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루 걷기] 정동길서 남한산성까지 오색 유혹

사진제공=랜덤하우스
걷기, 걷기의 열풍이다. 걷기 열풍을 만든 올레길부터 지리산 둘레길, 강원도 바우길까지 다양한 이름의 '길'들이 걷기 코스로 소개된다.

하지만 매번 걷기 위해 제주도로, 강원도로 떠날 수는 없는 일. 주말 하루, 한나절에 즐길 수 있는 서울 하루 걷기에 도전해 보자.

최근 2~3년 사이 서울 걷기 코스 소개에 에세이를 더한 책도 붐을 이루고 있다. 가까운 정동길부터, 마음 먹고 떠나는 남한산성까지 다양한 길이 펼쳐진다. <아지트 인 서울>(랜덤하우스 펴냄),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 여행>(터치아트 펴냄) 두 권의 책을 끼고 하루 걷기에 도전했다.

정동길 (이동시간 1시간, 쉬는 시간 불포함, 공원·미술관·유적지 소요시간은 제각각)

마음먹고 떠나는 길, 그래도 아는 곳부터 시작해야 재미를 붙일 터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산책길인 정동길부터 걸어 본다. 시청 건너편 덕수궁 대한문을 끼고 들어서는 정동길은 '사방석(四方石)'의 돌담벽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정동길 (사진제공=랜덤하우스)
돌담길이 끝나면 세 갈래 걷기 여행이 시작된다. '미술관 길'이란 이정표를 따라가면 서울시립미술관이 나온다. 경사진 언덕길 위에 세워진 미술관은 옛 대법원 건물의 전면부와 현대식 건물의 후면부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준다. 4월 30일부터 <신의 손-로댕전>이 열리고 있다.

미술관을 나서 길을 내려오면 미국 대사관 쪽으로 덕수궁 돌담이 보인다. 길을 따라 정동극장으로 가면 정동제일교회를 볼 수 있다. 가수 이문세가 '광화문 연가'에서 "언덕길 정동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라 노래했던 바로 그 교회다.

교회를 지나 정동극장 길로 걷는다. 지금의 정동극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건물 '원각사'를 복원하면서 역사적 의미를 되살렸다. 정동극장을 오른쪽에 두고 계속 올라가면 예원학교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오르막과 내리막, 보도블록 등 다양한 산책길이 나온다. 근처 옛 러시아 공사관 터가 있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고종이 잠시 피신했던 아관파천의 장소다. 프란치스코 교육회관과 경향갤러리, 정동 스타식스까지 다양한 문화예술 장소가 밀집해 있다. 정동길에서 20~30분 더 걷다 보면 경희궁이 나온다.

20세기 초 일제통치 아래 건물 대부분이 헐리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등 수난을 당했다. 일부 건물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도 했는데, 흩어진 전각들 중 유일하게 궁궐터로 되돌아 온 것이 흥화문이다. 흥화문 옆 서울역사 박물관은 경희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궁궐 터에 지은 건물이다.

삼청동 정독도서관 앞 전봇대에 있는 박물관 이정표들 (사진제공=터치아트)
삼청동 (2시간)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아 이미 몇 년 전부터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좁은 골목길과 한옥이 빚어내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한 폭의 풍경화 같아 봄이면 꼭 한 번쯤 걷고 싶은 거리다. 3호선 경복궁역에서 광화문을 지나 왼쪽으로 경복궁 돌담을 따라 돌아 들어가서 법련사 쪽으로 길을 건너자. 삼청동 걷기 여행의 시작, 사간동 미술관 거리다.

미술관 거리에서 구 기무사 건물을 따라 오른쪽으로 모퉁이를 돌아가면 좁은 길이 네 갈래로 나뉘고 왼쪽에 정독도서관이 나온다. 경기고등학교 옛 교사로 아직도 오래 전 그 분위기가 남아 있다. 도서관을 지나 박물관을 찾아간다. 정독도서관 옆 골목에 있는 '티벳박물관'과 '세계장신구박물관'. 외관부터 독특한 이들 박물관의 관람료는 5000원.

두 박물관을 거쳐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진짜 삼청동길이다. 곳곳에 작은 갤러리와 한옥을 개조한 카페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데 주말 오후에 가면 카메라를 건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걷고 있다. 그러니, 삼청동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려면 평일 혹은 주말 오전에 걸어야 한다.

삼청동길을 따라 더 올라가다가 한국교육연수원을 지나 모퉁이에 '명성마트'란 가게가 보이면 이곳에서 오른쪽 길로 '부엉이박물관'으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다시 명성마트에서 삼청터널 방향으로 더 올라가 보자. 나무가 울창해 걷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지만, 갓길이 없으므로 지나가는 차를 조심해야 한다.

남한산성 (사진제공=터치아트)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쪽에 삼청공원 입구가 있다. 감사원길을 따라가다가 삼청동우체국을 지나 가회동 쪽으로 나 있는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중앙고등학교를 지나 가회로 양쪽이 모두 한옥마을이다. 북촌한옥마을에 왔다. 예부터 원서동, 재동, 계동, 가회동, 인사동으로 구성된 이 지역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 '북촌'이라 불렸다.

이혜경의 소설 <북촌>의 그 무대. 서울을 테마로 9명의 여성작가가 쓴 소설집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에 실린 이 소설은 한옥마을에 세 들어 사는 독신 남자와 그의 집에 피신해 온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이다.

비슷비슷한 한옥들 사이에 '가회박물관'이 있다. 가회박물관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골목길을 돌아 나오면 왼편에 '동림매듭박물관'도 있다. 골목을 완전히 빠져나온 뒤 가회로를 따라 내려가면 재동초등학교와 헌법재판소를 지나 안국역이 나온다.

남한산성 (5시간 30분)

해발 498m 청량산을 중심으로 산허리에 병풍을 두르듯, 산세와 능선 굴곡을 따라 30리를 돌로 쌓아 올린 남한산성은 김훈의 장편 <남한산성>이 출간된 후 문학관광 장소로 인기를 얻었다. 이왕이면 날씨 좋은 봄에 다시 한 번 걸어본다.

과천 대공원 내 있는 삼림욕장 (사진제공=터치아트)
시작은 주차장, 음식점이 모여 있는 산성 종로부터. 남한산성 버스 종점인 종로에서 표지판을 따라 남문으로 오른다. 남문은 산성의 남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본래 이름은 지화문(至和門)이다. 남문을 통과하지 않고 오른쪽 성벽으로 걷는 방법도 있다.

성벽을 따라 45분 정도 걸으면 오른 편에 수장어대가 있다. 남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데 이곳은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 하여 일장산(日長山)이라 불린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40일 동안 직접 군사를 지휘한 곳이다.

수어장대를 지나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눈 아래로 송파구, 강동구, 하남시, 멀리는 강북의 아차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전경을 보면서 서문과 북문을 지나 성벽을 따라 오르내리면 어느새 동장대 암문에 이른다. 어느 새 1시간 30분이 훌쩍 가있다. 암문 밖으로 나가 600m정도를 가면 벌봉이고 이 주위가 본성을 보강하기 위해 숙종 때 쌓은 외성인 봉암성이다.

벌봉에서 다시 성벽을 따라 걷다 동문을 지나면 오르막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성벽이 잠깐 끊기는데 길 건너 앞쪽 언덕으로 다시 성벽이 이어진다. 이어진 성벽을 따라 남문으로 가는 데 1시간 가량 걸린다.

남한산성 안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볼거리들이 많다. 백제의 시조 온조대왕을 모신 숭열전을 비롯해 청량담, 현절사, 침괘정, 연무관, 지수당, 행궁, 장경사, 망월사, 개원사 등이다. 모두 성 안에 있으니 이정표를 따라가면 찾을 수 있다.

홍대 (사진제공=랜덤하우스)
과천 (3시간)

봄이 오면 꼭 추천하는 하루 여행코스가 과천이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배경이 된 이곳은 5월이면 녹음이 푸르러 저절로 걷고 싶게 만든다. '유치하게 동물원'이란 생각은 일단 길 따라 걷다 보면 탄성으로 바뀐다. 서울대공원과 국립현대미술관, 경마장이 묘한 분위기를 이룬다. 김밥과 유부초밥이 '하나도 안 유치해' 지는 곳이 과천이다.

4호선 과천역이 출발지점. 2번 출구로 나오면 서울대공원으로 향하는 길이 곧장 연결된다. 대공원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는 방법도 있지만,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족히 도착하니 날씨 좋은 날에는 주변 경관을 둘러보며 삼림욕도 할 수 있다. 과천저수지를 지나 대공원 입구에서 동물원 입장권을 구입해서 들어간다.

삼림욕장 입구는 대공원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아프리카관을 지나 동물원 외곽을 따라 더 들어가면 열대조류관 옆 삼림욕장 입구가 있다. 이 삼림욕장을 다 도는 데 대략 2시간 가량이 걸린다. 다 돌아 나올 때 쯤 산림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으로 가는 길목에 동물원과 연결된 출입구가 있는데 이 통로를 이용하면 처음에 왔던 출입구로 나가지 않고 곧장 미술관으로 갈 수 있다. 단 5분만에.

국립현대미술관은 야외 전시작품으로 유명하다. 건물 주위 펼쳐진 잔디밭에 조너선 브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 등 60여 점의 조각품이 전시돼 있다. 기획전시로 <올해의 작가 박기원>전과 <젊은 모색 1981-2010>이 전시 중이다.

서울 시청별관 앞 덕수궁길
미술관에서 내려와 처음 들어올 때와 같은 경로로 주차장까지 가도 되고, 아니면 저수지를 오른쪽으로 통과해 나가면 개천을 따라 인도가 나 있는데, 이 길을 계속 따라 30분 가량 걸어가면 경마공원 역을 거쳐 경마 공원에 갈 수 있다. 얼마쯤 마권을 사보는 것도 재미다. 경마에 취미가 없다면, 아이스크림을 물고 주로내공원에서 느긋하게 산책을 하면 된다.

홍대, 서교동 (1시간 30분)

'애들 노는 홍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홍대 앞이 대학문화를 대표하던 것은 이미 10년 전 이야기, 이제는 한국 인디 문화의 메카가 됐다. 산울림극장부터 놀이터 골목, 극동방송과 상수역으로 이어지는 '루트'는 문화 얼리어답터들의 집결지다. 대안 공간 성격의 갤러리 카페와 놀이터 골목안 서교예술실험센터는 홍대 앞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명 주차장 골목으로 불리는 다복길, 또한 일명 놀이터 골목으로 불리는 미래길, 클럽이 밀집한 송정래길이다.

2호선 홍대역 5번 출구에는 이렇게 써있다. '이곳은 혼잡하오니 4번 출구를 이용하기 바랍니다'. 5번 출구가 '홍대 앞'의 시작인 셈. 이곳을 기준으로 쇼핑은 홍대 앞 옷 가게 거리에서, 클럽에 가려면 극동방송 방면으로 발길을 돌리면 된다. 놀이터 골목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아트 마켓이 열리기도 한다.

작가들이 직접 만든 창작 예술품을 전시, 판매하는 시장이다. 놀이터 골목 끝에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이 있고, 이 블록을 지나면 주차장 골목이 이어진다. 매년 9~10월 '서울 와우 북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다. 1000 여 개 출판사가 함께하는 이 행사에선 매년 저자와의 만남, 북콘서트 등이 펼쳐진다. 대형 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희귀서적을 비롯해 중고서적, 신작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몇 년 전부터 홍대 앞을 찾는 젊은 층이 부쩍 늘면서 골목골목 카페들이 들어섰고, 최근 3~4년 사이 상수역과 합정역까지 넓어졌다. 북적이는 홍대 앞 분위기가 싫다면 서교동 솔내길과 상수동 독막길 걷기를 추천한다. 합정역 5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서교동 솔내길은 3~4년 전만 해도 동네 식당 몇 개 있는 한적한 거리였지만, 어느 새 개인 서재 분위기의 북카페와 대안공간, 헌책방 등이 들어서며 문화거리가 됐다.

상수역 근처로 이사한 '이리 카페'는 거의 매주 젊은 작가들과 '문학살롱'을 연다. 문학 작품을 주제로 낭독회, 퍼포먼스, 콘서트 형식의 공연을 매주 선보인다. 상수역 1번 출구와 솔내길을 잇는 것이 독막길이다. 이 근처 카페에서 젊은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홍대 앞의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작업실을 옮겼기 때문이다.

길에 펼쳐진 나무와 꽃, 갤러리, 박물관과 공원은 길을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만든다. 길을 걷는 진정한 묘미는 이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있을 터다. 그러니 마음 먹고 걸으면 여행은 시작된다. 캐주얼 복장과 가벼운 스니커즈, 쌀쌀한 날씨를 막아줄 머플러와 카디건, 물 한 병이면 준비 끝. 자 이제 떠나자.

참고 도서 :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 여행> 서울·수도권 편 (터치아트 펴냄), <아지트 인 서울>(랜덤하우스 펴냄)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