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1인 미디어시대


인터넷은 살아서 움직이며 진화하는 생명체와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컴퓨터 통신 시절에는 전자우편으로 먼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문서를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신기했다. 어느 정도 타이핑에 익숙해지자 채팅을 하느라 밤이 새는 줄도 몰랐고, 관심 있는 주제의 카페에 가입해서 중원의 고수들과 온오프 라인에서 만나는 일도 무척 즐거웠다. 얼마 전부터는 ‘1인 미디어’ 블로그(blog)가 인터넷 사용자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것과 같이 블로그는, 인터넷을 의미하는 웹(web)과, 자료 또는 일지를 뜻하는 로그의(log) 합성어이다. 1997년 미국의 데이브 와이너가 만든 ‘스크립팅 뉴스’가 최초의 블로그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에 커뮤니티 사이트인 싸이월드가 블로그 방식을 부분적으로 채택했는데, 디지털 카메라의 일반적인 보급과 맞물리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본격적인 블로그 사이트(www.blog.co.kr)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2002년 11월의 일이다. 1년 반 정도 지난 현재, 네이버 엠파스 등과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도 경쟁적으로 블로그를 서비스하고 있으며, 대략 1000만 명이 블로그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블로그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쉽게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블로그가 오늘날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성격이 아닐까 한다. 그 동안 블로그를 사용해 본 경험에 근거해서 말을 하자면, 현재 한국에서 블로그는 인터넷 초기에 크게 유행했던 개인용 홈페이지를 대체하는 미디어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용 홈페이지는 사이버 공간에 내 집을 갖는다는 낭만성을 제공해 주었지만, 관리와 유지를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과 시간이 필요했고 새로운 컨텐츠의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쉽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에 블로그는 제작 유지 관리가 거의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단히 편리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자신의 관심에 따라서 몇 개의 카테고리를 만들고, 글을 쓰거나 이미지를 첨부하면 된다. 특히 웹 서핑을 하거나 다른 블로그를 산책하던 과정에서 좋은 글이나 그림을 발견하면, 몇 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나의 블로그에 등록할 수 있다. 물론 옮겨온 웹문서를 나의 블로그에서 수정 또는 보완할 수도 있다. 또한 블로그에는 그 동안 다녀간 블로거들이 기록되기 때문에 답례로 방문을 하고 인사를 나누게 되고, 서로 마음이 맞으면 이웃이나 친구로 설정하거나 카페와 같은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도 있다. 블로그는 개인용 홈페이지가 진화한 형태, 또는 망상(網狀)형으로 배치된 개인용 웹페이지들의 네트워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1인용 미디어’ 블로그는 인터넷으로 가능한 기능들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며, 개인의 관심과 취향이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는 미디어이다. 따라서 블로그를 특징지을 수 있는 말은 다름 아닌 ‘나’이다. 인터넷에 자리잡은 ‘나’를 중심으로 집중과 확산이라는 두 가지의 운동성이 모순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미디어가 블로그인 셈이다. 정보의 바다에서 많은 자료를 관리하고 공유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블로그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관심들을 한 곳에 집중해서 정리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를 표현하는 매체’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를 네트워크화하는 매체’라 할 수 있다. 홈페이지가 ‘나의 집’을 연상시켰다면, 블로그는 ‘나의 관심과 취향들’을 표상한다.

한국에서 블로그는 이미 활성화되어 있는 게시판 문화나 카페 문화 등과의 차별성 속에서 독특한 위상을 부여받고 있다. 게시판 문화가 논쟁적인 주제와 관련해서 공적인 입장을 밝히는 쪽이라면, 인터넷 카페 문화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관심과 지식의 집중도를 높여 나간다. 그렇다면 블로그는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마스터나 시삽이 중심에 자리하는 카페 문화의 중앙집중적인 성격과는 달리, 블로그는 평등하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만들어 낸다. 또한 익명성이 지배하는 게시판 문화와 달리, 블로그는 한 개인이 갖는 취향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개성적인 미디어이다. 앞으로 여러 가지 방향으로 발전해 갈 가능성이 많지만, 현재까지 블로그는 개인의 일상적인 관심을 기록ㆍ관리ㆍ보관하는 ‘중간 미디어’로서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유연함과 느슨함 속에서 ‘나’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의 취향과 소통하는 매체인 블로그, 정보의 바다에?주워 올린 예쁜 조개껍질들의 모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입력시간 : 2004-04-28 21:44


김동식 문학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