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여름밤 시원한 맥주와 치킨 생각이 간절했다면 이제는 고소한 전어와 소주 한잔이 그리워진다. 아침, 저녁 찬바람이 불면서 여름철 떨어졌던 입맛이 다시 살아난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다. 계절 변화에 충실한 신체 반응에 대해 한 선배는 "머리보다 앞서서 몸이 먼저 말을 한다"고 맞장구를 친다. 가을, 참을 수 없는 맛의 유혹이 시작된다. 선선한 바람과 청명한 하늘은 우리의 식욕을 더 당기게 만든다. '맛을 그린' 산문집 3권을 골랐다.

언어의 마술사 작가는 맛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탁월한 능력을 자랑한다. 입담이 좋아 '황구라'란 별명을 갖고 있는 작가 황석영은 <황석영의 맛있는 세상>에서 음식에 얽힌 인생사를 풀어낸다.

유년의 피난 시절부터 가출과 입산, 베트남 전쟁과 민주화 통일 운동을 지나 방북과 유럽 망명, 수감생활로 이어지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언제나 사람과 음식이 함께 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순탄치 않은 세월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먹을거리와 버무려 눈물겹게 풀어낸다. 황석영에게 음식은 단순히 혀의 경험의 아니라 소통의 매개이다. 황석영은 음식이란 결국 사람의 관계를 담고 있으며 시대의 상징이자 문화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소설가 성석제 역시 2년 전 음식을 테마로 한 산문집 <소풍>을 낸 바 있다. 음식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엮었지만, 개인사를 중심으로 배열한 <황석영의 맛있는 세상>과 달리 음식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묶은 것이 차이다.

1부는 너비아니부터 묵밥까지 한끼식사로 적당한 음식, 2부는 냉면과 라면 같은 국수류, 3부는 김치나 홍시, 석화젓과 같은 곁다리 음식, 4부는 국화차, 소주와 같은 마실거리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의 흥겨운 입담과 날렵한 필치가 돋보인다. 만화 삽화를 넣어 한층 발랄하게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작가 공선옥은 올해 봄 음식 산문집 <행복한 만찬>을 냈다. 시골에서 자란 공 작가는 "찔레꽃 향기도 나지 않고 뻐꾸기 소리도 나지 않는 쌀밥이나 솔김치를 먹는 일은 단순 작업일 뿐이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그는 곡물, 채소, 어패류, 향신료, 열매 등 '행복한 생장'을 한 먹을거리를 소개한다. 먹을거리와 함께 지난 시절을 이야기 하는 작가는 '집시랑'(초가의 처마 끝), '염상스러운'(내숭떠는)과 같은 전라도 사투리를 녹여내 글을 한층 맛깔나게 만든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