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를 가다] '윗마을 아랫마을…' 등 경계인의 작품 경계의 지혜를 보여줘

1-'윗마을 아랫마을 그리고 국경선'과 노시르 사이도프 감독(오른쪽) 2-'침묵의 군대'와 얀 반 데 벨데 감독(오른쪽) 3-'여행자'와 우니 르콩트 감독(오른쪽)
대규모 영화제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많은 상영작들을 데이터베이스 삼아 나름의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다. 감독과 배우, 장르와 제목 등 어떤 것이든 기준을 세우면, 영화의 바다를 건너는 자신만의 항로를 가질 수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기자의 소신은 '경계'였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경계를 담고, 그 경계를 넘어선다고 믿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국가 지리적 경계를 직시하거나 가로지르는 이야기들, 혹은 그런 경험을 몸 안에 지닌 영화인들을 찾았다. '경계'를 미끼로 낚아 올린 부산국제영화제 리뷰.

어느 날 갑자기 마을이 둘로 갈라진다. 군인들이 나타나 마을 허리에 철조망을 세운 뒤 "오늘부터 여기가 국경"이라고 선언한다. 사람들은 당황한다. 당장 저 너머 병원에도 학교에도 못갈 판이다.

철조망을 사이에 둔 채 흥정이 이뤄지고 수업이 계속된다. 하지만 군인들은 완강하다. 철조망에 빨래를 너는 아낙들에게 총을 겨누고 근처에 지뢰를 파묻는다. 당장 결혼을 앞둔 연인이 문제다. 각자 국경 이쪽과 저쪽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결혼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노시르 사이도프의 <윗마을 아랫마을, 그리고 국경선>이다. '잔혹 동화' 같은 인상이지만 그 모티프는 엄연히 현실에 있다. 타지키스탄 출신인 감독은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던 시절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서 하루 아침에 국경이 삶의 공간을 갈라놓는 일이 드물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경 근처 지뢰 제거 활동을 하는 국제 단체를 통해 국경을 '경험'한 이들을 만났다. 지뢰를 밟거나, 국경을 넘은 이들의 내면에는 심한 고통이 남아 있었다.

"단지 국경이 생겼기 때문에 나뉜 사람들이 서로를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이것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죠."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전쟁을 일으키는 논리와 동원되는 술책, 학살의 도구만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능란해지고 고도화될 뿐.

네덜란드 감독 얀 반 데 벨데의 <침묵의 군대>는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로 향한다. 반군에게 끌려간 흑인 소년을 한 동네에 살던 백인 남자가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통해 아프리카 소년병 문제를 다룬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반군들은 게릴라전을 펼치며 아이들을 납치해 병력을 보충한다. 아이들은 강압과 폭력 속에서 자의와 상관 없이 잔인한 전쟁 기계로 길러진다. 그 과정을 정확하게 그렸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제법 많았다.

"저도 관객들이 우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감독은 우간다에서의 취재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 스스로 아프리카에서 성장했고, 또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프리카 아이들의 문제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영화를 만든 이유는 단 하나, 이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11월에는 UN 본부에서 상영할 예정이다.

하지만 서구인이 아프리카 문제에 대해 발언할 때에는 그 '우월한 지위'에서 오는 딜레마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정의감에 불탄다 해도, 문제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시혜자의 입장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이를테면, 서구인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아프리카 문제는 서구 제국주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비극을 해결하고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이 발언하고 의견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면 좋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국내라고 역사적 과오와 비극이 빚은 경계, 혹은 전선(戰線)이 없을까. <김정일리아>는 미국 감독 N.C.하이킨이 탈북자들의 인터뷰를 모아 북한사회의 사정과 전체주의의 작동 방식을 맞추어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외부인의 시선인 만큼 감정적으로 단순화한 측면도 있지만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 겪은 실존적 고통은 생생하게 다가온다.

조성형 감독은 '우리' 안의 경계를 발견해낸다. 경남 남해의 <독일마을>은 독일식 가옥이 모여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사실 전후 조국을 재건하기 위해 '누이'들이 독일로 떠나야 했던 역사가 만들어낸 곳이다. 등 떠밀리다시피 떠난 객지에서 조국에 송금하는 데 청춘을 바친 그들이 노년을 맞아 비로소 돌아올 수 있었던 '귀향 마을', 즉 대리 고향이다.

하지만 정부는 약속했던 지원을 이행하지 않았고, 돌아온 이들 스스로 마을을 꾸려야 했다. 영화 속에서 한 할머니가 말한다. "독일에선 해만 지면 고향 생각이 났는데, 여기 와 사니까 다시 독일이 고향인 것 같아. 그 세월 동안 우리는 고향 없는 사람이 돼서, 슬프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또 한 명의 경계인, <여행자>의 우니 르콩트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프랑스로 입양되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나 자신의 장편 데뷔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한국어는 잊었다. 하지만 70년대 한국 고아원을 배경으로 한 소녀가 사랑한 아버지와 헤어져 해외로 입양되어야 하는 '새로운 삶'(영화의 영어 제목은 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그의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에 말을 걸었다. 지난 11일 영화 상영 후 한 한국 관객은 우니 르콩트 감독에게 "당신을 안아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상처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편이죠. 그걸 언제 깨달았냐고요? 음, 지금도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어요. 버림받았다는 상처는 아니에요. 사랑 받지 못했다는 데 대한 상처죠.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 같은 거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국적이나 국가는 추상적 개념일 뿐이에요. 사실 91년부터 여러 차례 한국에 왔어요. 당시에는 정체성을 찾고 싶단 생각도 있었는데, 오면 올수록 그 질문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어쩌면 구분과 분리를 많이 겪는 바람에 정체성을 한계 지우는 것이 싫어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영화는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국경을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언어요. <여행자>를 촬영할 때도 다시 한번 느꼈어요. 한국어를 못하지만 한국 배우와 소통할 수 있었거든요. 영화는 언어의 장애와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언어'인 것 같아요."

경계를 정면으로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저 경계의 지혜를 영화로 전해들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지.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