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티 블루바드' '정식당' '피치 키친' '초록 바구니' 4色 맛자랑

1-'테이스티 블루바드'
2-한식과 분자요리를 결합한 새로운 컨셉트의 '초록 바구니'
3-분자요리 디저트를 선보이고 있는 카페 겸 레스토랑 '피치키친'
4-'정식당'



이곳은 국내에서 분자 요리를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들이다. 물론 분자 요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미의 4중주 – 테이스티 블루바드

파스타와 스테이크, 샐러드를 갖춘, 겉보기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지만 그 창의성으로 인해 이탈리안 식당이라고 불러주기 어렵게 된 곳이 테이스티 블루바드다. 장미 소스를 캐비어, 폼(거품), 겔, 젤리 등 4가지 형태와 식감으로 탄생시킨 요리와 크림으로 변신한 푸아그라를 맛볼 수 있다.

푸아그라 에스푸마는 푸아그라를 익힌 다음 갈아서 크림과 섞은 것에 질소 가스를 주입했다. 이렇게 하면 크림 형태로 바뀌는 데 일반적인 휘핑 크림보다 더 거품에 가까운 가벼운 질감이 난다. 기름진 푸아그라의 느끼함은 사라지고 위에 얹은 딸기 에스푸마와 톡톡 캔디가 상큼한 맛을 더한다.

위의 요리들은 테이스티 블루바드의 고정 메뉴가 아니다. 코스 요리가 한 달에 한번씩 바뀌기 때문. 하지만 매번 분자 조리를 포함해 온갖 테크닉이 들어간 기상천외한 작품들이 새롭게 선보이기 때문에 위의 음식을 맛보지 못한다고 크게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저녁 코스는 A코스가 5만 5000원, B코스가 7만5000원이고, 가지고 갈 와인에 어울릴 만한 메뉴를 구성해 달라고 주문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해외 진출을 앞두고 한국적인 재료를 접목한 요리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한과와 달래를 이용한 전채, 약밥을 곁들인 푸아그라, 동충하초 셔벗 등 은근하게 한국적 느낌이 묻어나면서 위트 넘치는 것들이다. 더 유명해져서 해외로 나가기 전에 한번 맛 볼 것.

문의: 02-6080-3332

바다, 대지, 꽃향 - 정식당

오픈한 지 2개월도 채 안됐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콘셉트로 벌써부터 마니아가 생긴 곳이 있다. 압구정 역 근처에 뉴 코리안(new Korean)을 표방하며 문을 연 정식당은 용감하게도 단 5개의 테이블과 단 1개의 메뉴로 시작했다. 그래도 한 번 가본 이들은 그 임팩트에 대해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단 1개뿐이라는 그 코스 메뉴 때문인데 각 코스마다 주제가 있고 맛과 비주얼, 담는 방식까지 모두 새롭고 참신한 것들 뿐이다.

버섯으로 대지의 모양을 만든 것도 그렇거니와, 코스 초반에 나오는 '바다'라는 제목의 전채는 멜론, 새우 등의 재료들이 아스파라거스를 노로 삼아 접시 위에 깔린 젤리의 바다 위를 유영하는 듯한 모습을 표현했다. 이외에도 우유 거품을 올린 마늘국이라든지, 청양 고추 크림으로 만든 떡볶이 등 모든 코스에는 분자 조리가 조금씩 사용되었다.

수석 쉐프이자 오너인 임정식 대표는 스페인에서 접한 분자 조리법을 마늘, 메생이, 보리밥, 조랭이 떡 등 한국적 재료에 자유롭게 적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2009년 2월 현재는 아직 정식으로 오픈하지 않은 상태라 디너만 진행하고 있지만 3월부터는 런치 메뉴도 선보인다고 한다. 코스를 간략하게 줄이고 가격은 4만원대로 책정할 예정. 현재 디너 코스의 가격은 10만원이며 4월에 메뉴가 변경된다.

문의: 02-517-4654

영하 196℃ 가루 아이스크림 – 피치키친

'슈밍화'의 마지막 쉐프 김유신이 카페 겸 레스토랑을 열었다. 분자 요리를 표방했던 레스토랑의 주방장답게 이곳에서도 분자 조리 기법을 응용한 디저트를 선보인다. 그런데 그 장소가 의외로 홍대입구역 근처다. 캐주얼 다이닝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분자 요리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분자 요리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슈밍화'에서부터 유명세를 떨쳤던 가루 아이스크림이 그것인데, 설탕으로 만든 볼 안에 액화 질소를 사용해 순식간에 가루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다. 기대감에 차서 성급하게 먹었다가는 입 안이 홀랑 까질 수도 있으니 주의할 것. 영하 196℃에서 냉동했기 때문에 드라이 아이스를 혀에 댔을 때 달라붙는 느낌을 생각하면 정확하다.

맛은 파인애플, 망고, 복숭아, 패션 프룻, 딸기 등 각종 과일 맛인데 1주일마다 임의로 바뀐다. 쉐프에게 만드는 방법을 묻는 메일이 하루에도 몇 백 통씩 쏟아진다고 하니 고객들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 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액화 질소를 안정되게 보관하는 통의 가격만 400만원 가량 한다고 하니 이제 그만 묻도록 하자.

식사 메뉴 중에는 연어 리가토니, 디저트 중에는 점보 스위트 브레드의 반응이 좋다. 가격은 1만원에서 1만 5000원 선. 생 과일 주스와 일본 차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으며 여자들이 환호할 만한 핫 핑크 컬러의 벽지가 기분을 환하게 만들어 준다. 앞으로 좀더 자리가 잡히고 나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본격적으로 분자 요리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문의: 02-336-5012

초고추장과 돌나물 에멀전 - 초록 바구니

한식이 분자 조리를 만나면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까? 분자 요리를 하는 곳도 드문데 한식 분자 요리는 아직도 요원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이미 있다. 일산의 '초록 바구니'에는 10년째 한식당을 운영해 온 김기호 사장이 한식의 세계화를 꿈꾸며 하나 하나 실험을 통해 만들어 낸 신기한 분자 요리들로 가득하다.

일반적인 조림이나 찌개 요리만 보면 다른 식당들과 다를 것이 없지만 코스 중에서도 10만원 이상의 '특별한 정식'을 주문하면 그때부터 분자 요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초고추장과 돌나물 에멀전은 설탕으로 만든 유리 조형물 속에 에멀전 형태의 초고추장과 돌나물을 주입한 것으로 비빔밥 옆에 곁들여 낸다.

도쿄 만다린 호텔의 모리큘라 바(molecular bar)에도 있는 알긴산으로 굳힌 된장국 겔은 입 속에서 계란 노른자처럼 툭 터지며 된장국 맛을 낸다. 한식의 대표인 김치 역시 분자 조리로 변형시켰는데 하이드로 퀄러이드를 통해 젤리로 다시 태어났다. 쫄깃한 김치에 적응하지 못하는 손님들을 위해 김치 본연의 질감을 좀 더 살린 젤리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문의: 031-906-3421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