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웰빙시대의 리더] (7) 여승구 (주)화봉문고 대표국내외 고서 수집 30년 '춘향전', '천로역정'등 희귀본 포함 10만여권 소장22첩 대동여지도 첫공개 '지도사랑 나라사랑'전 개최도

18세기 일본의 유학자이며 지리학자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는 일본, 조선, 카라후토(사할린) 등 몇 나라의 국경 형세를 보기 위한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이라는 3권의 책을 출간했다.

1785년에 나온 이 책에는 부속지도인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地圖)가 딸려 있다. 이 일본지도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국'과 같은 노란색으로 채색하고 '조선이 가짐'(朝鮮ノ持ベ)이라고 표기했다. 당시 일본인들도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1734년 프랑스 지도는 대마도를 조선 땅으로 기록해 놓았고, 1837년 영국 지도는 동해를 'SEA OF COREA'로 표기했다.

독도의 영토분쟁과 동해의 표기문제가 늘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옛 지도는 독도와 동해의 위상을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서울 인사동 화봉갤러리에서 내달까지 열리는 '지도사랑 나라사랑'전에서 옛 지도는 그것이 지닌 역사, 문화의 의미뿐 아니라 미학적 멋까지 경험케 한다. 이렇게 130여 점에 이르는 옛 지도가 하나하나 의미를 갖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한 고서(古書) 수집가의 30년 가까운 열정 덕이다. 이번 전시를 주최한 여승구(74) ㈜화봉문고 대표는 화봉갤러리 관장이면서 화봉책박물관 관장이기도 하다.

"한국근대문학 초판본 등 고서적을 수집하다가 82년부터 우연하게 지도를 수집하게 됐는데 어느덧 500점이 됐어요. 전시된 지도를 살펴보면 당시 해외에서는 한국이 어떻게 인식됐는지를 알게될 겁니다."

11일 화봉갤러리에서 만난 여승구 대표는 전시된 지도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 이면에 담긴 얘기를 곁들였다.

"대동여지도를 보세요. 22첩인데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의 나라 사랑과 국토 수호 의지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런 느낌을 간직했으면 합니다."

22첩 대동여지도(가로 3.8m, 세로 6.7m)는 여승구 대표가 전시를 개최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지도로 일반에게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1861년(철종 12년, 신유년)에 제작된 이 지도는 국내에 약 25점 내외가 소장된 희귀본으로 대동여지도 제작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돼 온 교정작업이 대부분 반영된 최종 판본이다.

김정호(1804?~1866?)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30여 년의 각고 끝에 지도를 완성했듯 여승구 대표는 국내외에서 고서를 수집하는데 30년 인생을 쏟았다.

여 대표와 고서의 인연은 50여 년 전 대학 진학에 실패한 뒤 우연히 고서점에서 일하면서 시작됐다. 전남 담양이 고향인 그는 고교(광주고) 졸업 후 서울대 상대를 지원했으나 낙방하자 우선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 서울에서 고종사촌형이 운영하는 고서점(광명서림)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눈동냥, 귀동냥하며 어깨너머로 고서적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다.

여 대표가 고서와 평생을 함께 한 데는 1980년대 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여 대표가 운영하는 출판사가 1982년 국내 최초로 개최한 국제규모의 도서박람회인 '서울 북페어'다.

여 대표는 1963년 '팬아메리칸 서비스'를 차려 외국 서적을 수입 판매, 사세를 확장하면서 '월간독서'를 창간(1976년)하는 등 왕성한 출판활동을 펼쳐나갔다. 그 연장에서 여 대표는 출판인으로서의 사명감, 출판 활성화를 위해 '서울 북페어'를 열었다.

그때 매물로 나온 '님의 침묵' 등 현대시나 소설 초판본 200여 권을 몽땅 사들인 게 고서화와 인연의 단초가 됐다. 그 책을 경매에 내놓았다가 한 일간지 문화부장이 "책을 팔지 말고 이 기회에 고서를 수집해 나중에 박물관을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에 감격한 것이 평생 고서에 발목이 잡히게 됐다.

그후 여 대표는 본격적인 고서수집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고서 애호가 겸 마니아인 을유문화사 편집주필이었던 안충근 씨가 동반자 겸 스승 역할을 했다. 여 대표는 틈나는대로 안씨와 함께 인사동 고서점과 청계천 헌책방을 뒤졌다. 앞서의 대동여지도 신유본은 1982년 후반에 구했다.

여 대표는 고서를 수집하는데 국내는 물론 외국의 서점가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한국 초판 '천로역정'(1895년)은 1983년 일본 오사카 여행중에 그곳 고서점에서 96만엔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

국내 반입 과정에 김포 세관에서 '밀수'의혹으로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결국 책을 손에 넣었다. 이후 여 대표는 세계 각국에서 발간된 '천로역정'초판본도 수집해나갔다.

1986년경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출판판매업자모임인 '디스트리프레스' 국제회의에 참석했다가 프라도박물관 옆 고서점에서 그레고리안성가집을 발견하고 고가에라도 구입하려다 택시에 지갑을 두고내린 통에 아쉽게 빈손으로 귀국길에 오른 적도 있다.

이렇게 여 대표가 30년 가까이 국내외에서 수집한 장서는 10만여 권에 이른다. 세목별로는 고활자본 7000여 권, 문학 서적 3만 5000여 권, 교과서 1만여 권, 목판 귀중본 1만여 권, 불경 및 판화본 3000여 권, 고지도 500여 점, 고문서 500여 점 등이다. 이밖에 성서 3000여 권, 신문 및 잡지 2만여 점, 포스터 및 영화사 자료 1만여 점, 일본·중국 고서 5000여 권 등이다.

가장 아끼는 장서에 대해 묻자 "소중하지 않은 책이 없다"면서도 몇몇 장서에는 애착을 나타냈다. 고서 중 단일품목으로 가장 많은 '춘향전'과 서양에서 성서 다음의 베스트셀러라는 '천로역정'이다.

여 대표가 '춘향전'에 빠진 것은 이광수의 '일설춘향전' 초판을 구하면서부터다. 처음엔 수집욕구가 앞섰지만 춘향전을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점점 더 매료됐다.

"윤이상 선생의 오페라 '심청'은 효(孝)라는 지극히 동양적인 주제를 다뤄 서양인들을 감동시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춘향전은 남녀간의 사랑이 있고, 불의의 권력에 대한 민중의 항거, 극적인 요소 등 외국인도 공감할 부분이 많이 있죠."

100여 권이 되는 '천로역정'은 영국 근대문학의 선구로 외국에서도 각광받고 있으며 한국판 초판은 근대 첫 번역소설인데다 기산 김준근의 판화 그림이 있어 사료적 가치도 높다.

여 대표는 '천로역정'과 함께 단원 김홍도의 삽화가 담긴 '오륜행실도',역시 단원 그림이 든 목판본 '불설대부모은중경'(1795, 화산 용주사 간행)을 스스로 한국의 '3대 미서(美書)'로 꼽았다.

화봉책박물관에 전시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책 'Old King Cole'도 여 대표가 각별히 아끼는 장서다. 1985년 스코틀랜드에서 출판된 'Old King Cole'은 총 12페이지로 크기가 가로 1mm 세로 1mm에 불과하고 좁쌀처럼 생겨 '쌀책'으로도 불리며 기네스 인증서를 갖추고 있다.

여 대표는 30년 동안 책을 수집했을 뿐 아니라 책을 창간ㆍ발행하고 책 관련 전시회를 여는 등 책과의 인연을 확대해왔다. 1976년 잡지 '월간독서'를 창간해 1980년 강제 폐간되기까지 '이달의 좋은 책','독서대상' 등을 선정해 시상했다. 그외 '책방소식'(1982~1988년), '고서통신'(1987~2000년)을 발간하고 1982년 한국문학작품초판본 전시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0여 회의 책 관련 전시회를 주최 또는 후원했다.

1980~1990년대 한국고서동우회를 발기하고, 한국애서가클럽을 만들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있게 한 것도 책인생의 과정이다.

여 대표는 책과 함께 살아오며 큰 보람을 느끼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고 말한다. 가족과의 마찰과 돈 문제다. 고서 수집을 위해 틈나면 국내외를 뒤지고 주말도 없이 고서에 빠져 지내는 것이 가족에게 달가울리 없다. 게다가 고서 수집에 수십 억을 썼고 지금도 사재를 털어 고서 수집과 보존, 박물관 운영에 쏟아붓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가족들도 내가 걸어온 길을 이해해주고 있는데 앞으로 누군가 이 일을 맡아 할지 아쉬움이 많아요. 국가나 재력가가 나서 공적으로 활용한다면 기증할 용의도 있습니다."

여승구 대표가 요즘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국가 차원의 책박물관 설립과 책을 통해'코리아 브랜드'를 창조하는 것이다.

"일본출판학회 회장을 지낸 미노와 교수가 출판의 기능에 대해 정보와 지식, 문화, 소비, 국제 커뮤니케이션을 말한 적이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정보와 지식, 소비로서의 책의 기능에 대해선 많이 인식하고 있지만 문화로서의 책, 국제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책의 기능에 대해서는 그만큼 인식이 못 미쳐요."

일본이 외국에서 문화대국 대접을 받는 것은 지난 세기 동안 해외 유통망에 그들의 책을 꾸준히 공급해왔기 때문이라는 게 여 대표의 해석이다. 일본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일본문화가 책을 통해 오래전부터 외국인들에게 널리 인식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기반 조성 없이 한국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경험상 한국이라는 브랜드도 해외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게 여 대표의 생각이다.

그가 자신의 책박물관에 혼신을 기울이는 것이나 국립(공립) 책박물관 설립을 제안하는 것은 그러한 책의 기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여 대표는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문화 홍보를 통해서만이 '코리아 브랜드'를 창조할 수 있으며 세계가 주목하는 금속활자 인쇄문화가 최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책박물관이든 금속활자 인쇄문화든 고서의 기본은 '한문'이므로 한문교육을 부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 대표는 자신을 포함한 개인들이 갖고 있는 고서, 그리고 국립박물관, 국립도서관, 서울대규장각 등 국공립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서를 한데 모아 전시ㆍ연구ㆍ출판ㆍ홍보ㆍ국제교류 등의 기능을 갖춘 세계적 책박물관을 설립해 한국의 책과 인쇄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우리 문화를 '코리아 브랜드'로 키워가자고 제안한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책 속에 진리가 있다'는 믿음 하나로 책과 한평생을 함께 해온 여승구 대표의 바람이 더 큰 공명으로 다가온다.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는…

전남 담양 출생(1936), 광주고 졸업, 중앙대 정외과 중퇴, ㈜화봉문고 대표이사(1963~현재),

'월간 독서'발행인(1976~1980), 서울 북페어 창설 개최(1982~1988), 한국고서동우회 부회장(1982~1987), 한국출판협회 부회장(1983~1987), 한국고서협회 회장(1989~1996), 화봉책박물관 관장(2005~현재). 저서 '책사랑 33년'(1988), '책ㆍ冊과 歷史(200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