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묻는다]인생항로 확정하고 결혼 고민하고 홀로서기를 해야 하기 때문

서른은 모호하다. 도전과 모험을 통한 시행착오는 10대와 20대에게 넘겨주어야 할 특권이 됐다. 선택과 집중으로 인생의 항로를 확정해야 하며, 미혼이라면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나이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홀로서기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취업이란 목표를 향해 20대를 소진한 서른은 잠시 쉬고 싶다. 정신 없이 일을 하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어디가 내 길이냐'는 물음이 내면에서 진동한다.

최영미 시인은 선언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386세대들에게 서른은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시기였다. 하지만 15년이 흐른 지금의 서른은 말한다. '아직 잔치는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혹자는 '제 2의 사춘기'라고도 말하는 지금의 서른, 그들은 왜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서른 살이 말하는 서른 살은?

서른 살의 신정수 씨(연세대학교 문화학과 석사과정)는 지난해 기말 팀프로젝트로 '서른 살 여자'에 대한 페이퍼를 제출했다. 마침 같은 팀을 결성한 대학원생들이 모두 서른 살 여자였고, 다들 3년에서 5년 정도 회사를 다니다가 학교로 돌아와 다시 공부를 시작한 이들이었다. 직장생활 5~6년 차, 대기업에서 대리의 직급을 단, 서울 소재의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고학력자 여성들이 왜 안정된 길을 버리고 사표를 쓰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기였다.

"과연 그 나이의 여자들이 어떤 위기감을 느끼는지 알고 싶었어요. 저희도 30대 초반의 여자들이었고 다들 회사에 사표를 쓰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이게 저희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었거든요. 남자 상사들은 조직 생활 트레이닝이 안 되었다고도 말하고, 여자들의 자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하지만 분석이 명확하지가 않았어요."

조건에 맞는 10명을 직접 인터뷰하고 얻은 결론은 세 가지이다. '그 나이의 여자들이 결혼과 일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회사를 나오긴 했지만 소위 스펙이 강조되는 현실에서 재취업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일관되게 기승전결의 삶을 계획할 수 없는 시대인 것 같아요. 불과 5년 사이에도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고요. 과거에 서른에 대한 기대가 이제는 마흔 살쯤에 자리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신정수 씨는 서른 해를 살아가고 있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서른, '끼인 세대'혹은 '미지의 세대'

심리학에서 30대는 청년과 중년 사이의 '미지의 세대'로 불린다. 아동기, 사춘기, 21~40세까지의 초기 성인기, 40대의 중년기, 50대의 갱년기, 그리고 60대의 노년기로 나누어 설명하지만 30대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거의 없다. 사회학적으로도 설명해주는 이가 없다.

올해와 지난해 서른을 맞은 1980년생과 1979년생은 대학입학을 전후로 IMF를 경험하며 취업준비로 20대를 지나온 이들이다. 위로는 40대인 386세대와 30대 중후반의 X세대, 아래로는 20대인 88만원 세대 사이에 끼여있는 세대다.

서른에 대한 화두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가 그들을 주목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경제 문제에 대한 압박감으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30대를 맞이한 이들에게 멘토를 자청한 것이다. 이후 출판계는 서른 살의 갈증에 화답하듯 많은 책을 쏟아내는 중이다.

걷는 나무의 강수진 편집주간은 "30대, 남녀를 막론하고 책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사회에서 멘토를 찾기가 쉽지 않다 보니, 책에서 찾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386세대 이후에 인문학, 사회학 서적에 대한 관심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이 같은 경향을 진단했다.

서른, 변화를 도모하지만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많은 이들은 망설인다. 너무 늦은 게 아닐까 하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수많은 30대들의 멘토인 한비야 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전했다. "인생을 축구경기로 보면 30대는 지금 전반전 30분을 뛰고 있는 거예요. 아직 하프타임이 끝나지도 않았고, 후반전도 있고 연장전에 패자부활전까지 있지요. 전반 30분에 골 많이 먹어도 만회할 시간은 충분히 있는 거예요."

'계란 한판'의 조소 섞인 비유가 보여주는 '늙어가는'서른이 아니라 두 번째 레이스를 위해 운동화 끈을 조이고, 인생의 항로에서 방향키를 다시금 설정하게 되는 나이가 바로 서른임을, 2009년은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