 추가 청문회를 예고했다.

스미스 의원은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만든 법이 표현의 자유와 관련 모든 사안에 정반대되는 것이며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철회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라고 주장했다. 크리스 의원은 "북한 주민들도 진실을 접할 자격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스미스 의원은 자신이 북한 인권 침해에 관한 일곱 차례의 청문회에서 의장을 맡았다는 점을 상기하며 올해 말 만료되는 북한인권법을 재상정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하는 일이 너무나 실망스럽다.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막아서도, 단속해서도 안 되며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며 추가 청문회 개최 추진을 예고했다. 그는 최근 방미한 탈북민 출신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과 만나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밥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회의 위원장이 주도해 발의한 한미동맹을 위한 초당적 결의안도 다르지 않다. 결의안은 한미 양국이 북한의 비핵화 달성과 함께 인권 증진을 위해 지속해서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 예다.

대북 전단 금지법은 유엔에서도 비판의 대상이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UN)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면서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 침해와 관련자 처벌에 대한 비례성과 모호한 문구 등 여러 문제가 있는 만큼 국회 차원에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퀸타나 특별보고관의 발언은 우리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에 나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에 대한 법적 대응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만약 박 대표에 대한 법적 조치가 이뤄지면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할 것임을 예고한 것과 다름없다.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표현의 자유에 기초한 행위에 대해 징역형을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클레멍 불레 평화적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 메리 로러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도 지난달 우리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과도한 처벌 가능성을 우려한 바 있다. 서한에서 보고관들은 대북전단금지법의 표현이 모호하며 과잉처벌 금지 원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미국 인터넷 매체 데일리 비스트는 박상학 대표와 인터뷰한 직후 경찰이 자유북한운동연합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했다.

미 국무부가 "미국은 북한 인권 문제와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을 증진하기 위해 비영리 단체 및 탈북민 단체들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우리 정부에는 부담이다. 미 측이 정부 차원에서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를 지원하겠다는 의지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의 기본에 인권을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을 자극하는 일을 자제하고 있지만, 인권만큼은 양보하지 않는 이유다. 미국이 대북정책 특별대표보다 북한 인권대사를 먼저 임명하려는 의도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인권을 통한 북한 자극을 극히 경계하고 있다. 그 사이 우리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도 부정적으로 돌아설 수 있다.

오히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본다는 국제 사회의 비판 여론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 대통령이 북한의 인권 문제나 표현의 자유 문제로 한미관계에서 발목이 잡히는 미묘한 상황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