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을 깡패로 키우는 '가장 나쁜 공공의 적' 응징

“닮고 싶은 선배가 있나요?”

남자 배우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십중팔구는 그의 이름 석자를 꺼낸다. 바로 설경구다. 영화 <공공의 적> <오아시스> <실미도> <역도산> <그놈 목소리> 등에서 걸출한 연기력을 보여준 덕분이다. 연극적인 과장된 몸짓 없이 자연스럽게 배역에 녹아 드는 그의 연기야말로 후배들이 본 받고 싶어하는 롤모델이다.

설경구가 최근 영화 <강철중: 공공의 적 1-1>(감독 강우석ㆍ제작 KnJ엔터테인먼트,시네마서비스)로 다시 한 번 걸출한 연기력을 뽐내고 있다. 지난 2002년 흥행작 <공공의 적>의 프리퀄이다.

“<싸움> 개봉 전에 만났을 때, 6년전 신인의 마음을 유지하면서도 그때보다 잘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이 된다고 했었죠. 실제 강철중을 다시 연기하니 어땠나요?”

“현장 분위기는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죠. 그런데 감독님이 자꾸 체크하시죠. ‘강철중 웃음으로!’ ‘강철중 톤으로!’라고요. ‘어? 강철중이 어떻게 웃었지?’ 싶죠. 1편에서의 ‘나’를 모델로 해서 연기를 해야 하는 격인데, 정말 묘했어요.”

설경구는 <강철중>에 들어가기 전 일부러 <공공의 적>을 다시 모니터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순전히 몸의 감각으로 6년전 자신이 어떤 연기를 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살려야 했다. 대중이 너무나 잘 아는 강철중을 강철중 자신이 제대로 살려내지 못할까 두렵기도 했다.

“살이 덜 붙은 것 같다고 한 마디라도 들으면 그렇게 신경이 쓰여요. 라면 먹고 자고 가기도 하고, 일부러 머리를 감기도 했죠. <그놈 목소리>에서 앵커 역할 때문에 피부관리를 받아 잡티를 제거했는데, 다시 잡티를 그려 넣어야 하나? 생각했을 정도라니까요. 하하.”

설경구는 여전히 신인의 자세로 감독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강우석 감독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배우로 설경구를 들었다. 그 이유는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다른 일에 한 눈을 팔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라고 했다.

“아유, 제가 CF를 찍는 것도 아니고,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인회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른 스케줄 있다고 핑계를 댈 수가 없다니까요.”

설경구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만큼 감독을 존중한다. 자신보다 훨씬 작품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역할이라는 생각에 감독의 지시를 철저히 따른다. 전체를 보는 눈은 감독만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설경구는 <강철중>에서 ‘역시 설경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터프한 형사의 매력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코믹과 액션까지 소화해냈다. 설경구는 고등학생을 깡패로 키워내는 사업가 이원술(정재영)이 그동안의 ‘공공의 적’ 중 가장 나쁘다고 강조했다.

“사실 1,2편은 개인의 욕망과 야욕에서 나온 사회악이라면, 이원술은 진정한 의미의 공공의 적이죠. 물론 정재영은 이원술도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강철중이 되지 않았겠냐고 항변해요. 일리 있는 말이죠.”

우연찮게도 <강철중>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이슈로 전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쇠고기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축장에서 영화가 시작해 강철중이 고기를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광우병이 문제인데 수입을 한우로 속여 파느냐”는 대사까지 나온다.

“촬영 당시에는 그런 이슈가 없었는데 신기하죠. ‘광우병’이라는 대사는 촬영 당일 감독님이 시나리오에 직접 펜으로 적어 주셨어요. 고등학생들이 앞장 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고 느꼈어요.”

설경구는 <강철중> 촬영 당시 찌웠던 몸을 한달 반 만에 14kg이나 감량해 놨다. 과하지 않은 근육이 셔츠 속에서 느껴지는 듯 했다. 몸 전체에 흐르는 적당한 긴장감은 그의 수더분한 미소와 어우러져 섹시함마저 풍겼다. 작은 편이지만 속눈썹만은 긴 그의 눈 역시 따뜻했다.

“종합검진을 해 봤는데 다행히 전혀 이상이 없대요. 술 먹지, 담배 피우지…(담배에 불을 붙이며) 밥 제 때 못 먹지. 근데도 건강하니 감사하죠. 그래도 자꾸 살을 뺐다 찌우는 건 하지 말라고 하던걸요. 다행히 차기작 <해운대>는 몸을 안 만들어도 된다고 해요. 그래도 배우와 운동은 떨어뜨리면 안 된다고 봐요. 준비하는 거니까.”

설경구는 평소에는 지인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골프를 치며 시간을 보낸다.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지만 평소에는 깜짝 놀랄 만큼 순진한 중년 남자들과 농담을 하며 보내는 동안 오히려 에너지를 충전 받는다고 했다.

“우리 모임 이름이 ‘불사조’에요. 불쌍한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19일에 뭐 하냐’고 하길래 제 영화 개봉일이라 보려고 하는 줄 알았더니 ‘어? 너 영화 개봉해?’ 이러는 친구들이죠.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하하.”


스포츠한국 연예부 이재원기자 jjstar@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