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통치 시대 태평성대 싹을 틔우다아버지 태종과 상반되는 리더십… 상생과 통합의 철학으로 극적 대비

KBS 대하드라마 ‘대왕세종’이 본격적으로 세종의 왕위 등극 이후를 그려가기 시작했다. 5월18일 방송된 40부에서 충녕대군은 세자에 책봉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아버지 태종의 전격적인 양위(讓位)로 마침내 조선 4대왕에 올랐다. 때는 1418년 8월. 그의 나이 22세였다.

하지만 가장 위대한 군왕으로 불리는 세종의 치세를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오히려 아버지 태종의 위세에 눌려 전전긍긍하는 젊은 세종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뿐이 아니다. 태종 때부터 조정을 지켜온 권신들로부터 훈계까지 받는 장면에서는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한다.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군권은 자신의 통제 하에 남겨두었다. 왕조시대 권력유지의 핵심 수단이었던 군권을 갖지 못한 세종으로서는 ‘반쪽’에도 못 미치는 왕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세종은 아버지의 ‘무릎’ 아래 있던 재위 초기 4년 동안 왕의 권세를 누리기는커녕 외척 발호를 경계한 태종에 의해 처가가 풍비박산 나는 것도 막지 못할 만큼 어쩌면 무력했다. 등극 원년에 감행된 대마도 정벌도 마찬가지였다. 왜구들의 침범을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세종의 의사는 태종의 정벌론 앞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드라마 ‘대왕세종’은 이처럼 재위 초기 가시밭길을 걸었던 세종의 행보를 비교적 정밀하게 담아내고 있지만, 역사상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 왕으로 세종을 인식하고 있는 시청자들은 적잖이 당혹스럽다. 그러나 이런 장면은 진정한 세종의 면모를 그려내는 밑그림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전우성 PD(조연출)는 “재위 초기 장면들은 향후 드라마 전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세종은 모든 사람을 껴안고 가는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정적이었던 황희도 포용했고, 장인 심온의 사사를 외쳤던 신하들과도 함께 갔다. 스스로 양보와 희생을 감내하며 통합을 이룬 군왕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부자지간인 태종과 세종의 리더십 비교는 중요한 시청 포인트다. 태종은 왕권강화를 최우선에 두고 자신의 뜻에 반한다면 형제, 처남까지도 처단할 만큼 냉혹한 철권을 휘둘렀다. 반면 세종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쓴 소리를 내뱉는 비판자나 정적까지도 중용하는 깊고 넓은 가슴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하지만 태종과 세종의 리더십 차이는 시대상황과도 맞물려 있다는 게 제작진의 생각이다. 개국 초기 수많은 난제들을 헤쳐나가야 했던 태종은 피와 희생을 제물로 전진하는 돌파형 리더를 자임했다. 이에 비해 국가의 기틀이 어느 정도 다져진 시기에 왕위에 오른 세종은 폭력과 숙청의 사슬을 끊어내고 통합과 상생의 리더십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우성 PD는 “극중에서 세종의 리더십이 가장 좋다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태종의 리더십이나 양녕대군의 리더십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시대에 가장 필요했던 리더십이 바로 세종의 리더십이었다고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대중에겐 함께 꿈꿀 상대가 필요하다. 그가 제시하는 이상에 열광하고 싶어하며, 이상의 실현을 위해 함께 뛰고 싶어한다. 우리는 그런 리더의 전형이 될 수 있는 인물로 주저 없이 세종을 꼽는다.”

‘대왕세종’ 제작진이 밝히는 기획 의도다. 세종의 리더십은 어수선하고 불안한 건국 초기를 지나 본격적인 국운융성의 첫발을 내디뎌야 했던 그 시대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지도자가 부재한 지금 이 시대에도 꺼지지 않는 영원한 리더십의 등불이다.

■드라마 '대왕세종'의 사실과 허구

드라마 ‘대왕세종’은 극적 재미를 위해 군데군데 허구적 요소도 적잖이 배치해 놓았다. 제작진은 대표적인 픽션으로 고려왕실의 후예인 옥환을 수장으로 하는 대(對)조선 항쟁세력의 활동과 충녕대군의 원지(遠地) 유배를 든다.

우선 조선왕실 전복을 호시탐탐 꾀하다 결국은 괴멸당한 옥환의 반군 세력. 사료에는 고려 후예의 반군활동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조선 개국 초기에 개경을 중심으로 옛 고려왕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일부 기록이 있어, 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정정(政情) 불안을 묘사하기 위해 극적으로 다룬 것이다.

충녕대군이 북방 경성 땅으로 쫓겨가는 일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 충녕은 태종의 반군 진압 방식에 대해 “어제의 과오를 반성치 못하고 백성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실체라면 더 이상 조선의 왕자로 살지 않겠다”며 격정을 토로하다가 태종의 노여움을 산다.

하지만 이것도 완전한 허구다. 제작진은 요동정벌을 꿈꿨던 양녕대군의 리더십을 충녕대군의 리더십과 대비시키기 위해 경성 땅을 무대로 삼았다고 한다.

‘대왕세종’의 허구적 요소는 드라마 초반의 흡인력을 위해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별로 없을 것이라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세종 당대에 이뤄진 수많은 업적과 일세를 풍미한 인재들의 이야기만으로도 드라마의 재미가 차고 넘칠 것이기 때문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