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ding by Riding', '소셜뮤지엄_인천 중구', 'AMC' 프로젝트예술가들 현장 찾고, 퍼포먼스하고 기록하며 관객들과 실시간 소통

박강아름, '파업'
스마트폰을 켜면 언제 어디든 무대이자 전시장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은 예술가들에게 게릴라가 되라고 부추긴다. 예술가들이 현장을 찾고, 퍼포먼스하고, 기록하면 관객들은 멀리서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발전한 매체 환경은 유목하는 미술을 낳고 있다. 작가들이 전시장에서 자유로워진만큼 일상과 솔직한 현실이 배경이 되는 경우가 늘었다.

정보가 개인으로부터 출발해 네트워크로 퍼져나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의 작동 방식을 응용한 프로젝트도 있다. 결과보다 과정이, 주장보다는 소통이 중요해졌다.

모바일 기기와 SNS를 장착한 미술은 동시대와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한국사회의 아이러니한 현장을 찾아가다, 'Riding by Riding'

Riding by Riding_페이스북 페이지
"저희의 핑크빛 파업을 실시간 관람하세요. 비정규직 노동자인 당신을 초대합니다."

지난 7월말 한 쌍의 용감한 연인이 3일간의 파업 과정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각각 대형마트와 패스트푸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남녀는 유니폼을 입은 채로 뛰쳐 나왔고, 평소엔 꿈도 꿀 수 없던 시간에 서울 시내 곳곳을 평화롭게 행진했다. 겸사겸사 저항도 하고 고민도 나누고 데이트도 하는 의미였다.

이들이 틈틈이 올린 일지에는 긴장감이 넘친다. 경찰의 제지나 사장님의 호출 때문이 아니다. 연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인데, 주변 사람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밥을 먹고, 장을 보고, 만화방 소파에서 쉬고, 공연을 보러 가는 내내 의아한 눈빛이 따라 다닌다.

이들이 공연장에 나타나자 모두가 놀란다. 마치 아르바이트생이 와서는 안될 곳이라는 듯. 여자는 "자격지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느꼈다.

"우리가 자리를 옮기자 옆자리 관객의 표정이 일그러졌어요. 옆에 앉는 것을 꺼려한다는 느낌이었죠. 공연 진행자도 우리에게 시선을 몇 초 고정하더라고요. 티켓팅할 때 데스크 여직원도 마찬가지였네요."

문명기, '봄의 위선적 약속_영광의 땅으로'
남자가 소속된 곳이 아닌 대형마트에 들렀을 때는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직원들은 남자의 유니폼을 보고 당황한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옷은 곧 신분이었고, 신분이 개입되자 현실은 불편해졌다.

위의 사례는 박강아름 작가의 '파업'이다. 작가 자신과 남자친구가 퍼포먼스를 벌이고,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SNS에 공개한 작품. 젊은이들이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한국사회의 노동 환경을 풍자했다. 해가 저문 후 하루치의 파업을 마친 연인이 모텔이 즐비한 골목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이 쓸쓸하다.

'파업'은 한국사회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성찰하는 미술 프로젝트 의 일환이다. 4명의 작가가 분단과 개발주의, 신뢰와 소통 부재, 다양한 가치를 획일화하는 자본의 논리 등이 드러나는 현장에서 퍼포먼스와 미디어 작업을 한다.

현장성과 실시간 공유를 특징으로 하는 이 프로젝트에서 모바일 기기와 SNS의 책무는 막중하다. 이들 도구를 통해 작가들은 사회적 현장을 구석구석 누비는 동시에, 현실에 발목 잡히지 않는 이동성을 작업에 불어넣을 수 있다. 이는 미래적 가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문명기 작가는 한 쌍의 연인과 함께 자신의 고향이자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영광으로 갔다. 자신의 과거와 원자력발전소의 불안한 미래와 연인의 현재가 겹치고 넘나드는 이 여정 '봄의 위선적 약속_영광의 땅으로'에는 인간과 사회, 환경 간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깔려 있다.

소셜뮤지엄_인천 중구
8월 중 수행될 김홍빈 작가의 '붉은산맑은물'과 유비호 작가의 'The Way Things Go'는 각각 개발주의와 분단 상황을 드러낸다. 김홍빈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집을 짓기 위해 땅을 마련했지만, 그 꿈이 골프장에 둘러싸여버린 서울 근교 지역을 찾아간다. 아버지와의 기억과 개발주의가 가로지르는 그곳에서 퍼포먼스를 벌일 예정이다.

유비호 작가는 남한과 북한의 경계인 연평도를 무대로 정했다. 양쪽이 대치하지면서 서로 침투하는 군사 지역의 특징을 포착하고 이에 대한 개인의 심리를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유비호 작가는 "예술이 사회적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을 전달하기 위해 SNS라는 매체를 택했다"고 말했다. 무거운 주제를 세련되고 가뿐하게 담아내기에도 SNS가 적합했다.

페이스북의 'Riding By Riding' 페이지(www.facebook.com/RidingByRiding)가 프로젝트의 중계를 담당하고 있으며,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9월에는 그 내용을 전시로 확인할 수 있다.

SNS로 역사 쓰기, ''

이야기, '중구의 낯'
"나는 인천 중구에서 한 그루의 나무와 노인과 책을 만났습니다. 한 가정집 정원의 커다란 은행나무에 우연히 다가갔을 때, 담장 창살에 두 군데가 깊게 찔려 있기에 그것을 뽑아주었고 길가에 나와 앉아 계신 노인분들에게 피난 생활의 어려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을 잃은 슬픔과 인내해 왔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천근대박물관에서 구입한 1985년도 초등학교 교육부 자료집 '최신현대무용'에는 6.25전쟁과 분단국가의 안타까운 현실이 담긴 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역사가 될 수 있을까. 8월13일부터 인천 스페이스빔에서 열리고 있는 '' 전은 개인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역의 역사를 다시 쓰는 프로젝트다.

공유를 통해 확산되는 SNS의 소통 방식을 적용해 정부 기관이나 전문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역사 쓰기에 대한 대안인 아래로부터의 역사 쓰기를 시도한 것이다.

8명의 작가들이 5개월 동안 페이스북(www.facebook.com/groups.nonagir)을 통해 인천 중구의 시간의 흔적들을 나누었다. 옛 골목과 버려진 오락기에 대해, 인천시 홈페이지와 중구의 위성사진에 대해 수다가 이어졌다. 작가들은 각자 발굴한 단서를 작품화했고, 페이스북의 내용은 소설로 다시 쓰여졌다.

이야기 작가는 관광객의 시선이 아닌 생활인의 시선으로 지역을 다시 탐색했다. 골목에 버려진 펀칭 머신, 담벼락과 보도블럭의 무늬, 거리에 놓인 의자 등등을 지역의 '유물'로 선정해 전시한다. '중구의 낯'은 중구의 풍경을 실제로 구성해 온 사소한 것들을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김소철 작가는 맥아더 장군 동상과 그에 얽힌 비화, '맥아더'라는 발음에서 떠올린 일본 만화 '메칸더 브이'에 대한 기억 등등을 뒤섞어 개인사의 박물관을 만든다.

유승덕 작가는 참여자들이 페이스북에서 주고 받은 댓글을 '삐에르 메나르의 소설 중구'로 엮어냈다. 보르헤스의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를 패러디한 이 작품은 똑같은 텍스트를 다른 형식에 담았을 때 그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이 작품이 중구에 대한 "소셜하며 독창적인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뿐이랴, 그 자체가 공동의 기억이자 역사의 발단이 아니냐고 ''는 묻는다.

모바일 예술 생태계 실험, 'AMC'

다양한 매체의 가능성을 실험해 온 작가 네트워크 (www.undergroundartchannel.net)과 예술공간 오프도시는 지난 7월부터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예술 프로젝트 <아티스트 모바일 커뮤니케이터(Artist Mobile Communicator, 이하 AMC)>를 진행하고 있다.

언더그라운드아트채널
사이트에서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작가들이 스마트폰으로 만든 영상이 방송되고, 오프도시 공간을 방문한 관객은 언제든 작가들과 영상 통화를 할 수 있다.

모바일 기술을 적용한 연극도 선보인다. 박경주 작가는 9월 변방연극제에서 공연하는 <란의 일기>의 일부 이미지와 소리를 실시간으로 중계할 계획이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가져올 예술의 변화에 대한 실험인 셈이다.

모바일 기기의 이동성은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작가들이 가는 곳 어디든지 방송 스튜디오가 되고 전시장이 된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실, 길거리, 심지어 휴가지에서도 퍼포먼스를 벌인다.

개인적인 매체인 스마트폰은 작가의 진솔한 고민, 작업 과정을 담아내기에 적합하다. 작가와 관객의 일대일 통신은 작업을 일상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석성석 교수는 "관객이 작업 과정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작업 과정을 지켜봄으로써 결과에 대한 이해도 깊고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매체 환경을 반영하는 미술은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자 제안이기도 하다. 점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즉각적이고 내밀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이 인간 관계와 가치관, 삶에 대한 이해와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에 미칠 영향을 상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