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충격과 공포의 질병, 여전히 수수께끼



■ 독감
지나 콜라타 지음/안정희 옮김/사이언스 북스 펴냄.

외신을 타고 들어 온 ‘살인 독감’ 소식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미국 전 지역으로 무섭게 번져 나가고 있는 이 살인 독감(푸젠 A형)이 이미 콜로라도 주에서만 어린이 1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보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감하다.

‘사스’ 보다 10배는 위험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 만다. 독감을 겨울철이면 으레 지나가는 계절병 정도로 가볍게 보는 까닭이다. 그 누구도 독감을 치명적인 질병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10년 내지 30년 주기로 등장하는 살인 독감들은 이런 우리의 생각을 무참히 짓밟는다. 1957년 아시아 전역을 긴장시키며 무려 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시아 독감과 1968년 70만 명을 삼킨 홍콩 독감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이 모든 살인 독감 및 다른 전염병으로 인한 사상자들을 모두 합한 것 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낸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이 있다.

1918년의 독감은 20세기에 창궐한 모든 전염병들이 명함을 내밀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전염병은 너무나 위력적이어서 만약 유사한 바이러스가 오늘날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면 심장병, 암, 뇌졸중, 만성 폐 질환, 에이즈 등을 다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1918년 당시 전 세계에서 이 독감 때문에 숨진 사람이, 놀라지 말지어다, 무려 2,000만 내지 1억 명이었다.

그런데도 이 질병은 이후 완전히 잊혀졌다. 처음 나타날 때만큼이나 수수께끼처럼 홀연히 사라진 탓이다. 신문과 잡지, 교과서, 그리고 사회의 집단 기억에서도 깨끗이 지워졌다. 연기처럼 날아간 이 1918년 독감의 미스터리를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인 지나 콜라타가 파헤쳤다.

콜라타는 어두침침한 표본 창고 한 구석에서 조그마한 분자생물학 실험실을 거쳐, 노르웨이, 알래스카까지 1918년 독감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알래스카의 동토에 70년간 묻혀있던 시체들을 발굴, 1918년 독감 바이러스의 살아있는 표본을 채취한 요한 훌틴, 이 독감에 희생된 군인의 허파조직에서 바이러스의 흔적을 찾아내 유전자를 분석한 제프리 토벤버거 등 수많은 과학자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콜라타는 이 독감이 가진 치명적인 살인 무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고 말한다. 이를 풀어낸다면 그 끔찍한 바이러스 또는 그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다시 지구상에 나타났을 때 과학자들이 인류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도 있을 텐데….

입력시간 : 2003-12-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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