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으로 차려낸 남도 한정식

[맛이 있는 집] 광주 예향식당
자존심으로 차려낸 남도 한정식

전라도 맛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으로 한정식을 들 수 있다. 고기, 생선, 야채 등 땅과 바다, 하늘에서 나는 재료들을 준비해 삶거나 굽거나 무치거나 혹은 날 것으로 요리해 말 그대로 산해진미를 차려서 내놓는 것이 전통적인 한정식이다. 고급 재료를 이용하고 가짓수도 많기 때문에 3명 혹은 4명 이상이 모여야만 상을 차리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니 한 상에 8만원~10만원은 보통이다. 맛있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주 먹을 수 있는 가격은 아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양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다. 기본인 4명을 맞춘다고 해도 상에서 반 혹은 1/3 정도는 남기게 된다. 맛있는 것을 남기니 속이 더 쓰리다. 입맛에 맞는 몇 가지만 차리고 양을 좀 줄이면 가격대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막상 현실에서는 그게 어려운가 보다. 하긴 한정식의 맛이 비단 음식 맛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푸짐하게 차려진 것을 보고 흐뭇해 하는 눈 맛에다가, 잘 차린 상을 앞에 두고 술도 한잔 나누면서 천천히 이야기도 나누는 맛까지 있어야 제대로 된 한정식이라고 보는 옛 생각을 무조건 고리타분하다고 만은 할 수 없다. 요즘 서울이나 대도시에 가짓수를 줄이고 양도 적당히 차리는 한정식 집들이 생겨나 가보았더니 내용은 현대적으로 바뀌었으나 가격은 여전했다. ‘이 돈이라면 제대로 차린 한정식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후회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값이라면 푸짐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광주에서 한정식 백반을 전문으로 하는 예향식당을 가보고는 ‘바로 이런 집이야!’싶었다.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한정식의 맛은 잘 살린 그런 식당이기 때문이다. 한 상 가득 차려 나오는 것은 한정식이나 다를 바 없지만 접시에 담긴 양을 줄여 버려지는 음식을 최소화하려고 신경을 썼다. 그렇다고 전혀 남기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입맛 당기는 접시는 거의 비울 정도는 된다.


■ 메뉴 : 한정식 백반 5,000원. 062-234-7730~1
■ 찾아가기 : 밀리오레 건너편, 광주세무서 바로 옆에 있다. 식당에서 나와 오른쪽이 세무서, 왼편으로 가면 태평극장, 광주천(중앙교)이 나온다.

예향식당의 한정식 백반은 한 사람에 5,000원. 싸다고 맛이 없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미 광주에서는 맛으로 소문난 집이다. 비싼 한정식에 나오는 육회나 삼합, 떡갈비, 생선회 같은 것은 없지만 가격 대비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뜨거울 때 먹으라고 금방 부쳐 내온 고기야채전으로 식사를 시작한다. 다음은 빨간 게발과 함께 담긴 미역국. 맛있는 국물을 만들기 위해 참게발을 모아 푹 끓인 육수로 미역국을 만든다.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고소한 조기 구이, 매콤한 양념 맛이 잘 배어든 꽃게장, 감칠맛 나는 젓갈 두세 가지, 젊은층이 좋아한다는 닭조림, 칼칼한 맛이 좋은 생선조림, 버섯볶음 등 맛깔스러운 반찬들 덕분에 손과 입이 바쁘다.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돌나물, 잘 익은 김치와 고추장아찌 등 나물류까지 포함하면 반찬이 거의 스무 가지에 이른다.

한번 먹고 간 사람이면 단골이 되는 것이 이 집에서는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어느 누구에게 추천을 해줘도 열에 아홉은 만족하고 돌아올 만한 곳이다. 엄마가 정성껏 차려준 것 같이 넉넉함이 느껴지는 밥상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자 고향집을 그리는 마음에도 포만감이 밀려온다.

김숙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3-25 14:14


김숙현 자유기고가 pararang@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