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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멀티플레이어, '컬처 노마드' 경계를 넘나든다
시인의 영화감독 데뷔·가수의 전시회·모델의 음반발표 등 다양한 도전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1- 가수 브라운아이즈 나얼
2- 톱 모델 장윤주
3- 성기완 시인




“영화를 사랑하는 세 단계가 있다. 첫 번째가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고 두 번째가 많이 본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고 글을 많이 쓰다보면 마지막 단계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영화 평론가 정성일이 새해, 영화감독으로 정식 데뷔한다.

당초 신하균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는 한 남자가 네 명의 여인과 나누는 깊은 슬픔과 사랑을 담은 영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가제)으로 태어난다. 문정희, 정유미, 김혜나, '홍대 요정'이라 불리는 가수 요조가 네 명의 여인으로 등장한다. 불과 한 달전에 크랭크인에 들어갔지만 정성일 평론가의 감독 데뷔는 이미 영화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저명한 평론가에서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으로 변신한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에 비유되고 있다.

영화 전문지 로드쇼와 키노의 편집장을 거쳐 한국영화 아카데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등을 역임한 그는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시네마디지털서울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오는 2월 촬영을 마칠 예정이다.

문화계에 멀티플레이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기존에 다수의 연예인들처럼 소속사에 의해 가수, MC, 탤런트 등으로 변신하는 '맛보기' 시도와는 엄격히 구분된다. 한 분야에서 이미 일가를 이룬 이들이 '자발적'으로 접근한다거나 혹은 활동하는 각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성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영역 넓히기와는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크랭크인에 들어간 시인도 있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90년대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시어로 젊은이들의 감성을 사로잡았던 원태연 시인이다. 1992년에 등단해 10여권의 시집과 에세이집으로 500만부 이상의 경이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했던 그는 이미 작사가로,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글로 표현하는 데 대한 한계와 영상에 대한 관심으로 본격 데뷔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측근의 말이다. 권상우, 이보영, 이범수를 주연으로 하는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각기 다른 사랑의 방식을 가진 세 남녀의 엇갈린 관계를 다룬 정통 멜로 영화다. 오는 3월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글쓰는 작가이자 동시에 영상을 다루는 감독으로서의 성공적인 사례는 최근 <쌍화점>을 개봉한 유하 감독이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시집의 영화화를 시작으로,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 히트작을 줄줄이 내놓으며 문화계 멀티플레이어로서 영화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이자, 번역자, 음악 에세이스트, 그리고 동시에 인디 밴드의 뮤지션이기도 한 성기완은 다양한 재능으로 잘 알려진 인물. 1994년에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멤버이자 대중음악평론가, 영화음악 감독, EBS FM '성기완의 세계음악기행'의 DJ이기도 하다.

<쇼핑 갔다 오십니까?>를 비롯한 시집, <재즈를 찾아서> <장밋빛 도살장 풍경> <영화음악, 현실보다 깊은 소리> 등의 저서, <록의 시대>,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 <엘비스, 끝나지 않는 전설>(공역) 등의 번역서와 최근 <당신의 텍스트>와 <당신의 노래>를 책과 CD로 묶어내기까지 그의 동시 다발적인 행보는 멈추지 않는다.

최근 아프리카를 다녀온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아프리카에서 거리의 소리, 아이들의 노랫소리, 구구단하는 소리를 녹음해왔다는 그는 사운드를 편집해 음반으로, 그곳에서의 경험을 독특한 여행기로 신년 하반기쯤에 펴낼 예정이다.

"음악을 좋아했고 글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다. 배운 것과 좋아하는 것, 둘 다 붙드는 노력을 했을 뿐"이라며 다채로운 활동의 계기를 말한 그는 그러나, 자신의 뿌리는 '시인'이라고 했다.

"음악을 하든, 글을 쓰든, 또 다른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시인이라는 태도를 기저에 깔게 되면 문제의식이 생기는 것 같다. 이것은 어떤 테크니컬한 상호작용보다도 의미가 있고 각기 다른 내용을 두 개의 하드디스크로 나누어 담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인 반면 그것을 한 하드에 담는 기분으로 하면 다면체적인 결과물을 끌어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리스트이자 아라리오 갤러리 소속 작가, 곧 영화 감독에도 명함을 내미는 이가 있다. 올해 첫 솔로앨범 <반성의 시간>을 발표해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백현진이다.

2008년 4월 삼청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첫 번째 개인전에 다녀간 관람객은 만 오천 명을 훌쩍 넘겼다. 한국 작가로 최다 관람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남긴 그는 정작 한 단어로 수식되지 않는다. 그는 박해일, 강혜정, 황정민, 문소리, 류승범, 공효진 등 내로라하는 영화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끝>을 2009년 상반기에 선보인다.

중년에 들어서면 소설도 쓸 수 있겠다는 백현진.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지만 결국 이목을 집중케 하는 그는, 활동반경의 수식어가 과연 몇 개까지 늘어날 수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존재다. 지난 10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전에 작품을 출시해 화제가 된 '브라운 아이즈'의 나얼은 1월14일부터 31일까지 인사동 김진혜 갤러리에서 4인전을 연다.

음악으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전공을 살려 앨범 자켓과 다이어리에 이어 이번엔 전시회를 통해 뛰어난 그림 실력을 드러냈다. ‘신이 내린 몸매’ 톱모델 장윤주도 지난 11월 첫 앨범 을 발표하면서 싱어송라이터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녀의 노래 실력은 CMKM이란 책과 함께 발매된 'Fly Away', 'Martini Rosso'가 싸이월드 재즈 부문 판매 1위를 기록하며 검증 받은 바 있다. 이 여파를 타고 1집 예약판매 당시 그녀는 수많은 직업 뮤지션을 제치고 온라인 판매순위 선두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들의 도전은 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것일까?

'스페셜리스트'를 요구했던 산업시대가 아닌, '멀티플레이어 혹은 제너럴리스트'를 필요로 하는 융합의 시대가 그들의 등장에 일조를 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표현의 욕구'라는 인간의 본능이 더해지는데, 그것이 시대에 따라 다른 옷을 갈아입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정준영 교수는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과거에는 다른 분야에서 문학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고 한다면, 90년대 이후 영상이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반대로 영상 쪽으로 다리를 걸치는 경우가 생긴다. 적절히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표현의 분출구’로서 문화계의 멀티플레이어 현상을 진단했다.

■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
"시는 관념 언어, 영화는 일상 언어"


최근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주연의 영화 <쌍화점>이 개봉했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의 신작이다. 1988년 시인으로 등단해 1996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시인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여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의 장편 영화를 연출했다.

<무림일기>,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천일馬화>, <세상의 모든 저녁> 등의 시집을 발표하고 90년대 말에는 재즈 비평을 쓰기도 했던 그의 노마드적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인에서 영화감독으로의 영역 확장엔 어떤 계기가 있었나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에 가야한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영화제의가 들어왔었다. 그때 동국대학교 영화과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직접 연출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시인으로서, 영화감독의 장점이나 특징이 있다면

영화 분야에서 현장 경험이나 연출부 생활을 안하고 곧바로 영화감독에 데뷔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쳤다.

언어를 다루는 시인에서 시나리오와 드라마, 영상을 다루는 감독은 유사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어서 처음에 드라마를 구축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첫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이 무참히 실패했다.

그 후 7년 정도는 영화를 안 하고 시만 썼다. 그러다가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성공적인 재기를 하게 됐다. 시는 관념적인 언어를 쓰고 영화는 일상화된 언어를 화면으로 물질화 시켜야 하는 간극이 있었다. 관념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땅에 붙여 물질화 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첫 영화 실패 후 많이 했다.

시인과 영화감독 간에는 어떤 인터랙티브가 이뤄지나

영화는 종합예술이고 시나리오는 언어로 되었으니, 아무래도 시나리오 쓰는 것은 용이하지 않을까 싶다. 음악비평을 했던 것도 영화에 음악을 삽입해야 하니까 도움이 된 것 같다.

개봉작 <쌍화점>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주신다면..

처음 찍은 사극이다. 세 명의 주역들이 밀도 있게 벌이는, 궁중 비사를 둘러싼 농밀한 멜로 영화다. 액션도 있고 멜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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