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의 재정의]착한 여행, 착한 소비, 착한 디자인 등 윤리적이고 공정한 이미지 의식 변화 이끌어

아름다운 가게에서 판매하는 착한 커피
사람에게서 태어났으나, 사람으로부터 거부당한 '착하다'라는 가치는 최근 몇 년 사이 의외의 대상과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내고 있다.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가격, 몸매, 소비, 패션, 돈, 자본주의, 여행 등까지, '착하다'는 그 사전적 의미를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사전을 뚫고 나온 '착함'은 이제 사물로 전이됐다. 유행처럼 번진 '착한 OO'은 결합된 대상에 따라 의미도 제각각이다. 시작은 '착한 몸매'였다. 여성비하적인 발언이라는 논란은 있지만 결국 이 말도 '예쁘다'라는 의미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를 제외하면 '저렴하다'라는 의미의 '착한 가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착한 OO'에는 '윤리적이고 공정하다'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스며있다. 강자에 의해 약자의 삶이 좌지우지되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상호 교류한다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착한 소비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교역활동인 '공정 무역'을 통해 상품을 구입하는 것을 칭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공익적이며 환경친화적인 기업이나 상품가격의 일부를 자동 기부하는 기업의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로까지 확대됐다. 이들 착한 소비를 통해 상품의 생산과 유통 기업은 '착한 기업'이 되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 이른바 '착한 자본주의'로 이어진다.

빈곤층에 대한 소액대출로 착한 자본주의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설립자 무함마드 유누스 (오른쪽)
레저와 라이프에서도 착함의 변주는 계속됐다. '착한 여행'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기분전환을 위한 여행에서 어디에 쓰이는 지도 몰랐던 경비의 경로에 대해서도 책임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인식은 1988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생겨났다.

여행지의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현지인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며, 여행에서 사용한 돈이 다국적 기업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삶에 보탬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은 국내에 오면서 '착한 여행'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흐름은 점점 더 친환경과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감안해 각 분야로 확산됐다. 화려한 디자인 뒤로 행해지던 제3세계 노동자에 대한 착취나 자원낭비는 친환경 소재와 재활용, 공정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착한 패션'으로 해소가 되고, 상품성보다는 휴대용 정수기처럼 물부족 국가에 절실히 필요한 제품을 만든다는 '착한 디자인'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기에서 '착하다'는 이타적이고, 공공적이며, 윤리적인 의미로 쓰인다.

분명 착함의 의미는 변질되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왜 사람에서는 '어수룩하다', '존재감 없다'는 없던 의미까지 더해져 부정적으로 비치는 '착하다'가, 사물로 옮겨가면서 '개념과 의식이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까지 더해지고 있는 것일까.

'착하다'라는 한자어 '善'이 착하다는 의미와 '좋다'는 뜻을 동시에 가졌다는 점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말 그대로 '공익적'인 것과 통한다. 이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일종의 반동으로도 보인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한 국가 내에서는 물론, 세계화와 개방화로 인해 국가 간의 불공정한 교역을 통해 가속화됐다.

착한 디자인의 일례로 알려진 휴대용 정수기로 물을 마시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는 한 번의 기부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데 대한 의식이 자라나면서 가능해졌다. 조지 소로스나 빌 게이츠, 안젤리나 졸리, 빌 클린턴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명인사들의 사회적 공헌이 사람들의 의식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적이고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해석도 가능하다. 온갖 대상에 '착하다'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나르시시즘 시대에 내가 원하는 가격에 충족하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받고 싶어하는 대중의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착하다는 말은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평가이며, 이로서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 받는 사람간에 일종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된다. 일면 복종과 순종의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사람이나 상황에 착하게 대하기보다는 상대가 내게 착하기를 원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들이 움직여주기 바라는 심리가 바탕에 있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어쩌면 사람이 아닌 사물이나 시스템에 대해 마치 신드롬처럼 '착한'이란 단어를 붙이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었으면 하는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착한여행 버마 보육원 아이들에게 점심만들어주기
공정무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과테말라의 한 커피농가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