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 훤하게 삽시다] 조울병


세상 만사에는 리듬이 있다. 변화가 있고, 액센트가 있다는 말이다. 우선 우리의 환경이 주기적으로 변한다. 낮과 밤이 바뀌고, 계절에 따라서 온도와 습도와 주위의 환경이 변화한다.

지구상에 사는 생물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리듬을 가진다. 수명이 수일에서 수년에 이르는 모든 생물은 생리적 작용이 24 시간 주기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가장 간단한 단세포 생물인 박테리아도 시간리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도 살지 못 하는 박테리아도 24 시간 주기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인간의 생체리듬은 이 보다 훨씬 복잡하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만 해도 수십 가지가 된다. 뇌파, 체온, 심장박동, 배고픔, 목마름, 수면과 각성, 호르몬의 분비 등과 관련된 리듬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바이오리듬이라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리듬의 존재가 주장되기도 한다.

사람의 기분이라는 것도 대체로 날씨가 변덕을 부리듯이 변화가 무쌍한 것이지만, 오늘 얘기할 조울병의 경우는 때로는 평생을 거쳐서 몇 개월 단위씩 기분이 좋은 조증 상태와 기분이 울적한 우울증 상태가 반복되는 정신과적 질환을 말한다. 때로는 우울증 시기 없이 기분이 좋아지고 말이 많아지는 조증 시기 만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도 우울증 시기는 없지만 조울병, 즉, 양극성 정동장애라는 말을 사용한다. 얼핏 생소한 병으로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병에 평생 걸릴 확률이 대체로 1% 정도라고 하니까 그렇게 희귀한 병은 아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기분이 급상승했다가 다시 급강하하는 것이 반복되는 질환이므로 그 것 자체로 매우 괴로운 상태를 초래하게 되고, 단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여러 가지 합병증이나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조증시기에는 기분이 들뜨고, 즐거워하며, 말이 많아지고, 활동량도 늘고, 자신감도 생기고, 또 잠을 자지 않으면서도 환자 본인은 잠 잘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 하는 그런 에너지가 과잉 고양된 상태가 되는데 이런 들뜬 기분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어서, 주위의 사람들의 기분까지 밝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심하지 않다면 그냥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

문제는 이런 행동들이 정상적인 주의력과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과는 매우 엉뚱하고 부적절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별 것 아닌 일에 짜증을 내고, 자주 싸우고, 물건을 마구 쇼핑하고, 무분별한 성행위에 탐닉한다던지, 무모한 사업과 주식 투자 등을 강행해서 결국 본인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큰 손해와 위신을 손상시키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문제가 있다. 흥분이 되면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짜증도 나고 신경질도 내기 쉽게 마련이다. 조증 상태의 초기에는 환자는 기분이 좋고, 주위의 사람들도 기분이 좋지만, 조금만 진행이 되면 단순히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짜증스럽고 매사가 불만스러워지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우울증 시기에 빠지게 되면 환자들은 우울하고, 가라앉고, 침울하고, 개운하지 않고, 쓸쓸하고, 슬프고 공허하며, 답답함을 경험한다. 환자가 말하지 않아도, 표정이나 자세, 목소리 등에서 환자의 상태를 추측할 수도 있다. 대개는 말과 행동의 템포가 느려지지만, 불안, 초조하여 신경질과 짜증을 자주 내고, 변덕스럽고, 쉽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몸에 기운이 빠지고, 나른하고 조금만 일해도 쉽게 피로해지고, 무력감이 든다.

의욕이 저하되어, 간단한 일도 시작하기가 어렵고, 중도에 그만 두고, 사소한 결정도 내리기가 어렵다. 우울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세상과 자기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비관적이며 부정적으로 보이게 된다. 자신감을 잃고, 자신이 하찮은 존재로 느껴지고,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끼게 되며 때로는 자신을 나무라며,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잊고 있던 과거를 회상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렇듯 보통은 몇 개월 주기로 조증 시기와 우울증 시기가 반복을 하게 되는 것이 조울병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울병의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 하지만, 뇌의 호르몬에 문제가 생기는 일종의 뇌질환이다. 따라서, 이런 뇌의 이상상태를 교정하기 위한 약물치료가 필수적이다. 한편으로는 약물치료가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조증이나 우울증이 발현되는 계기에는 환자 자신에게 가해지는 풀지 못 하는 스트레스가 있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정신치료적 접근, 환경의 조정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입력시간 : 2004-01-0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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