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특성 파악 세심한배려·업무 스케줄 맞춘 VIP서비스가 비결

여행사 ‘BT&I’는 대중에게 친숙한 이름이 아니다. 87년 설립한 이 회사는 씨티그룹, 휴렛패커드, 메릴린치증권 등 전 세계 다국적 기업을 타깃으로 한 기업체 전문여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패키지 투어에 집중하던 국내 여행사와 달리 BT&I는 기업의 업무 스케줄에 맞춘 VIP 서비스로 입소문을 타고 항공권 매출만 1,600억 원이 넘는 여행사로 성장했다. ‘아는 사람만 이용하는’여행사였던 셈이다.

일찍 블루오션을 발견한 덕분에 최근 고유가, 고환율, 경기침체에다 항공 수수료 인하까지 겹쳐 불황에 허덕이는 여행업계에서 눈에 띄는 기업이 됐다. 지난 해 여름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자회사인 인터넷여행사 ‘투어익스프레스’를 인수하고 온라인여행 사업에도 진출했다.

‘BT&I’ 송경애 대표를 만났다. 국내 10 위권 이내 여행사에서 유일한 여성 CEO다. 깔끔한 이미지에 글로벌 경영 능력까지 갖춘 그녀는 21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 고객의 시간은 5분 단위로 쓴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행사를 운영하는 케이 송입니다. 여행하실 때 연락주시면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송경애 대표가 여행사를 시작한 1987년부터 외국인에게 명함을 건네며 했던 말이다. 신라호텔에서 6개월간 근무했던 그녀는 호텔 VIP 외국인 고객을 상대로 비행기 좌석과 여행상품 예약을 담당했고, 이 경험을 이용해 직원 3명의 여행사를 차렸다. 여행사는 국내 외국인을 타깃으로 했다.

몇몇 외국인이 연락을 해왔고 이들의 입소문으로 BT&I는 국내에서 외국기업 전문 출장업체로 자리 잡았다. 이 명함을 받은 외국인은 씨티은행의 전무였고, GE의 상무였으며 휴렛팩커드의 이사였다. 이들은 십년 이상 송 대표를 찾는 충성고객이 됐다.

“접대하지 않고 서비스로 승부하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고객이 비행기 좌석을 고를 때는 왼쪽 창가를 좋아한다든지, 호텔은 10층 이하 구석진 방을 선호하고, 침대 사이즈는 퀸 사이즈 이상, 베개는 어떤 재질을 좋아하는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했다가 다음 여행 스케줄을 짜는데도 반영하는 것이지요. 이런 서비스를 경험한 분들은 다른 여행사를 이용하다가도 다시 저희 회사로 옵니다.”

차별화된 서비스는 영국과 호주 등 글로벌 여행사를 벤치마킹해 한국화 시킨 것이다. 패키지 상품을 기획하고 여행객을 모으는 대부분의 여행사와 달리, BT&I는 고객을 세분화하고 고객의 요구에 맞춰 여행상품을 짜 승부를 걸었다. E-티켓을 최초로 도입하는 등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로 국내 소개하기도 했다.

얼마 전 기업체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출장 온라인 시스템’(eCTM)을 선보였다. 고객사의 출장 업무 과정에 맞춰 출장 경비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외국 출장이 잦은 출장 관리자들이 해외 출장에 필요한 서비스와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언제라도 받을 수 있다.

송 대표는 “고객의 특성과 여행 목적에 따라 스케줄을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300만원의 예산으로 8박 9일 유럽의 유명 음악가의 생가와 발자취를 탐방하거나 와인과 맥주 투어를 하고 싶다면 그에 맞는 여행 코스를 짜준다.

얼마 전에는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스페인과 일본, 브라질의 미술․건축 투어를 진행했다. 앞으로 외국의 유명 문화인들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방문 일정을 전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여행일정을 진행할 때는 5분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체크합니다. 물 흐르듯 여행 일정이 흘러야 하지요. 고객이 호텔에서 키를 기다리거나 밥을 먹기 위해 식당에서 줄을 서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여행이 5분, 10분 지연됐을 때를 대비해서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대처방안을 생각해 둡니다.”

■ 세심한 배려로 사람을 잡아라

송 대표는 미국으로 이민 간 부모를 따라 학창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사업을 하면서 이 경험이 장점이 될 때가 있다. 술이나 저녁식사 접대를 하지 않고 사업에 성공한다든지, 가족의 가치를 일만큼 중요하게 두어 복지에 신경 쓰는 점 등이다.

송 대표는 “비즈니스 식사는 점심에도 가능하고, 저녁과 주말은 가족과의 시간에 꼭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 원칙은 직원들에게도 적용돼 술 접대는 금물이다. 최근 한국 기업도 여럿 고객이 됐지만 이런 소문이 퍼져 접대를 요구하는 고객은 없다.

BT&I는 3년간 근무하면 1년 치 연봉을 더 주고 15일 휴가와 여행비 200만원을 주는 ‘3+1’시스템을 운영한다. “직원들이 월급만 받아서는 목돈을 모으지 못하는데 3년간 열심히 일했다면 그런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이직이 잦은 여행업계에서 능력 있는 직원을 회사에 오랫동안 둘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둔다.

“‘3+1’시스템은 3년 전 약속해서 올 12월에 처음 시행됩니다. 회사가 커가면서 직원들도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CEO로서 그것보다 보람 있는 게 없잖아요. 3년 전 약속한 건데 개인 재산이라도 내서 꼭 지켜줘야지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기분이 좋아요.”

성공한 사람들은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부지런함은 성공한 CEO들의 공통점이다. 여기에 운과 자신만의 강점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송 대표의 강점은 완벽성을 추구하는 꼼꼼한 성격이다. 20년간의 세심한 배려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셈이다.

◇ 송경애 대표 약력

1962년생. 84년 이화여대 경영학과 졸업. 86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회계, 국제비즈니스, 마케팅 과정 수료. 95년 미국 뉴욕대 여행 에이전시 매니지먼트 과정 수료. 86년 서울 신라호텔 마케팅 매니저. 87년 BT&I 대표(현)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