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 ( 사진=연합뉴스 )
[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현재의 느슨한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면 과잉 부채에 의한 심각한 위험에 시달릴 수 있다고 자크 드 라로시에르 전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가 경고했다.

유럽개발은행 총재도 지낸 라로시에르 전 총재는 금융 싱크탱크 공적통화공용기금포럼(OMFIF) 기고문에 “중앙은행의 정책이 변해야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라로시에르에 따르면, 미국의 연준 등 중앙은행들은 현재의 (제로금리·양적완화 등) 비전통적 상황에 머무르기 위해 ‘정적 접근’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부적합해 점점 위험만 키우고 있다.

팬데믹에서 회복되는 동안 시행 중인 중앙은행의 정책은 금융위기를 촉발해 부정적인 사회·경제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의 저금리 또는 마이너스 금리 체제는 은행과 보험의 수익성을 약화시켰다. 과잉 통화정책에 나오는 보조금 성격의 지원으로 이미 파산 처리될 좀비 기업들은 돌아다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통화정책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 교착상태에 빠져있었다. 지난 10년간 세계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355%까지 치솟았다. 거대한 차입은 금융 시스템을 약화하고 안정을 흔들고 있다. 금융자산과 부동산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초저금리 체제가 몇 년더 지속된다면 성장과 고용 모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엄청난 유동성과 저금리 환경은 자금흐름을 생산이 아닌, 단기 유동성에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2008년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의 본원통화(MB)는 연평균 13.5% 증가하며 명목 GDP 성장률 보다 네 배 이상 빨랐다. 그러나, 같은 기간 본원통화에 민간 보유 현금·예금·금융상품과 비금융기관까지 더한 유로존의 총유동성(M3)은 연평균 3.5% 증가에 그쳤다. 돈이 돌지 않은 것이다.

지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애초 2023년보다 1년 앞당겨 금리를 올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연준은 기존의 통화정책 체제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유는 아직 세계 수요가 약하고, 저축률이 높으므로 부양책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기 긴축 시 나타날 수 있는 혼란과 경기 침체를 걱정했다. 또한, 연준은 자신들의 정책 타당성을 위해 일시적 인플레이션 주장과 완전 고용에 도달하지 못한 노동시장을 언급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5년후5년간 기대인플레이션이 2% 부근에서 고착되어 있다며, 중장기 물가 안정론을 피력했다.

그러나, 연준의 주장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지난 10년간 제로 수준 금리 체제하에서 세계 GDP 성장률은 14.4%에서 12%로 내려왔다. 심지어 비주거 시설투자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특히, 유럽의 유동성 함정 상태는 심각하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주창한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이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를 낮춰 시장에 현금이 흘러넘쳐 구하기 쉬운데도 기업의 생산, 투자와 가계의 소비가 늘지 않아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마치 경제가 함정(trap)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가계는 (저금리로) 저축 수익은 없고, 수익 없는 장기 위험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보다 자산 투자 시 이동이 쉬운 단기 유동성 상품에 돈을 보관하고 있다. 이제 중앙은행이 기어를 바꾸고 긴축해야 하는 이유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 부양책이 실시되고 있다. 숙련된 노동자의 부족, 공급 병목 현상, 인플레이션 현상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연준이 매월 사들이는 채권을 줄여 나가겠다는 테이퍼링은 현재의 함정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연준이 지금 정책을 바꾸지 않고 다시 늦추고, 높은 인플레이션이 떠나지 않는다면 훨씬 더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더 강력한 긴축을 시행하면서 성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동안 세계는 더 많은 공공·민간 부채에 익숙해져 왔다. 높은 차입은 자산의 시장 가치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이 닥친다면 자산가치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고령화까지 고려하면 더 힘들어질 것이다. 과잉 부채를 짊어진 기관들은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자산하락 등 시장 역전은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다. 중앙은행은 지금 바꾸는 것보다 훨씬 높은 기준금리로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할 것이다. 성장을 망가뜨리거나, 인플레이션이 폭발할 수 있다. 아니면 경기 불황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덮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나락에 떨어질 수 있디.

한편,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재정의 과잉 활동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에만 집착하는 재정 지배는 세계 기후 위기의 도전에 필요한 구조 개혁을 지체시킬 수 있다. 이런 과제는 돈을 푼다고 해결할 수 없다.



박병우 기자 pb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