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도시, 대구]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개막… 다양한 시도 통해 가능성 타진

DIMF 전야제 공연
최근 몇 년동안 다양한 공연 페스티벌을 꾸준히 개최해온 대구가 이제 본격적인 아시아 공연예술의 메카를 꿈꾸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공연예술을 꼽은 대구시가 국비와 민자로 '아시아 공연예술 중심도시 육성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

6월의 대구는 이런 공연예술도시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과시하고 있다. 이달 초 대구문화예술회관이 프랑스문화원과 함께 거리예술축제를 벌이는가 하면, 지난 14일부터는 아시아 유일의 뮤지컬 축제인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하 딤프)이 개막해 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기 때문이다. 7월까지 이어진 딤프는 폭염이 절정에 달할 즈음엔 호러공연예술제에 그 배턴을 건네준다.

이밖에도 많은 공연제들이 일년 내내 이어지는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딤프는 아시아 공연예술의 거점을 노리는 대구의 야심이 담긴 하나의 지표다. 올해 네 번째 해를 맞은 딤프의 변화를 통해 국제 공연예술도시로 나아가고 있는 대구의 현재를 담아본다.

'아시아의 브로드웨이' 꿈꾸는 대구

딤프린지 공연 모습
한국과 그리스의 월드컵 축구경기가 열렸던 지난 12일, 대구 두류공원 코오롱야외음악당에서는 국내외 유명 뮤지컬 스타들이 무대에 올랐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 브래드 리틀을 비롯해 박해미, 김소현 등 국내 뮤지컬 스타들은 이날 무대에 올라 <오페라의 유령>과 <맘마미아> 등 유명 넘버들을 열창했다.

하지만 붉은 옷을 입은 군중의 관심을 읽기라도 하듯, 행사는 곧바로 월드컵 경기 중계와 응원전으로 이어졌다. 현장에 있던 2만 명의 뮤지컬 관객은 그대로 붉은 악마가 됐다. 뮤지컬 스타들과 응원을 함께 한 군중은 경기 종료 후 스타들이 부른 노래로 다시 한 번 승리의 기쁨을 자축했다.

'뮤지컬 도시' 대구에서 이런 광경은 별로 낯선 것이 아니다. 월드컵 본선 첫 경기와 겹친 제4회 딤프 전야제는 오히려 시민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뮤지컬 축제의 열기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었다.

14일 개막식 전 열린 거리축제 '딤프린지(DIMFringe)'에서는 프린지 페스티벌 특유의 성격이 잘 드러났다. 이번 딤프 대학생 뮤지컬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있는 대학생 배우들은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실력을 선보였다. 특히 한 계명대 학생은 놀라운 가창력으로 <노트르 담 드 파리>의 'Le Temps des Cathédrales'을 소화해내 시민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같은 날 밤 치러진 개막식에는 뉴욕에서 개막작 <앙주>를 가져온 제작자 제인 베르제르가 배우들과 함께 참석했다. 제인 베르제르는 이날 발표된 토니상에서 <어 리틀 나이트 뮤직(A Little Night Music)> 등으로 주요 부문 4개를 수상했지만, 시상식 참석을 포기하고 딤프 개막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미스 사이공'의 한 곡을 부르는 뮤지컬배우 김보경과 이건명
올해 딤프는 여러 면에서 본격적인 국제행사로 발돋움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다. 우선 멕시코, 호주, 미국, 영국 등 해외 공식초청작이 작년 대비 2배 가량 증가했다. 특히 뉴욕뮤지컬페스티벌(New York Musical theatre Festival, 이하 NYMF) 어워즈 수상작(<앙주>, <아카데미>)과 토니상에 버금가는 호주의 헬프먼 어워즈 수상작(폐막작 <사파이어>)을 초청한 점은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수작들을 볼 수 있는 기회다.

또 창작뮤지컬 수상작을 이듬해 NYMF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은 한국뮤지컬의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평가받고 있다. 강신성일 딤프 이사장은 "특히 이번 축제는 대구가 아시아 최고의 뮤지컬 시장을 선점하는 데 우위를 차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걸음마 떼고 걷기 시작한 딤프

딤프의 위상 상승은 오히려 국제무대에서 더 인정받고 있다. 딤프는 현재 세계에서 단 둘 뿐인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중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뮤지컬의 메카인 뉴욕에서 치러지는 NYMF다. NYMF는 매년 가을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장에서 가능성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페스티벌이다.

하지만 그 NYMF조차 걸음마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행사다. 지난해 6회째를 맞은 NYMF는 지난해에서야 국제용 행사로 거듭났다. 딤프와 파트너십을 맺은 NYMF는 제2회 딤프 창작지원작 1위를 차지한 <마이 스케어리 걸>을 무대에 올려 관객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밖에 멕시코와 케냐 등의 해외작품도 지난해부터 공연되기 시작했다.

DIMF 공식초청작 '사파이어'(폐막작)
탄생 시기도, 성격도 비슷한 두 행사가 세계 뮤지컬 관계자들의 입에 나란히 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딤프의 홍보대사인 브래드 리틀도 "다른 나라에서 NYMF와 딤프를 따라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배성혁 딤프 집행위원장은 이 점에서 오히려 딤프의 존재감에 더욱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NYMF가 주로 오프 브로드웨이나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진출을 목적으로 한 아트마켓 위주의 행사인데 반해, 딤프는 본격적인 공연 위주의 뮤지컬축제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더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인 베르제르의 대구행도 이 같은 딤프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준다. 이제 네 번째 해를 맞고 있는 딤프지만 국내 뮤지컬과 세계 뮤지컬의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좋은 작품의 상호공급이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 지난해 <마이 스케어리 걸>에 이어 올해 <스페셜레터>가 NYMF 무대에 오르기로 예정된 상태다. 이처럼 국내 뮤지컬의 세계 진출 시스템이 안착되자, 창작지원작 공모작도 지난해 42작품에서 1.5배 증가한 63개의 작품이 출품됐다.

참가 관람객 수의 꾸준한 증가도 딤프의 성장을 말해준다. 2006년 사전 준비를 통해 2007년 1회 페스티벌을 시작한 딤프의 방문객 수는 10만여 명. 이는 지난해 2년만에 두 배인 21만 명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관객점유율도 73%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이것은 장르의 특성상 20대가 대부분을 차지하던 예년에 비해 30대 이상의 관객 40.7%를 합산한 수치여서 더욱 고무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관객은 뮤지컬스타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또 국제행사인 만큼 단순한 공연 외에 각국의 배우나 제작 스태프, 프로듀서들이 교류할 수 있는 컨퍼런스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이런 문제들은 결국 예산의 문제와 함께 차후 페스티벌의 발전 속도를 좌우하는 딤프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

왼쪽부터 '앙리'의 주연배우 리즐 라, 배성혁 DIMF 집행위원장, 제작자 제인 베르제르, 프로듀서 에드가르도 라
세계 뮤지컬 꿈나무들의 새로운 목표

아직 성장 중인 만큼 딤프의 특징은 젊다는 것이다. 개막작을 비롯해 창작지원작, 딤프린지 등 딤프에는 젊고 어린 배우들이 넘쳐난다.

그 중 화룡점정은 딤프 내 또 하나의 축제인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이다. 이 행사는 창작뮤지컬은 물론, 대학생들의 신선한 감각으로 재해석되는 유명 라이선스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기대 이상으로 높은 완성도 때문에 해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는 19개의 국내외 대학팀의 치열한 사전 예선을 거쳐 중국 북경대학교와 중앙음악대학교의 작품을 포함해 총 10개 팀이 선정됐다. 올해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작품은 지난해 우승팀인 단국대의 <인투 더 우즈(Into the Woods)>와 백제예술대의 <라이온 킹>.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대경대의 <하이스쿨 뮤지컬(High School Musical)>도 다크호스다.

개막 후 처음으로 공개된 경민대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역시 대학생 배우들의 기량이 예사롭지 않았다. 물론 프로처럼 완숙한 모습은 없었다. 큰 무대에 익숙지 않은 어린 학생들은 동작에서 긴장감이 보이기도 하고, 힘겹게 고음 부분을 소화한 후에는 얼굴에 부착된 마이크를 통해 마른 기침을 연발하는 실수도 보였다.

DIMF 공식초청작 '스페셜레터'
하지만 역시 그래서 '학생'배우다. 스물 살을 갓 넘긴 어린 배우들이 쉽지 않은 부분들을 무사히 넘기고 때로는 기성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재치와 신선한 발상을 보일 때 관객들은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줬다.

국내에서 뮤지컬은 산업적으로는 거대한 성장을 해왔지만 관련 행사도 몇 개 없을 정도로 편중된 발전 양상을 보였다. 특히 아마추어 배우들이 기성으로 가기 전 검증 무대는 사실상 오디션을 제외하곤 없었다. 더 뮤지컬 어워즈라는 '빅 리그'는 아마추어 배우들에겐 너무 먼 꿈의 리그다. 가난하다는 연극계조차도 지역별, 규모별로 여러 개의 페스티벌을 운영하는 것과 비교해봐도 열악한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딤프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은 어린 학생들을 독려해 국내 뮤지컬 인력의 저변 확대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까지 행사에 참가한 해외팀이 중국, 일본 등 두 개 팀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이 같은 전망은 더욱 현실성이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역시 국제행사로서 젊은 피 수혈에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딤프 측이 그동안 일관되게 세운 심사 기준은 '공정성'이다. 지난 행사 때 일본팀들이 2억 원에 가까운 자비를 들여가며 참가했었지만, 심사위원단의 평가는 냉정했다. 음악이나 기량 면에서 상대적으로 타 팀에 비해 실력이 뒤처진다는 판단에서였다.

배성혁 집행위원장은 "일본이라는 매력적인 시장을 감안하면 가산점을 부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심사위원단은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공정하게 평가했다"고 털어놓는다. 국제 행사로서의 신뢰성과 객관적 심사라는 공정성이 페스티벌의 무게감을 더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결과 딤프는 믿을 만한 뮤지컬페스티벌로서의 명성을 서서히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DIMF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 본선진출팀 - 중국 북경대 '찰리 브라운'

DIMF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 본선진출팀 - 단국대 '인투 더 우즈'
DIMF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 본선진출팀 - 경민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대구=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