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비움, 행복] 푸드·건축·패션·여행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영향

지나친 소유욕에 대한 성찰과 무소유 정신은 패션, 인테리어, 건축, 푸드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적지 않은 변화를 주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자꾸 비우고 싶어 한다. 끝없이 채우려는 욕망은 행복이 아닌 고통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장식이 배제된 단순한 디자인의 의상이나, 가구, 제품 디자인 등에서 그런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군더더기 없이 고도로 절제된 디자인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90년대 이래 세계의 디자인 흐름을 이끄는 주요 트렌드로 보고 있다.

일부에선 살 빼기, 성인병 예방 등을 고려한 저칼로리의 소박한 밥상문화도 이러한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욕심을 화의 근원으로 규정하고, 일상에서 과식하지 않기, 채식 위주로 먹기 같은 식생활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식탐의 결과는 비만, 성인병 등 불행을 가져온다는 것에 대다수 현대인들이 공감하고 있고, 이것은 과도한 소유욕에 대한 반성으로도 볼 수 있다.

물질만능주의의 허무함은 명상의 대중화로도 이어진다. 학교나 기업체에서도 명상 강좌가 수시로 열리고, 명상치료를 제공하는 병원도 생겨났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한동안 경제에만 정신을 쏟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돈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인식이 싹트게 됐고, 어떻게 사느냐는 모색의 하나로 명상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건축과 도시건설에서 확산되는 '비움'의 미학

최근 건축에서도 무소유 정신의 흔적이 두드러진다. 건축을 통해 '빈자의 미학'이라는 철학을 표현해온 승효상 씨. 그는 지난 2000년 베니스 비엔날레 이후 건축에서 '비움' 철학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건축에서 비움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승 씨는 "우리 선조들의 마당을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우리의 전통 가옥에 있는 마당은 일본이나 서양의 그것과 달리, 특정인이 소유하고, 용도를 확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늘 무엇인가를 채울 수 있도록 비어져 있고, 아무나 접근하고 쓸 수 있는 장소였다.

비움의 철학에 바탕을 둔 건축에서 건물은 형체가 없어지고, 풍경이 화두가 된다. 빈 공간 속으로 주변의 환경과 풍경이 녹아 들어가게 설계하고 있다. 비움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가 10년간 도시건설을 지휘했던 파주출판도시 프로젝트에서도 잘 구현돼 있다. 그는 "어디를 채울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를 비울 것인가를 고민해 설계한 대표적인 도시가 파주출판도시였다"고 말했다.

도시공간을 빽빽한 건물이 차지하는 종전의 신도시 모습을 거부하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을 비워주면서 새로운 공간 창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주변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생태환경을 유지시키면서 건물과 자연과의 관계형성에 초점을 맞췄다.

걷기여행 등 물질문명 반성하는 여행 늘어

여행이 권태로운 일상에서 탈피해 웃고 즐기는 경험이 되어야 할까? 소유와 물질에 치중한 삶에 대한 반성은 기존의 여행에 대한 인식과 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유흥지에 가서 먹고, 마시고, 사진 찍기에 바빴던 소모적인 관광 일변도에서 벗어나 사찰에 머물며 스님과 더불어 사찰음식을 먹고, 명상을 하는 등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산사체험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2002년 이후 산사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연간 7만~8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여행업계 최대 화두로 떠올랐던 제주 올레를 비롯한 걷기여행 열풍에도 무소유 정신이 묻어난다. 걷기여행은 물질문명에 치우친 도심의 삶에 대한 반성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여행도 차츰 증가하고 있다. 책임여행이란 여행하는 지역에서 생산된 음식을 소비해 지역경제를 돕고 음식물을 운반할 때 발생하는 공해를 줄이고, 환경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일부 여행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인도나 티베트 등 세계 오지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모두 소비적이고, 쾌락적인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러한 여행패턴이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이는 것은 무소유 정신이 생활 곳곳에 파고들고 있다는 증거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