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벽을 넘어] 일부 젊은 작가들 파격적 실험되레 독자와의 소통 지연 지적도

1-김연수 소설가
2-하종오 시인
3-조경란 소설가
4-이민하 시인
5-김민정 시인
6-전성태 소설가

한국문학계에서 ‘소통의 부재’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1980~90년대를 지나 거대담론이 사라지면서 소통의 문제가 대두됐고, 2000년대 초반을 전후로 등장한 일부 젊은 작가들은 소통의 도구인 문학의 언어 문법을 해체하며 파격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완연한 문학 형식’에서 벗어난 이들의 작품은 곧 난해함으로 해석된다. 근대문학의 해석 방식으로 이들의 작품을 규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전문가 그룹인 문학평론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중후반, 대다수 문예지의 특집으로 ‘한국문학의 소통’ 또는 ‘젊은 작가들의 파격’이 실렸다는 사실은 이들의 작품이 문학계에서 얼마나 ‘대세’를 이루는가를 방증하고 있다. 문학계에서는 “난해한 문학은 곧 ‘소통 불능’의 시대를 반영한다”는 측과 “난해한 문학이 독자와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욕망이 부재를 만드니

2000년대 이후, 소통부재를 화두로 삼은 작가는 누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 김연수를 ‘소통의 작가’로 꼽는다.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등 일련의 작품에서 그는 소통의 근본적인 불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한다. 그는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작가의 말에서 이런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작가로서 진심으로 바라는 일은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 얘기를 들려주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다시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조경란 작가가 지난해 내놓은 소설집 ‘풍선을 샀어’ 역시 소통 부재의 현실을 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나’는 대개 부모와 형제가 없는 고아다. 태어나면서 처음 맺은 관계(부모와 자식) 자체가 상실된 상태이고, 그러므로 처음부터 소통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앞의 두 작가가 소통 부재를 소재로 문학 작품을 탄생시켰다면, 젊은 문인들은 여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문학 형식을 변화시킨다.

황병승, 김민정, 이민하 등 미래파로 점철된 젊은 작가들의 파격은 소통 부재의 문학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경수 문학평론가는 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 2007년 가을호 특집 ‘한국문학 소통을 위하여’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불화하는 세상보다 더 불화하는 시나 소설을 통해 소통 부재의 세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의미의 나열, 운율감의 파괴, 시적 용어로의 외래어 차용 등 젊은 시인들의 파격적 시도는 난해함을 동반한다. 김태용, 한유주, 김유진 등 젊은 소설가들의 전위적 작품 역시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그로테스크한 묘사, 의성어와 의태어의 나열 등 완연한 소설의 문장 양식에서 변화를 시도한다. 무엇보다 이 젊은 작가들은 말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말 없음을 고민하고 다시 이를 언어로 풀어낸다.

‘우리의 세대는 수사학이 선인 세대다. 수사를 제외하면 우리에게 대체 무엇이 남을까? 가상의 세대에 걸맞은 가상의 언어-우리는 닥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두 입술을 맞물린다.’(단편 ‘그리고 음악’ 중에서)

때문에 이들의 작품은 곧 난해함으로 해석된다. 기존의 해석 방식으로 이들의 작품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난해성은 소통되지 않는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 이 난해함이 독자와의 소통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양진오 문학평론가는 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 2007년 가을호 칼럼 ‘독자의 귀환’에서 “(한유주의) 자기 과잉의 진술은 일인칭 자아를 문학적 기원으로 상정하는 독아론의 산물로 ‘달로’의 심연에는 미래의 시간과 절연한 채 자신의 진술에 몰두하는 작가의 독아론이 잔존하고 있다.

독아론에 심취한 작가일수록 환멸과 부정의 시선으로 세상과 사건을 투시하지만 독자들은 자기중심적인 그 시선에서 일말의 독단을 간취하기 마련이다”고 지적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2009년 한국문학의 소통 부재는 문제의식보다는 작가 개인의 절망감, 자기 작업의 불확실이 소통 부재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미래파들의 시적 난해성은 소통보다는 시인 개인의 감각에 대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난해함으로 소통 부재의 시대에 소통 의지를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작품이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에서 실패하고 있는 문학계 현실을 감안하면, ‘실패한 실험’이라는 게 이명원 평론가의 지적이다.

이명원 평론가는 “문학이란 근본적으로 공론장 안에서 유통이 되고, 대중에 의해서 읽혀지고, 사회적 의제에서 중요성을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문학은 주변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은 소통의 불가능성을 강조하기보다 소통 의지를 피력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재를 넘어서려는 노력

그렇다면, ‘소통의 부재’를 표현하려는 것을 넘어 소통을 시도하는 문학은 없는 것일까?

이경수 문학평론가는 시인 하종오를 꼽는다. 하종오는 1980년대 민중시를 써온 대표적인 시인이다. 2000년대를 넘어서며 그는 아시아계 한국인과 아시아 이주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켰다.

시집 ‘반대쪽 천국’부터 ‘지옥처럼 낯선’, ‘아시아계 한국인들’, ‘국경 없는 공장’ 등 시집에서 이런 시각이 나타나 있다. 이경수 평론가는 “이미 우리 현실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아직 우리의 문제로 절감하고 있지 않은 아시아 이주노동자들과 아시아계 한국인들의 ‘살이’에 대해 시인은 관심을 촉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소설가 전성태와 김재영의 작품에서 소통의 의지가 엿보인다”고 말한다. 전성태는 최근작 ‘늑대’를 비롯해 이주노동자와 북한, 다문화 등을 지속적으로 말해왔던 작가다. 김재영 역시 단편집 ‘코끼리’를 통해 다문화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 바 있다.

이명원 평론가는 “2000년대 이후 문학계 한 편에서 진행되는 이런 경향은 소통의 기대나 노력을 추구하는 작품이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소통을 끌어안으려는 의지는 다문화, 외국인노동자를 다룬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셈이다.

정리하면 2000년대 한국 문학은 소통 부재의 현실을 문학 속에 투영하거나, 문학의 형식을 뒤트는 방식으로 ‘소통 불능의 문학’을 만드는 한편, ‘국경을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타자와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