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연출가 김한내의 연극 <이번 생은 감당하기 힘들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공연예술의 특징을 어떻게 일별할 수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던 2010년 공연예술의 흐름을 짚는 자리가 지난 12월 예술경영지원센터 개최로 마련됐다. 예술가, 평론가, 제작자, 언론인 등 장르별 전문가들은 2010년 한 해의 공연 트렌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연극 어려움, 일류, 젊은 여성 연출가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있는 고선웅 극공작소 마방진 대표는 올해 연극의 키워드를 '난전(亂廛), 난전(亂戰), 난전(難戰)'으로 정했다. 이래저래 어지럽고 어려웠던 연극계를 나타내주는 단어다.

그는 "연극 축제가 끊임없이 열렸고 올라간 편수도 적지 않았다. 세련된 공간도 늘어나고 지원금과 상업자본이 들어와서 재래시장에 난데없는 훈풍이 불었다"며 양적 성장을 반기면서도 "언제나처럼 올해도 연극다운 연극이 만들어지는 동안 연극답지 않은 연극이 더 많이 만들어졌다"며 악화가 양산되는 경향을 꼬집었다.

동아일보 권재현 는 보다 구체적으로 올해 나타난 현상들을 분석했다. 뮤지컬 제작사들의 연극제작에 대해서는 "단순히 돈 많은 곳에서 연극을 상업화하려는 시도로만 볼 것은 아니다"라고 운을 떼며 "제작자, 배우, 수요자, 이 삼자가 만나는 지점에 그 원인이 있다"라고 다른 시각을 보여줬다.

전통 소재 창작 발레 <왕자 호동>
기타 연극계에 불었던 변화에는 일류(日流)와 함께 젊은 연출가들, 특히 동이향, 김한내, 조최효정 등 여성 연출가의 약진이 꼽혔다. 콘서트와 드라마가 결합하고 SF연극이 등장하는 등 하이브리드(hybrid) 경향도 여전히 현대연극을 관통하는 특징으로 언급됐다.

뮤지컬 전통 소재, 제작의 보수화, 스타 캐스팅

뮤지컬에서는 익숙한 콘텐츠의 뮤지컬화가 눈에 띄는 현상이었다. 조용신 뮤지컬 제작감독은 "수년 전 로맨틱 코미디, 휴먼 드라마가 창작뮤지컬의 다수를 차지했던 것에 비해 올해는 전통 소재를 현대적인 표현 방식으로 창작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사라진 피맛골을 소재로 활용해 판타지를 접목시킨 <피맛골 연가>, 소설과 영화에 이어 뮤지컬로 각색된 <서편제>,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돋보였던 원작 연극을 각색한 <왕세자 실종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흥행이 불투명한 창작 초연은 줄고 안정적인 라이선스 뮤지컬은 늘어난 점도 올해의 특징이다. 메이저 제작사들은 올해 대극장 뮤지컬 창작을 포기하고 보수적인 제작 노선을 지켰다.

박칼린 연출로 화제를 모으는 뮤지컬 <아이다>
한편 중앙일보 최민우 는 아이돌, 박칼린, 조승우로 대표되는 스타 캐스팅을 짚으며 "뮤지컬이 어떻게 스타를 배출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던져준 한 해였다"고 총평했다.

무용 컨템포러리, 커뮤니티 댄스, 활로 모색

무용에서는 장르 불문 컨템포러리 댄스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다. 박성혜 월간 몸 편집인은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클래식 발레도 '한국적 창작 발레'의 레퍼토리화가 대두되면서 <왕자 호동>, <심청>이 고정 레퍼토리로 공연되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시댄스, 모다페, 페스티벌 봄 등 컨템포러리 댄스의 국제교류는 여전했지만, 세계적인 흐름에 비추어 소극적이고 매너리즘적인 경향은 개선될 부분으로 지적됐다.

올해 무용계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담론으로는 '커뮤니티 댄스'가 꼽혔다. 박성혜 편집인은 "커뮤니티 댄스는 예술을 위한 춤으로서의 가능성도 무한하지만, 사회와 함께하는 예술로서도 그 가능성이 무한하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편 박호빈 댄스씨어터 까두 대표는 "무용계가 별다른 돌파구 없이 오랫동안 정체에 빠져있다"고 토로하며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따라 무용계는 다각적인 방향,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음악 우뇌, 소통

현대음악으로 다시 평가받고 있는 전통음악에서는 우뇌적 사고와 소통이 키워드로 꼽혔다.

창작음악집단 바람곶의 원일 예술감독은 "앞으로 우뇌론이 예술계 모든 장르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며 예술경험과 관련된 창의적 뇌로서의 우뇌를 사례와 더불어 설명했다.

황우창 월드뮤직 칼럼니스트은 "우리 음악이 그동안 가장 간과하고 놓쳤던 단어가 바로 '소통'"이라며 "다행히 최근 10년 동안 월드뮤직에 대한 관심과 함께 소통과 전달의 주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0년은 그 결과물이 조금씩 나온 한 해"로 평가했다.

다원예술 경계, 이동, 변형

다원예술은 장르의 특성상 고정되지 않은 예술의 유목성에 집중하고 있다. 이진아 숙명여대 교수는 "올해의 다원예술에서는 허구와 실제에 대한 예술의 전통적 위계를 허무는 작업, 매체 고유의 특성을 허무는 작업 혹은 재매개화하는 작업이 눈에 띄었다"고 진단하며 "이는 관습적 개념의 예술, 예술 매체에 대한 경계 자체에 변동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인자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의 의견도 대동소이하다. 그는 "과거의 '해체'나 '크로스오버', '전통과 현대' 등의 시계열적 횡단을 넘어 '이동하고 횡단하는' 성숙한 미학 담론이 형성되려는 도약의 시점"이라고 2010년의 다원예술 현황을 설명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