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한 물줄기 따라 무르익는 봄을 만나다지리산 자락서 흐르는 맑은 물, 수달 서식지로도 알려져

[주말이 즐겁다] 산청 경호강
청아한 물줄기 따라 무르익는 봄을 만나다
지리산 자락서 흐르는 맑은 물, 수달 서식지로도 알려져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정기가 갈무리되는 지리산. 그 자락에 터를 잡은 경남 산청(山淸)은 봄볕이 따사로운 고을이다. 산빛도 맑고 주민들의 심성도 순박하다. 무엇보다 산청을 적시고 흐르는 경호강의 물빛이 아름답다. 따사로운 봄볕이 터지는 봄날에 경호강 물줄기를 따라서 달려보자.

구형왕릉에 얽힌 수수께끼
경호강의 첫 여정은 왕산(923m)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구형왕(仇衡王)을 만나는 일로 시작한다. 금관가야의 제10대 왕(재위 521~532)인 구형왕은 지금의 김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이다. 532년, 신라에 항복하면서 492년간 지속되었던 금관가야는 역사의 무대서 사라진다. 항복한 대가로 신라 진골로 편입한 후손들은 이후 크고 작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게 되는데,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金庾信ㆍ595-673)이 바로 구형왕의 증손자다.

아마, 구형왕릉을 처음 보는 이라면 눈이 동그랗게 될 것이다. 무덤이 흔히 보듯이 흙을 쌓아 만든 봉분이 아니라,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좁은 계곡 안쪽 경사면에 마치 피라미드처럼 돌로 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산청에 전하는 전설은 신라와의 전쟁에서 진 구형왕이 죽어 가면서 병사들에게 돌로 덮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형왕은 나라가 망한 뒤에도 30여 년을 더 살았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는 왕릉이 아니라 석탑이나 제단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풀리지 않는 역사의 수수께끼다.

구형왕릉 바로 앞 갈림길에서 임도를 따라 2km쯤 오른 뒤 오솔길을 200m쯤 걸어 올라가면 너덜지대에서 솟아나는 시원한 약수터를 만난다. 단군 이래 최고의 명의로 추앙 받는 허준을 가르친 스승, 곧 류의태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너덜 지대에서 샘솟는 물은 수량도 많고, 물맛도 특이하다.

류의태는 약재를 달일 때 반드시 이 약수를 썼다고 한다. 1,000여 종의 약초가 자생하는 지리산 자락은 전통적으로 한방 약초의 보고였다. 그래서 산청에는 여느 지방에 비해 뛰어난 의술을 가진 명의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많이 전한다. 류의태도 그 중 한 명이다. 전설에 따르면 류의태는 왕산 아래의 화계마을에서 의료 활동을 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의서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도 산청에서 한의학의 거성 류의태를 스승으로 만나 의술이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한다. 물론 허준이 스승 류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이야기는 픽션이고, 류의태라는 인물도 허준이 죽은 후 민간에 떠돌던 야담에서 끄집어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산청 사람들은 ‘허준 스승 류의태’의 실존을 굴뚝 같이 믿고 있다.

목화 시배지와 성철스님 생가
산청으로 다시 나와 경호강변의 3번 국도를 따라 30~40분 달리면 단성면 소재지. 대전 - 통영고속도로 단성 나들목 근처에 있는 사월리는 고려말 공민왕 때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ㆍ1331~1400)이 목화를 처음 재배한 마을이다.

고려의 멸망이 가까워진 1369년(공민왕 18), 원나라로 귀양갔던 문익점은 돌아올 때 목화씨앗 10여 개를 붓대롱에 넣어와 이곳에서 처음으로 심었다. 재배에는 성공했으나 금방 면을 생산한 건 아니다. 어느날 원나라 승려 홍원이 찾아왔다가 자기 나라에 있는 목화를 보고 매우 좋아했다. 마침 그는 직조술을 알고 있었고, 문익점의 장인 정천익이 그에게 기술을 배워서 물레를 만드는 데 성공해 결국 무명 한 필을 만들어냈다.

이와는 달리 실 잣는 기계를 문익점의 손자인 문래(文萊)가 발명하고, 문영(文英)이 베 짜는 법을 발명하여 명칭이 ‘물레’, ‘무명베’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그 후 해마다 씨가 불어 목화는 10년도 채 못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조선 태종 때는 일반 백성들도 두루 무명옷을 입을 만큼 면업은 발전하게 되었다.

목화 시배지에서 경호강을 건너면 성철(性澈ㆍ1912~1993)스님 생가가 나온다. 스님의 생가는 벽해루(碧海樓)를 거쳐 들어가게 되어 있다. 벽해루를 지나면 정면에 성철 스님의 동상(사리탑)이 서 있고, 동상 좌측으로 대웅전이 보인다. 혜근문(惠根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성철 스님의 생가를 복원해 놓은 율은고거(栗隱古居)이고 우측 건물은 사랑채, 좌측 건물은 스님의 기념관인 포영당(泡影堂)이다. 포영당에는 스님이 입으셨던 누더기 두루마기와 덧버선 등의 유품과 유필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등 성철 스님이 26살로 입산하기 전에 속세에서 읽었다고 기록한 목록들도 눈에 띈다.

그러나 방문객들은 거창하게 금칠을 한 성철 스님의 동상을 본고 매우 당혹해 한다. 현대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인 성철 스님을 불교계는 물론이요 다른 종교인들도 존경해마지 않았던 것은 바로 고된 수행자로서 철저히 무소유의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숙식 생초면 소재지의 경호강변엔 맑은 경호강에서 잡은 피라미, 붕어, 미꾸라지 등 민물고기를 뼈째 푹 삶은 국물로 요리한 어탕국수가 유명하다. 민물고기를 깨끗이 씻은 후 통째로 중불에서 2~3시간 정도 푹 곤다. 그리고 뿌옇게 국물이 우러나면 체에 걸러 가시를 추려낸 다음,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낸 다음, 국물에 국수를 넣고 끓인다. 여기에 취향에 따라 산초 가루를 적당히 넣으면 맛있는 어탕국수가 된다. 한 그릇에 5,000원. 생초식당(055-972-2152), 생초제일식당(055-972-1995). 산청 읍내와 생초면 소재지에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 교통 대전 - 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산청 북부지방에선 산청 나들목, 남부지방에선 단성 나들목으로 나오면 여행 동선을 쉽게 그릴 수 있다. 산청 나들목→60번 지방도→구형왕릉-류의태 약수터→60번 지방도→산청→3번 국도→단성→목화시배지→성철스님생가.

민병준 여행 작가


입력시간 : 2005-04-01 13:59


민병준 여행 작가 sabnmin@empal.com