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앙상블 시메트리·작곡가 진은숙 '로카나'등 순수예술 영감에서 탄생

“음악의 언어는 무한하다. 여기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의 말이다. 낭만주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음악을 소재로 한 심도 깊은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는 이 말을 통해 음악이 가진 다양한 표현력과 무한한 확장성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 거다.

특히 21세기 예술은 끊임없이 ‘경계 허물기’ 혹은 ‘경계 넘나들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음악이 그 선봉장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경계허물기’의 형태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다른 순수예술에서 영감으로 탄생한 음악 즉, 음악으로 귀결된 문학, 미술 혹은 만화를 만나본다.

베를린 필의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이 1999년 세계 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5인으로 꼽았던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 그라베마이어상(2004년), 아놀드쇤베르크상(2005년) 하이델베르크 예술상(2007년) 수상으로 세계 최고 작곡가의 반열에 오른 그녀는 올해 3월 캐나다 몬트리올 ‘플라스 데 자르’와 뉴욕 카네기홀에서 관현악곡 <로카나>를 초연했다.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켄트 나가노)에 의해 연주된 이 곡은 진은숙이 설치예술가인 올라프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의 전시를 보고 영감을 얻어 태어난 곡이다.

평소 빛과 공간에 대한 작품을 즐겨 썼던 그녀는 빛의 효과를 작품에 녹여내는 덴마크 출신의 엘리아손의 작품에 매료됐던 것. 작품은 타악과 현악의 격렬한 대화가 마치 이미지처럼 보여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들 도시에 이어 시카고와 베이징에서도 연주됐으며 내년 서울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그녀의 또 다른 뮤즈는 루이스 캐롤의 ‘앨리스’이다. 1980년대 발표했던 ‘말의 유희’는 미하엘 엔데의 ‘네버엔딩스토리’와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모티프가 되었으며 2006년 초연한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2013년에 올려질 ‘거울 뒤의 앨리스’도 마찬가지다.

현대음악의 어법과 오페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는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적인 어른들의 동화여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한국의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1923-1995)은 해외의 클래식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독일의 바덴바덴시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맞아 2005년 11월부터 2006년 7월 사이에 피카소 전과 샤갈 전을 연달아 개최했는데, 이 두 거장을 이어주는 또 한편의 전시회를 기획하던 중 한국의 조각가 문신의 전시를 연 것.

그의 전시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람객들의 열기로 두 차례나 연장되었고 154년의 역사를 가진 바덴바덴 오케스트라는 2007년 문신미술영상음악국제축제를 개최해 안드레아스 케어스팅이 문신에 헌정한 ‘Eleonnthit’를 초연했다.

이 곡은 올해 10월 28일 마산 3.15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 되었다. 또한 전시회 이후 한국, 독일, 일본의 8명의 솔리스트가 모여 앙상블 시메트리가 결성되었는데, 올해 9월 7일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볼프강 마슈너가 작곡한 ‘예술의 시메트리’를 초연했다. ‘시메트리’는 문신 조각작품에서 일관되게 표현되는 것으로 화합과 조화, 균형을 의미한다.

4- 동명의 만화가 16곡의 음악으로 탄생한 음반
5- 재즈와 시의 만남,
6- 11`편의 문학이 음악으로 창작된 컴필레이션 앨범

음악과 타 예술과의 소통, 재즈로 가보면 2006년 발매된 스티브 스왈로우와 로버트 크릴리의 가 눈길을 끈다. 일렉트릭 베이스의 영역을 확장시킨 스티브 스왈로우는 1979년 이란 앨범을 통해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크릴리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재즈연주와 시가 어우러지듯 대화하는 이 시도는 를 통해 아름답게 창조되었다.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발행한 ‘20세기 영시’라는 책에는 크릴리에 대해 ‘정해진 형식을 피한다고 해서 감정표현 정도가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재즈 음악인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적혀있다.

2005년 타계한 크릴리에게 두 번째 음반을 헌정한 스티브 스왈로브와 마찬가지로 크릴리에게도 재즈란 음악이 뮤즈였던 듯하다.

지난 2006년과 올해 9월에는 각각 ‘Cracker’란 앨범과 ‘한국문학 음악에 담다’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의도적으로 만화 혹은 소설을 음악으로 옮겨냈다는 것이다.

만화가 토마가 그린, 두 남녀의 동거를 유쾌하게 다룬 ‘크래커’를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의 젊은 싱어송라이터들이 만화를 멜로디로 만들어냈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미스티 블루’ ‘올드피쉬’ 등이 참여한 앨범은 국내 최초의 카툰 사운드 트랙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 발매된 ‘한국문학 음악에 담다’는 평화방송에서 진행해온 북 콘서트에서 시작된 기획 앨범. 김훈의 <칼의 노래>,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 신경숙의 <리진>, 최규석의 만화 <대한민국 원주민>, 그리오 올해의 베스트셀러인 김려령의 <완득이>까지 총 12편의 작품이 선정되었고 한 편이 김사인 시인의 시 낭송을 제외한 11곡이 힙합, 클래식, 국악, 포크 락 등의 다양한 색깔의 음악이란 옷을 입게 됐다.

북 콘서트를 진행하고 이번 앨범을 기획한 이진원 PD는 “북 콘서트를 진행해오면서 음악과 문학의 이종교합을 해보고 싶었다. 앨범을 위해 한 달에서 세달 정도 음악인들은 작가와 진지하게 소통했는데 생각보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면서 “음악에 어떤 새로운 예술을 끌어오는 흐름은 멈출 수 없다.”며 앨범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에서 다른 장르와의 결합은 극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미술이나 문학과의 결합뿐 아니라 디지털 음악과 소리의 이미지화, 나아가 정통적인 장르조차도 무너지고 있다. 이희경 음악학자는 이러한 경향에 대해 “다른 장르의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끊임없이 예술가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 같다.

과거엔 천재적인 음악가가 존재했다면 현대는 ‘집단지성’처럼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프로젝트성으로 하나의 작업을 하는 것이 다양한 시각과 미학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진단했다.



글 이인선 기자 sun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