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희 지음/도서출판 일빛 펴냄

[출판] 금빛 기쁨의 기억(한국인의 미의식)
강영희 지음/도서출판 일빛 펴냄

우린 너무 많을 것을 잊고 산다. 세계화라는 화두 속에 파묻혀.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담론도 무성하지만, 정작 한국문화의 정체성과 그 뿌리를 찾는데 무심하기만 하다. ‘금빛 기쁨의 기억’은 땅끝까지 따라와 손을 잡아줄 것 같은 어머니의 환한 미소에 대한 그리움이다. 지워진 기억의 저편에서 무엇인가 건져 올리고 싶은 안타까움이 부끄러움을 지나 기쁨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글로벌 멀티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미의식에 대한 좌표를 묻는다.

침탈의 아픈 과거로 인해 민족주의라는 강박 관념과 편향된 이데올로기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한(恨)의 미학’ 이나 ‘백의 민족’이라는 용어로 간혹 왜곡해 덧칠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무의식이나 무기교의 상징으로 삼은 백의민족이란 이미지는 풍요로운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취향을 빼앗은 대신, 척박한 강박의 틀, 거리를 덮어씌우는 이데올로기를 떠안겨줬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여기엔 식민주의자이건 민족주의자이건 결과적으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서 보여지는 색동 이미지나 오방색의 조화로 빚은 단청의 아름다움, 이런 것들로부터 한국인 미의식의 뿌리를 다시 찾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된다.

색동옷과 녹의 홍상, 노랑저고리에 분홍치마, 오방색의 화려한 배합인 단청, 자주색의 삼회장 저고리, 색동보다도 고풍스럽고 몬드리안보다 모던한 조각보의 색 꾸러미처럼, 아득한 기억의 지평선 너머로 밀어냈던 색채적 심상을 기억 속에서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마음속에 해묵은 얼룩처럼 새겨진 백의민족의 환영, 그 흰옷의 그림자를 상대로 힘겨루기에서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의 미학을 보는 시각도 다르다. 우선 ‘한’ 은 흥(興)으로 발효된다는 전제를 깐다. 결국 한국인 자화상의 울음이란 웃음으로 승화돼 가는 전 단계로, ‘한’이란 신명으로 승화돼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맛이 들고난 후의 곰삭아 익은 맛을 김치 맛이라고 하듯, 맛이 들기 전의 설익은 맛을 김치 맛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승화 되기 전의 ‘한’이 한국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그간의 설익은 ‘한’의 근거를 깨부순다.

밖으로만 향해 있는 안테나를 내리고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관점이다. 내재된 아름다움,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의 귀환에 무게가 실린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가 가르쳐 주는 교훈을 되새겨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사대적인 감수성에서 자주적인 감수성으로의 방향 전환이 절실하다는 깨우침이다.

음양오행과 상의 미의식, 아졸미 또는 고졸미, 발효와 비보의 원리, 해학과 신명, 고지도와 명당론 등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력과 날카로운 분석, 넘치는 상상력의 유려한 필체가 눈길을 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4-04-28 21:09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