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밀라노·뉴욕·런던·도쿄 유행 선도 디자이너·브랜드 경쟁 치열

지금 세계는 올림픽 경기에 출전해 최고의 기량을 두고 경합하는 자국 선수들을 향한 응원의 함성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자국 선수가 대회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 온 국민이 축제분위기로 들뜨기도 하고, 초상집 분위기로 침울해지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올림픽이 운동경기의 한판승부를 넘어 국가 간 자존심 대결의 장(場)임을 실감케 된다.

패션세계에도 올림픽 경기만큼이나 치열한 국가 간 경쟁이 존재한다.

자국의 패션산업을 키우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국제 패션쇼를 지원하는가 하면, 다른 나라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패션 및 라이프 스타일을 조사해 기업에 제공하기도 한다.

패션강국이 되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기본이고, 문화적 이미지도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파리, 이탈리아의 밀라노, 미국의 뉴욕, 영국의 런던, 일본의 도쿄 등은 치열한 세계 패션전쟁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세계5대 패션도시로 꼽힌다.

세계 패션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선망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이들 5대 패션도시의 승부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 오뜨 꾸튀르의 본고장 파리(프랑스)



파리는 '패션'하면 떠오르는 세계 최고의 패션도시다. 파리는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컬렉션 장소로 가장 선호하는 도시이며, 세계 각지에서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이기도 하다.

파리는 고급 의상점인 '오뜨꾸튀르(Haute Couture)의 본고장으로, 18세기부터 세계 제1의 패션도시로서 그 입지를 굳혀오고 있다. 파리의 오뜨꾸튀르는 11월과 7월, 1년에 2회씩 '파리 컬렉션'이라 불리는 작품발표회를 갖는데, 이것이 전세계 유행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작품발표회 기간 중에는 세계에서 바이어와 평론가 그리고 언론관계자들이 몰려든다. 파리 컬렉션에서 발표된 오뜨꾸튀르가 이듬해로 넘어가 '프레타 포르테(prêt--porter:유명 디자이너에 의한 고급기성복)로 발표되기도 하는데, 지금은 처음부터 '프레타포르테'를 위해서 디자인되기도 한다.

크리스찬 디올, 피에르 카르댕, 지방시, 샤넬, 발렌시아가 등 지금도 오뜨꾸튀르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다.

이밖에 파리는 루이비통, 셀린느, 에르메스, 까르띠에, 이브생 로랑 등 숱한 명품 브랜드가 탄생한 도시다.

패션 전문가들은 프랑스 패션의 힘이 무엇보다 창의성과 개성에 있다고 말한다. 최진계 KOTRA 파리무역관장은 "창의성을 강조하는 프랑스 패션산업의 분위기가 오늘날 파리를 세계 최고의 패션도시로 만든 배경"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또, 역사적으로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가 패션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까르띠에 김은수 홍보부장은 "파리에 가보면 파리의 앞선 패션감각이 결코 하루아침에 길러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파리의 패션은 예술의 도시에서 길러진 자유와 개성 그리고 높은 예술적 감각이 함께 빚어낸 예술"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 장인정신과 예술성의 결합이 빚어낸 밀라노 패션(이탈리아)



밀라노 역시 고급패션의 대명사이자 세계 최고의 쇼핑명소로 명성을 떨치는 도시다. 그러나 밀라노는 하이패션을 추구하면서 파리패션에 비해 실용성을 좀더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밀라노가 세계적인 패션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부터다. 구찌, 페라가모 등 가죽제품의 우수성이 널리 인정 받으면서 밀라노는 세계적인 패션의 도시로 우뚝 서게 됐다. 밀라노의 패션위크에도 샤넬의 존 라거펠드 등 세계 거장 디자이너들이 대거 몰려 들어 기량을 뽐내며, 세계 바이어들과 평론가, 기자들이 몰린다.

밀라노가 자랑하는 브랜드로는 구찌, 페라가모, 프라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테스토니, 베르사체, 아르마니 등이 있다.

밀라노 패션의 힘은 무엇보다 뛰어난 솜씨와 창조성 그리고 장인정신을 겸비한 디자이너 군단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르네상스 때부터 이어져온 풍부한 예술적 감각이 오늘날 밀라노의 패션을 창조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 뉴욕 스타일로 대변되는 현대 패션의 메카, 뉴욕(미국)



패션의 신대륙 뉴욕이 세계 3대 패션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전쟁 당시 미국의 디자이너들은 유럽 스타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미국적인 스타일을 추구하게 됐는데, 이것이 뉴욕 패션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매년 2월과 9월에 열리는 '뉴욕 패션위크'에는 다음 시즌에 유행할 새로운 디자인을 가장 먼저 보려는 패션 관계자들과 유명 연예인, 보도진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패션쇼와 브랜드 런칭쇼가 일년 내내 끊이지 않고 열리며, 거리의 뉴욕 시민 패션도 '스트리트 패션'이라 불리며 유행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로 인정 받고 있다.

또, 뉴욕에는 8개의 의상학교가 있는데,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도 그 중 하나다.

뉴욕은 갭, 바나나 리퍼블릭, 도나 카렌 뉴욕, 앤 클라인, 마크 제이콥스, 캘빈 클라인, 코치 등의 패션 브랜드를 출시해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다.

뉴욕관광청 한국사무소 이은경 홍보이사는 "도시적이고, 실용적이며, 현대적이며 세련된 패션 스타일을 지칭하는 '뉴욕 스타일'이라는 단어가 대명사처럼 쓰이는 것이 뉴욕의 패션문화의 입지를 증명해 주는 것 같다"며 "가장 빠르게 대중적인 패션 유행을 접할 수 있는 것이 뉴욕 패션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말했다.

■ 버버리 트렌치코트, 신사라면 동경하는 런던(영국) 패션



면직물 산업이 발달한 런던은 옛부터 고급 남성 맞춤복으로 유명한 도시였으나 1960년대 들어와 더욱 빛을 보게 됐다. 런던은 모드 디자인을 처음 시작한 곳이며, 품질이 뛰어난 기성복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버버리, 닥스, 아쿠아스쿠텀 등이 런던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이다.

신사적이고 클래식한 전통성과 함께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아방가르드하고 펑크적인 스타일이 공존하는 것이 런던 패션의 가장 큰 특징이다.

또, 유럽과 미국적 스타일의 혼합 속에서 독보적인 패션세계를 구축한 것이 런던을 세계적인 패션의 도시로 만들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고 다이애너 왕세자 비와 미녀스타 트위기는 런던의 패션 위상을 세계적으로 홍보하는데 일조했다.

■ 실험정신이 강한 하류문화와 하이패션의 접목, 도쿄(일본)



세계 5대 패션도시로 손꼽히는 도쿄는 패션세계에서 가장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곳이다. 일본 패션의 영향은 아시아 시장에서 먼저 나타나기 시작해 미국과 유럽으로 전파됐다. 해외 패션 전문가들은 '믹스 앤 매치(Mix & Match)'와 '레이어링(layering)'을 도쿄 패션의 특징으로 든다.

콤데갸르송,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 같은 일본 브랜드들이 세계 패션계에서 인정 받고 있으며, 도쿄의 스트리트 패션이 할리우드 스타나 패션 트렌드를 이끄는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국내에도 최근 들어 패션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일본 패션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도쿄 패션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데는 일본 하류문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 젊은이들의 하류문화에서 탄생한 실험적인 성향이 강한 거리패션이 하이패션에 접목되고, 이것이 세계패션시장에 신선한 영향력을 주게 된 것이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