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매번 주민들을 초대하는데도, 행사장을 채우는 이들은 공무원뿐이라는 것이다. 보다 못한 군수가 주민들에게 직접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무슨 벌 받을 일 있소? 군수는 본부석에서 비와 햇볕을 피해 앉아 있지만 우린 땡볕에 서 있어야 하잖소."
그러고 보니 가림막은 본부석에만 있었다. 주민들의 자리인 스탠드는 날씨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대부분의 공설운동장이 그렇게 생겼다. 군수를 비롯한 '중요 인물'의 안락과 위엄을 고려한 권위적 설계인 것이다.
군수는 대책을 마련했다. 운동장 주변에 등나무를 심은 것이다. 등나무가 자라면 스탠드에 자연스럽게 그늘이 질 것이고 주민들은 벌 받는 기분 없이 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정기용 건축가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어린 등나무들을 보면서 건축의 가닥을 잡았다.
그래서 정기용 건축가의 화두는 '감응'이다. 세상에 군림하는 건축이 아닌, 세상에서 불려 나오는 건축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런 건축이야말로 힘이 있다. 사람들을 모으고, 위로하고 독려한다. 삶이 어울려 자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마음에 별을 담을 수 있는 천문대, 삶 속에서 죽음을 기억하도록 하는 납골당, 주민들의 필요를 반영해 주민자치센터 내에 지은 목욕탕 등 무주 공공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비롯한 감응의 건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감응, 정기용 건축> 전에서는 정기용 건축가의 건축 사진과 모형, 스케치와 드로잉, 작업 노트 등이 그가 고민하고 실천한 건축의 공공성을 증언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일민미술관 김태령 관장은 "정기용의 건축물은 스토리텔러다. 구석구석 숨겨진 이야기가 말을 건넬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감응, 정기용 건축> 전은 내년 1월30일까지 열린다. 02-2020-2060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