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그 어떤 경험보다 짜릿한 설렘을 가져다 줄 때가 있다.

예전엔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뜨거운 가슴’을, 켜켜이 묻어두었던 그 시절 ‘추억’을, 잊혀

져만 가던 ‘사람들’을 뭉게뭉게 피어 오르게 한다.

특히 뚜렷한 목적 없이, 계산 없이 떠난 여행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발길 닿는 데로 떠난 여행지에서 마주한 풍경들과 사람들과의 인연이 인생의 또 다른 깨달음을 주는 것처럼.

여기 단순한 떠남이 아닌 감미로운 일탈을 꿈꾸며 여행에 나선 세 명의 시인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 특유의 서정과 자유로운 감성을 고스란히 에세이에 녹여냈다.

시인 이병률이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50개국, 200여 도시의 풍경을 기록한 <끌림>(랜덤하우스중앙 펴냄)은 사람과 사랑과 삶의 여행노트다. 성숙의 이름을 달고 미성숙을 달래야 하는 그의 목마름을 채워준 것은 다름아닌 여행이었다.

누군가 여행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 했지만 그에게 여행은 또다시 떠나기 위해 반드시 돌아와야만 하는 끊을 수 없는 인생의 뫼비우스띠 같은 것이었다. 숙명처럼 여행을 시작한 이병률 시인은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추억들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목차도 페이지도 매겨져 있지 않은 <끌림>은 결국 출발지도 종착지도 정하지 않은 채 떠나고 돌아옴을 반복하는 그의 여행길인 셈이다.

<끌림>이 청춘의 뜨거운 심장을 느끼게 한다면 조병준 시인의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예담 펴냄)는 청춘의 꿈을 향해 보내는 영혼의 편지다.

조병준 시인은 왜 길을 떠나야 했는지, 그토록 떠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며 낯선 길을 향해 떠돌아야 했는지, 지나친 이상주의자, 낭만주의자로 오인 받으면서도 1%의 순수성을 찾기 위해 결국엔 떠날 수밖에 없었던 숙명 같은 떠돎의 이유를 시적 언어와 사진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는 보통 사람들이 현실에 내주었던 청춘의 꿈과 열정을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한 시인의 자전적 고백인 동시에 청춘들에게 보내는 가슴 따뜻한 노래다. 수 십년 간 세계 각지를 떠돌며 느낀 인생의 의미와 내적성찰을 ‘여행의 가치’로 말하고 있다.

한편 2006년 여름부터 2007년 2월까지 고비사막과 시베리아를 횡단한 시인 김경주는 여행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랜덤하우스 펴냄)는 여행의 시작이자 끝, 그리하여 여행이라는 존재의 주민등록증과도 같다. 김경주 시인은 여행을 통해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가장 섬세한 타인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읊조린다.

여름의 고비사막에서부터 겨울의 시베리아로 이어진 그의 여정은 친절하기보다 모래알처럼 까칠하다. 묘하게도 그 까칠함이 거부할 수 없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네 삶 속에 어떤 기억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여권 속에 존재하고 있는 기억들이 곧 여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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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