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한 장 한 장에 사연… 8년 공백 깨고 전시회음반 대형화보다 1:1사업 등 새 시도 필요 조언도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이었죠. 초등학교 2학년 때 음악선생님께서 클래식음반을 추천하셨는데 그때 레코드 가게에서 클래식음반을 여러 장 구입했던 걸로 기억 나요.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베토벤의 ‘운명’이었고, 그 이후로 운명처럼 저의 음악인생이 시작된 거예요.”

국내에 ‘프로그레시브 록’을 비롯해 ‘아트록’을 알리고 전파한 ‘아트록의 선구자’ 성시완(47)이 8년 여 동안의 긴 공백기를 접고 팬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척박한 국내 음반시장을 외롭게 지켜나가는 ‘시완레코드㈜’ 대표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성시완’은 386세대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음악적 멘토’같은 존재였다. 1980년대 초반 MBC FM ‘음악이 흐르는 밤에’를 진행하며 당시 록 음악에 목말라 있던 라디오 세대들의 갈증을 해소 시켜줬고, 여세를 몰아 89년에는 ‘성시완의 디스크 쇼’를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보여주는 음악 ‘통로’이자 ‘해방구’ 역할을 수행한다.

계속해서 1992년에 아트록 페스티벌(Art Rock Festival)을 창시하기도 한 그는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 PD와 DJ를 겸하며 활발한 행보를 거듭하다 99년 말 홀연히 방송가를 떠났고, 최근 <성시완 컬렉션 40/30/20>이라는 전시회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희귀음반 컬렉션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몇 장의 앨범을 모았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앨범 개수가 아닙니다. 누구든 경제적인 능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음반을 살 수 있으니까요. 그보다도 평범한 한 사람이 40여년이라는 세월을 전 세계 진귀한 앨범을 모으는데 바쳤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수집한 앨범 한 장 한 장에는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제 외길인생이 담겨 있거든요.”

성시완 씨는 전시회를 개최하기까지의 긴 여정을 이야기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초등학생시절 대학생이었던 큰누나를 따라 연주음악의 거장 ‘폴모리아(Paul Mauriat)’나 감미로운 샹송가수 ‘살바토레 아다모 (Salvatore Adamo)’와 같은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는 성 씨는 공연장에서 음악을 몰래 녹음해 듣기도 하며 음악에 대한 관심을 넓혀갔다고 고백했다.

“특정 음악장르만 편식해서 듣거나 수집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훨씬 다양한 음악가와 앨범을 접하려고 애썼죠. 어렸을 땐 누님들이 ‘비틀즈’나 ‘아바’ ‘클리프리차드’처럼 대중적인 음악을 즐겨 들어서인지 저 역시 그런 음악을 좋아했고, 지금은 클래식부터 록, 팝뮤직, 칸초네, 샹송, 월드 뮤직까지 장르에 구분 없이 다양하게 음악을 즐기는 편이에요.”

Manfred Mann's Earthband의‘A Side: Don't Kill It Carol' 앨범,Ciro Dammicco의‘Mittente' 앨범(위)
Murple의‘Io Sono Murple' 앨범, Maxophone의‘Maxophone' 앨범(아래)
Manfred Mann's Earthband의'A Side: Don't Kill It Carol' 앨범,Ciro Dammicco의'Mittente' 앨범(위)
Murple의'Io Sono Murple' 앨범, Maxophone의'Maxophone' 앨범(아래)

60~70년대 해적판 음반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부터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던 성 씨는 70년대 후반에 와서 라이센스 음반들이 국내에 출시되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음반수집에 돌입한다.

“70년대엔 ‘펜팔’이 유행했어요. 저는 번안가요가 많아서 그런 음악만 있는 줄 알았는데 펜팔을 하면서 유럽의 락이나 재즈 같은 음악을 알게 됐죠. 특히 스웨덴 여자친구와는 고등학생이 돼서도 펜팔을 계속했어요. 서로 음악에 대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충격도 많이 받았고, 아프리카음악 역시 그때 접하게 된 거예요. 유럽의 록은 순전히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성 씨는 이미 고교시절에 그가 수집한 ‘아프리카’와 ‘유럽 록’ 앨범을 가지고 방송에 출연했을 만큼 이 분야의 ‘전문가’가 돼 있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음악에 대한 조예가 남달랐던 그는 연륜 있는 음악 전문가들과 함께 음악방송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고등학생 때 MBC 박원웅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었어요. 당시 빌리조엘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박원웅 씨가 ‘빌리조로엘’의 음악을 ‘빌리조엘’ 음악이라고 잘못 소개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곧바로 실수를 지적했더니 ‘어린나이에 어떻게 알았느냐’고 놀라워 하셨죠.

그는 이어 가장 아끼는 음반을 소개하겠다며 이탈리아의 기괴한 뮤지션 ‘데블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보다 2살이 많은 이탈리아 친군데 저와는 20년이 넘는 우정을 나누고 있어요. 중세시대 드라큘라나 뭉크 같은 독특하고 기괴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친구라 음악에도 그의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죠. 음악계서는 ‘신기한 음악’ ‘무서운 음악’을 하는 친구로 유명해요. ‘데블돌’이 데뷔앨범 ‘엘리오가발란스’를 딱 100장 만들었는데 70장 정도 폐기되고, 나머지 30장 중에도 2장이 분실돼서 딱 28장만 존재하는 귀한 음반입니다. 전세계 음반 컬렉터들이 탐내는 음반이지만 음반커버를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더 의미가 크죠.”

한편 음악애호가이자 음반컬렉터의 한 사람으로서 희귀음반에 대해 논하고 싶다는 성 씨는 “장수가 적다고 해서 모두 희귀앨범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 의미를 인정 받아야 진정한 희귀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며 “전세계 딱 1장만 있더라도 음악적으로 무의미 하다면 휘귀앨범이 될 수 없기에 ‘엘리오가발란스’ 역시 28장이라는 장수로 인해 희귀앨범이 됐다기보다는 음악적으로 의미가 남달라서 휘귀앨범으로 인정 받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성 씨는 “전체적으로 침체돼 있는 음반시장에서 음반사업을 대형화하기보다는 ‘1:1의 음반사업’과 같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면서 “특히 음반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요즘 LP시장이 살아나고 있는 것처럼 ‘희귀음반’도 계속해서 시장수요가 있어왔기 때문에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월드뮤직 장르가 자신의 뿌리이자 전공이라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꿈, ‘공연기획’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Hunka Munka의‘Dedicato Giovanna G' 앨범, Banco Del Mutou Soccorso의‘Banco Del Mutou Soccorso' 앨범(위)
Dr.Z의‘Three Parts to My Soul' 앨범, Mushroom의‘Early One Morning' 앨범(아래)
Hunka Munka의'Dedicato Giovanna G' 앨범, Banco Del Mutou Soccorso의'Banco Del Mutou Soccorso' 앨범(위)
Dr.Z의'Three Parts to My Soul' 앨범, Mushroom의'Early One Morning' 앨범(아래)

“오는 9월에 오스트리아 뮤지션 ‘람발’과 ‘에든 브릿지’가 내한하고, 프랑스 팀도 함께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에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연에 세계 각국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초청해 국내공연문화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곧 있을 ‘서울아트페스티벌’역시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죠.”

비록 음반시장이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여전히 음악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더 좋은, 보다 다양한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성 씨는 ‘열린 공연’을 통해 음악 애호가들의 만족과 공연문화의 완성을 이끌어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외로운 길이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꼭 보람을 찾게 된다는 그는 결국 음악이 자신의 삶 그 자체였음을 말하고 있었다.

◇ 성시완 컬렉션 40/30/20 - Records at an Exhibition(1969-2008)

성시완은 자신이 수집한 음반들을 연구와 함께 체계적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자신만이 이야기로 다시 풀어낸다. 이번 성시완의 전시는 특징적인 주제로 컬렉션을 분류했다. 40년간 수집한 성시완의 음반 컬렉션을 테마별로 나누어 또 다른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있다.

<저 오래된 여인숙(Quella Vechia Locanda)>이라는 주제 아래 오래된 음반들을 모아 놓고, <귀여운 싱글들(Cutesy Singles)>에는 조그맣고 다양하며 귀여운 싱글 앨범 커버들을 전시하고 있다. <환상적인 음반들 (Fantasia)>에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디자인의 음반 커버들을, <희귀 앨범(Rarities)>에는 세계적인 희귀 앨범들을 모아놓았다. <요술쟁이 음반들(Gimmick)>에는 커버가 변형되는 특이한 커버들로, 그리고 <누드 커버(Nuda)>에는 에로틱 커버들로 구성해 놓았다.

성시완이 평생에 걸쳐 쌓아 온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준은 기존의 음반들이 가진 가치에 새로운 의미와 또 다른 가치까지도 부여하고 있다. 창조적인 컬렉터로서 그는 음악 애호가들과 함께 음악으로써 한 시대를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성시완은 이와 더불어 본인이 직접 별도로 아트락 감상회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음반을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들려주면서 컬렉션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번 <성시완 컬렉션 40/30/20>은 대림미술관에서 7월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