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지식인 등 사람들의 가려운 곳 긁어줘 속이 뻥… 대리 만족

지난달 30일 열린 그룹 ‘DJ.DOC’의 ‘2008 막판뒤집기 콘서트’는 연예가에 일대 화제를 불러모았다. 이 공연에서 DJ. DOC는 촛불집회 탄압장면을 보여주며 막을 열었다.

그룹의 리더 이하늘은 “이 노래를 한나라당에 바칩니다”라고 말하며 ‘삐걱삐걱’을 불렀다. 노래의 끝 부분에는 이런 가사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민주국가 맞나요. 만약 이런 말도 못한다면 아무 말도 못한다면 그런 나라 민주국가 아니에요. 난 한나라당이 싫어요.”

이 무대 후에는 한 술 더 떠 “어청수에게 바칩니다”란 말을 하고 다시 ‘포조리’를 불렀다.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문제야 문제. 우리나라 경제 x같은 짭새와 오늘 내가 문제. 새가 날아든다 온갖 짭새가 날아든다.”

이 소식을 접한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인터넷신문 ‘데일리 서프라이즈’ 칼럼을 통해 “진정한 대인배가 무엇인지 보여줬다”며 DJ.DOC의 독설을 격찬했다.

독설로 관심을 모으는 건 ‘연예계의 악동’ DJ.DOC 뿐만이 아니다. 최근 연예인의 독설은 하나의 트렌드라고 할 만큼 흔해지고 있다. ‘인터넷 막말 방송’으로 뜬 개그맨 김구라를 비롯해 <무릎팍 도사>의 진행자 강호동과 패널로 등장하는 건방진 도사 유세윤, <무한도전>의 박명수 등이 모두 독설로 인기를 모았다. <라디오스타>의 진행자 김국진, 윤종신, 김구라, 신정환은 초대 손님의 근황을 묻는 뻔한 질문을 생략하고 “왜 안 뜰까?”와 같은 비아냥거리는 듯한 질문을 서슴없이 던진다.

■ 유명인도 독설 트렌드 가세

정치인과 지식인들 중에는 독설이 트레이드마크가 된 인물도 적지 않다.

특히 참여정부와 17대 국회에서 강한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유시민, 전여옥 전 의원의 독설은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했다. 정치인을 겨냥한 지식인들의 독설 역시 화제가 되는데,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와 가수 신해철 씨의 독설은 ‘어록’이 만들어질 정도다.

얼마 전 진중권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에 대해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올린 ‘MB의 포토제닉 정치’란 글에서 “카메라발은 마트보다 허름한 재래시장 쪽이 낫고, 서민경제의 상징처럼 남아 있기 때문에 선택했을 것”이라고 비판한 뒤 “거리에서 일간지에 실린 MB사진을 보고 역겨워서 토하는 줄 알았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문학계에서도 독설은 하나의 트렌드 같다. 소설가 이외수 씨는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이 만든 수정교과서에 대해 “김구 선생을 테러분자라고 가르치는 세상이 왔으니 머지않아 이순신 장군을 살인마라고 가르치는 세상도 오겠네”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소설가 조경란 씨의 작품 <혀>에 대한 표절 시비가 한창일 때 문학평론가 김영현 씨는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쓴 칼럼 ‘문학이여 나라도 침을 뱉어주마’에서 “(문학평론가 김화영의 비평문) ‘혓바닥 위에 세운 감각의 제국’은 차라리 한갓진 인간의 말장난을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옛 사람들은 이런 짓을 일컬어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고 했다던가”라며 조경란 작가와 조경란 작가의 비평을 쓴 김화영 평론가, 이 표절 시비에 함께 휘말린 방현석 작가를 모두 공개 비판했다.

문학평론가 조영일 씨의 경우 얼마 전 자신이 운영하는 문학카페 ‘비평고원’에 “(최근 한국문학의) ‘부활’을 말하는 이들은 소수 작가의 (상업적) 성공을 한국문학의 르네상스로 착각하는 것일 뿐이며, 오히려 올해(2008년) 한국문학계는 사실상 ‘문학의 몰락’을 실감할 수 있는 해였다”며 최근 문학 부활론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 속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 효과

그런데 유독 연예인과 지식인들의 독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은 유명인들의 독설을 공감하는 이유로 ‘카타르시스 효과’를 꼽는다. 권력이나 ‘비호감’ 인물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 유명인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교사 석정은(30) 씨는 “유명 연예인이나 지식인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일 줄 알았는데, 독설을 듣다 보면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후련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의 바르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통상적인 지상파 방송 형식에서 탈피해 독설을 담은 프로그램은 신선하고 솔직하다는 면에서 인기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박한신(26) 씨는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의 독설을 듣다 보면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그는 “촛불집회 이후 ‘집단지성’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중의 수준이 높아지고 할 말이 많아졌는데 발언을 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돼 있다. 따라서 지지하는 유명인들이 정치나 권력을 향해 독설을 퍼부으면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일부 소장파 진보 논객에게 대학생들이 보여주는 지지는 이런 대리만족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독설의 인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문학평론가 김미현 씨는 ‘독설을 부탁해’란 칼럼을 통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 강마에의 독설과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비서실장인 람 이매뉴얼의 독설을 비교해 눈길을 끈다. 그는 여기에서 “살기가 힘들수록 인간의 ‘마조히즘’적 속성은 강해진다.

난세에 영웅이 출현하기가 더 쉽다. 이전과 달리 착하고 선한 영웅이 아니라 못되고 이기적인 영웅이 인기다. 실력과 원칙만 있다면 그의 독설도 참아낼 정도로 지금 우리는 다급하고 절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 씨는 “민주적인 리더십은 권리와 의무를 함께 부여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차가운 리더십’일 수 있다. 반면 (독설가와 같은) 독재적 리더십은 굴욕을 견디기만 하면 오히려 심신은 편할 수 있어 이를 비난하면서도 은근히 갈구하는 이율배반적 욕구가 사람들의 심리에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 독설과 막말은 구분해야

그렇다면 독설의 인기는 계속될까? 전문가들은 유명인이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거나 존재감을 각인시킬 때 독설의 효과를 어느 정도 볼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약점이 된다고 지적한다.

이미지컨설턴트 김미희 씨는 “독설은 ‘노이즈 마케팅’의 일종”이라고 말한다.(상자 기사 참조) 유교 중심의 문화적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꺼려온 우리 사회에서, 내가 아닌 유명인이라는 ‘제3자’가 감추고 싶은 것을 끄집어내어 희화화시키는 최근의 독설은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어 인기를 모을 수 있었다는 것.

김 씨는 또 “성공한 독설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주인공 강마에의 독설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돌파구를 찾게끔 유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다.

반면 유시민, 전여옥, 진중권 등 일부 마니아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지만, 그에 못지않은 비판을 받는 독설가들은 대부분 이런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또한 독설가로 대중에게 이미지를 올바로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쓰지만 약이 되는 독설’과 ‘상처만 주고 끝나는 막말’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성이 있는 독설’만이 공감대를 얻는다는 것이다.

다시 질문 ‘독설의 인기가 계속될까?’로 되돌아가보자. 김미희 씨는 여론 흐름을 좌우하는 방송 트렌드를 주목하며 새해에는 독설의 인기가 줄어들고 순진하고 순박한 캐릭터가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최근에는 SBS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하는 이천희가 새롭게 떠오르는 캐릭터로 부각된다. 엉성하지만, 열심히 일한다. 가끔 요령을 피우려고 하지만 순진해서 끝내 할 일은 다한다. 이천희 캐릭터가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는 대중들이 독설을 빙자한 막말에 점점 지쳐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노이즈 마케팅이란?

자사의 상품을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도록 해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마케팅 기법을 말한다.

소음이나 잡음을 뜻하는 ‘노이즈(noise)를 일부러 조성해 소비자의 호기심을 부추겨 상품 판매로 이어지게 만드는 기법이다. 주로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이나 영화 등을 홍보할 때 많이 이용된다.

2003년 개봉한 공포영화 <장화, 홍련>은 보기에도 섬뜩한 티저 포스터를 지하철 광고 등에 실었다가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주목받았다. 1999년 개봉한 <노랑머리>, 2000년 개봉한 <거짓말> 등도 사전심의 과정에서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킨 노이즈마케팅의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KBS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개그맨 윤형빈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코너 ‘봉숭아학당’에서 유명 연예인들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왕비호’캐릭터를 연기하는 그는 “100만 안티가 목표”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방송 초반 <개그콘서트> 시청자 게시판을 도배할 정도로 비난 의견을 받았지만, 이제는 비판을 받는 연예인이 직접 방청석에 앉아 자신을 향한 독설을 듣고 즐거워하는 장면이 매 회 방송될 정도로 인기코너로 자리 잡았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