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앨범판매금지로 '음반의여왕' 대접단순한 멜로디·맑은 목소리·아름다운 노랫말 강한 중독성

창작과 연주 그리고 노래까지 겸비한 뮤지션을 흔히 싱어송라이터라 부른다. 세상엔 수많은 싱어송라이터가 존재하지만 2000년대 이전까지 국내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존재는 천연기념물 정도로 희귀했다.

최근 개체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주목할 만한 여성 뮤지션은 여전히 극소수다. 심수봉, 이상은, 장필순, 한영애 정도가 이 부분에선 대표주자로 거론할 만하다. 국내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충분한 연구가 부족하기에 공식적으로 최초라고 말하기가 부담스럽지만 우선 1971년 8월 ‘그리운 사람끼리’를 발표했던 박인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숙명여대 불문과 출신인 그녀는 데뷔시절인 혼성듀엣 ‘뚜아에무아’ 활동 때는 노래가사 쓰기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1972년 솔로 독립 후 ‘모닥불’, ‘하얀 조가비’등 앨범마다 창작곡 2-3곡을 발표하며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존재를 알렸다. 뒤를 이어 이
연실, 방의경, 김광희, 김현숙 등도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음반을 통해 확인되는 1세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다.

통기타 소리가 요란했던 1970년대 명동에는 전설적으로 회자되는 남녀 포크가수가 있었다. 서울 미대의 김민기와 이화여대 미대의 방의경이다. 방의경의 이름 석 자는 일반대중에겐 생소한 이름일 것 같다.

그녀는 여성뮤지션으로는 유일하게 한대수, 김민기, 김의철과 같은 저항적인 프로테스탄트 창작 포크 앨범을 발표했던 여대생 가수다.

양희은이 불러 유명한 70년대의 대표적인 번안 포크송 ‘아름다운 것들’과 창작곡 ‘불나무’ 그리고 김인순이 불러 히트했던 ‘하양나비’는 대중이 기억하는 그녀의 작품들이다. 상업적인 음악활동보단 아마추어적인 활동범위를 유지했기에 방의경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신비로운 존재다.

방의경은 1970년 첫 창작곡 ‘겨울’로 창작의 물꼬를 튼 이후 30여곡을 작곡했다. 그녀는 곡 창작에 대해 “가슴이 벌렁벌렁 뛰면서 전깃줄에 감전되듯 저절로 가사와 곡이 한꺼번에 떠올랐다”고 말한다. 방의경의 창작곡이 최초로 수록된 음반은 ‘한국 3대 포크 명반’으로 추앙받는 1972년 초 발표된 컴필레이션 앨범 ‘우리들’.

당시 대학생 싱어송라이터들의 아지트였던 충무로 음악감상실 내쉬빌의 멤버들이 참여한 불후의 명반이다. 이 음반을 통해 그녀는 창작곡 ‘불나무’를 발표했다. 양희은도 취입한 이 노래는 암에 걸린 줄 알았던 한 여성 환자에게 생명의 불씨를 지펴준 사연으로 포크 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정미조와 더불어 ‘이화여대의 노래잘하는 쌍두마차’로 통했던 방의경은 대학졸업 후 cbs의 인기 청소년 음악프로그램 '세븐틴'의 DJ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2년 발표된 그녀의 유일한 독집은 어두운 사회현실을 맑고 아름다운 은유적인 노랫말로 표현한 명반이었다. ‘그들’,‘폭풍의 언덕에 서면 내 손을 잡아주오’ 등 수록된 12곡(한 곡은 서유석이 노래)의 창작곡들은 단 한번일지라도 듣고 나면 꼼짝없이 중독되는 마력을 발휘한다.

멜로디들은 동요처럼 단순했지만 맑은 목소리와 아름다운 노랫말로 표현해 내는 순백의 감성은 압권이다. 하지만 이 전설적인 국내 최초의 여성싱어송라이터 앨범을 실제로 본 사람은 드물다. 그녀의 노래들은 인터넷을 통해 소리 소문 없이 퍼져 나가며 mp3파일소장 자체가 자랑일 정도로 소위 ‘듣기 힘든 대중가요’의 대명사였다.

앨범은 발매 즉시 방송과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수록곡들은 대부분 방송금지의 멍에를 썼다. ‘데모하는 학생들이 즐겨 부른다’는 이유였다.

시중 음반가게에 진열된 그녀의 모든 음반은 들을 수 없게 칼로 그어져 폐기되었다. 그 때문에 한국 대중음악사에 기록될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앨범’은 남겨진 음반 숫자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실제로 90년대 말 포크음반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 음반의 존재유무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 음반은 신중현사단 김정미의 NOW음반과 더불어 ‘부르는 것이 가격’인 가요 음반의 여왕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후에 발표된 방의경의 곡들도 운명은 비슷했다. 국민가요급인 '아름다운 것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금지가 되었다. 데모하다 죽은 학생들의 삶이 슬퍼 지은 '하양나비'도 그랬고 대표곡인 '불나무'도 사전에 없는 말이라며 금지의 족쇄를 찼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본인은 이 기념비적인 음반에 대해 “녹음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재킷 사진도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찍은 사진으로 레코드사에서 일방적으로 써버려 큰 애착이 없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

선구적인 음악활동에 불구하고 전혀 대중적 조명을 받지 못한 방의경. 1974년, TBC '5시의 다이얼'의 DJ활동 후 한 친구의 주선으로 장충동 스튜디오 엔지니어의 도움으로 2집 녹음에 들어갔었다. 자정을 넘어 통금이 되면 스튜디오의 문을 잠그고 비밀리에 밤샘 녹음을 했다고 한다.

그때 녹음한 ‘하양나비’,‘마른 풀’,‘검은 산’등 그녀가 창작한 30여 곡은 시대의 아픔에 분노하고 슬픔을 어루만진 방의경 음악의 진수라 할 만 했다.

하지만 지인에게 맡겨 논 마스터 음원은 분실되었고 끝내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혔다. 그녀가 베일에 가린 한국 포크의 전설적인 여가수로 남겨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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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