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아이즈’ 국가 중 최초로 K-9 자주포 전격 계약 의의

호주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장갑차 ‘레드백’ 완성 시제품. (사진=한화디펜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호주가 한국의 방위산업 효자 제품인 K-9 자주포를 도입키로 하고 지난 13일(현지시간)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날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한국-호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화디펜스가 호주의 방사청 격인 획득관리단(CASG)과 호주 캔버라에서 이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호주의 K-9 도입사업의 예산 규모는 최대 1조9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계약 체결로 호주는 K-9을 운용하게 되는 세계 여덟 번째 국가가 된다. 정부는 이번 계약 등으로 올해 한국의 무기 수출액이 무기 수입액을 넘어서는 첫해가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부가 예상하는 올해 방산 수출 수주액은 100억달러(약 12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현재 약 5조원 규모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의 호주 수출도 추진 중이다.

호주에 K-9 30문·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 공급

이번 계약은 지난 13일 문 대통령과 모리슨 총리가 캔버라 국회의사당에서 양국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가운데 체결됐다. 행사에는 손재일 한화디펜스 대표이사와 리차드 조 한화디펜스 호주법인장 등 주요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한국과 호주 정부가 지속적인 국방·안보 협력을 이어온 점이 이번 계약의 큰 원동력으로 꼽힌다.

양국 정상은 2019년 9월 국방·방산협력을 의제로 정상회담을 개최한 바 있고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외교·국방(2+2) 장관 회의를 열어 방산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또 이번 정상회담 외에 지난 6월(G7)과 10월(G20)에도 한-호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경제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번 K-9 사업 계약 체결을 환영하며 향후 호혜적 방산 협력이 지속 강화되기를 바란다”면서 “방산 협력 외에도 호주는 오랜 우주 개발 역사를 보유한 우주산업 강국으로, 이번에 체결되는 ‘우주 협력 업무협정(MOU)’을 바탕으로 우주 분야에서도 양국간 협력 시너지가 창출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당초 호주 정부는 육군 현대화 노력의 일환으로 ‘랜드(LAND) 8116’ 자주포 도입 사업을 추진해 왔고 지난 9월 한화디펜스 K-9을 단독 후보 기종으로 선정한 후 최종 협상을 진행해 왔다. 계약 체결에 따라 한화디펜스는 호주 육군에 K-9 3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를 공급하게 된다.

이번 계약을 통해 K-9은 서방권 핵심 안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 국가에 처음으로 수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주요 무기체계를 호주에 수출하는 사례이기도 해 더 의미가 깊다. 게다가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시에 자주포 생산시설을 건립해 현지에서 자주포 생산 및 납품을 진행함으로써 향후 호주 방위산업 활성화는 물론 한-호 방산협력 확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방산업계는 이번 계약이 세계 자주포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K-9의 우수성과 신뢰성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쾌거로 평가하고 있다. 한화디펜스가 국내 방산기업 최초로 해외 생산거점을 확보해 명실상부 글로벌 선두 방산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호주 차세대 장갑차 도입 기종으로 독일과 경합 중인 레드백

이번 K-9 계약이 약 5조원 규모의 레드백 수출로 이어질지 국내 방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레드백은 우리나라 육군이 운용 중인 K-21 보병전투장갑차의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최첨단 궤도장갑차다. 2019년 9월 호주 육군의 차세대 장갑차 도입 사업의 최종 2개 후보 기종 중 하나로 선정돼 독일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올해 1월 시험평가용 레드백 시제품 3대가 호주 육군에 인도된 후 화력과 기동, 정비·수송 등의 최종 시험평가가 진행 중이다. 내년 1분기 우선협상대상자가 발표되기 때문에 이번 K-9 계약이 레드백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화디펜스에 따르면 호주에서 서식하는 붉은등 독거미 이름을 딴 레드백은 한화디펜스가 이스라엘과 호주, 캐나다 등 글로벌 방산기업들과 협력해 개발한 5세대 보병전투장갑차다. 레드백에는 세계 최고 수준 특수 방호 설계 및 강화구조가 적용됐고 ‘암 내장식 유기압 현수장치’를 탑재해 주행성능과 기동성이 대폭 강화됐다.

한화디펜스 관계자는 “레드백은 복합소재 고무궤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차량 주행시 진동은 최대 70%까지 줄어들고 소음도 현저히 감소한다”며 “여기에 내구도 증가로 인해 정비 수요는 최대 80%까지 줄어들고 차량 경량화로 연료는 30% 가까이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호주 국빈 방문을 수행한 강은호 방위사업청장도 지난 13일 K-9 수출 계약 이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계약으로 한국과 호주간 신뢰가 훨씬 더 깊어질 것”이라며 “호주도 우리 측과 상생하는 것이 국익에 맞다고 판단된다면 당연히 레드백을 선정할 것으로 본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레드백을 직접 언급했는지도 관심사다. 다만 강 청장이 이에 대해 “양국 정상간 레드백 사업을 거명했는지를 말씀드릴 것은 아니고 정상간 깊은 신뢰 관계는 양국간 방산협력에도 가장 강력한 기반이 된다”는 식의 다소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았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가 내년 1분기 우선협상대상자가 발표되는 레드백에 대해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이 된다”면서 “5조~6조원 규모의 사업에서 레드백은 여전히 독일 보병전투장갑차와 경쟁 중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레드백 홍보활동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안보와 관련된 외교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 외교’가 항상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도 비공식적인 세일즈 외교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